장면#1. 19일 오후 3시 정각(한국시간 오후 4시) 쿠알라룸푸르의 말레이시아 경찰청 1층 대강당.
등장인물 : 말레이시아 경찰청 부청장, 셀랑고르주 경찰청장, 각국 취재진 200여명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경찰청 부청장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수도 쿠알라룸푸르가 포함된 셀랑고르주의 압둘 사미맛 경찰청장을 대동했다. 말레이 경찰이 확인한 사건 개요를 내외신에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브라힘 부청장이 지난 1월31일부터 2월7일까지 각기 다른 날 입국했다가 김정남 피살 당일인 지난 13일 함께 말레이를 떠난 리재남(57), 오종길(55), 홍성학(34), 리지현(33)의 이름을 발표하자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범행 가담자의 명단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이브라힘 부청장은 그러나 “이들이 북한 국적인 사실은 확인됐지만, 외교관 여권이 아닌 일반 여권을 갖고 있었다”면서 북한이 정권차원에서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외교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도 덧붙였다.
말레이 정부는 다만, 자국주재 북한 대사관의 강철 대사가 지난 17일 밤 11시30분쯤 김정남 시신이 안치된 병원 영안실 앞에서 기자들에게 말레이정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강 대사를 자국 외교부로 초치했을 뿐이다. 사건이 북한 정부 차원에서 벌어졌다는 단정과는 무관한 조치였다.
말레이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말레이 경찰의 회견내용에 대해 “확실하게 어디까지 말해야 되는 지 잘 알고 있었다”고 촌평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이브라힘 부청장에 대해서는 “정무적 판단이 확실한 상당히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선 외교관도 알고 있는 사실을 한국정부는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AP통신, “한국 정부는 늘 북한 내 적들을 신속하게 비난해왔다”
AP통신은 이날 통일부 대변인의 발표내용을 전하면서 “한국 정부는 김정남 죽음과 관련해 신속하게 북한 내 적들을 비난해왔다(South Korea has been quick to blame its enemies in North Korea for Kim‘s death)”고 꼬집었다. 물론, 논평의 주체가 ’통일부 대변인‘일 뿐 대한민국 정부가 낸 논평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준 것은 다음날 아침 긴급소집된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였다.
■북한 핵과 미사일 보다 김정남 피살을 우선시 한 블랙코미디
김정남 피살사건에 북한 국적자가 5명이 연루된 사실이 확인된 만큼 북한 정권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직접 당사국인 말레이 정부가 확인을 하지 않은 사안을 두고 멀리 떨어진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재한 회의에서 당면한 국가안보 위기사안 보다 김정남 피살에 방점을 찍어 대응을 다짐하는 것은 생뚱맞기조차 하다. 한국정부가 과연 무엇을 노리고 이같은 소동을 벌였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여전히 그정도 수준이라는 점이 절망스러울 뿐이다. 말레이 정부는 20일 현재 김정남 피살 사건 처리를 전적으로 경찰에 맡겨두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이 말레이 정부도 아닌 말레이 경찰 대변인을 자처하면서 벌인 한편의 블랙코미디였다.
[김진호의 세계읽기]한국이 부러운 미국, 그러나… (0) | 2017.03.12 |
---|---|
[김진호의 세계 읽기]느닷없이 불거진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논란 (0) | 2017.03.06 |
미·일 정상회담의 불편한 진실, ‘한국’은 없었다. (0) | 2017.02.15 |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가 중국에는 ‘기회의 창’? (0) | 2017.02.15 |
[김진호의 세계읽기] 트럼프 시대 대미외교?, 틸러슨에서부터 시작하라 (0) | 2017.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