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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오늘

김정남 피살 사건, 말레이시아 경찰청 대변인 자처한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by gino's 2017. 2. 28.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말레이사아 부경찰청장(왼쪽)이 19일 압둘 사마맛 셀랑고르 지방 경찰청장과 함께 특별기자회견에서 김정남 살해사건 수사의 중간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AP연합뉴스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말레이사아 부경찰청장(왼쪽)이 19일 압둘 사마맛 셀랑고르 지방 경찰청장과 함께 특별기자회견에서 김정남 살해사건 수사의 중간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AP연합뉴스

■‘북한 소행’인지 공식확인하지 않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상식적 대응

장면#1. 19일 오후 3시 정각(한국시간 오후 4시) 쿠알라룸푸르의 말레이시아 경찰청 1층 대강당.
등장인물 : 말레이시아 경찰청 부청장, 셀랑고르주 경찰청장, 각국 취재진 200여명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경찰청 부청장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수도 쿠알라룸푸르가 포함된 셀랑고르주의 압둘 사미맛 경찰청장을 대동했다. 말레이 경찰이 확인한 사건 개요를 내외신에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브라힘 부청장이 지난 1월31일부터 2월7일까지 각기 다른 날 입국했다가 김정남 피살 당일인 지난 13일 함께 말레이를 떠난 리재남(57), 오종길(55), 홍성학(34), 리지현(33)의 이름을 발표하자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범행 가담자의 명단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이브라힘 부청장은 그러나 “이들이 북한 국적인 사실은 확인됐지만, 외교관 여권이 아닌 일반 여권을 갖고 있었다”면서 북한이 정권차원에서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외교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도 덧붙였다. 

20일 오전 국가안보회의( NSC) 상임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북한이 김정남 피살사건의 배후라고 밝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회의 뒤 경기도 안산시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열린 제6기 졸업식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전 국가안보회의( NSC) 상임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북한이 김정남 피살사건의 배후라고 밝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회의 뒤 경기도 안산시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열린 제6기 졸업식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말레이 경찰, 피살자가 ‘김정남’인지도 확인 유보 vs 대한민국 정부는 ‘김정남’ 분명하고, 북한정권이 배후라고 과감하게 발표 
사건의 정황상 북한이 개입했음은 말레이 경찰의 발표로 보다 분명해졌다. 하지만 말레이 측은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단정짓지 않겠다는 신중함을 내보였다. 이는 국가 간의 외교관행상 지극히 상식적인 대응이다. 이브라힘 부청장은 피살자의 신원과 관련해 “여권 상의 이름인 ‘김철’이라고 밖에는 달리 확인할 수없다”고 말해 피살자가 김정남이라는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말레이 정부는 다만, 자국주재 북한 대사관의 강철 대사가 지난 17일 밤 11시30분쯤 김정남 시신이 안치된 병원 영안실 앞에서 기자들에게 말레이정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강 대사를 자국 외교부로 초치했을 뿐이다. 사건이 북한 정부 차원에서 벌어졌다는 단정과는 무관한 조치였다.

말레이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말레이 경찰의 회견내용에 대해 “확실하게 어디까지 말해야 되는 지 잘 알고 있었다”고 촌평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이브라힘 부청장에 대해서는 “정무적 판단이 확실한 상당히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선 외교관도 알고 있는 사실을 한국정부는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장면2. 말레이 경찰의 발표 뒤인 19일 늦은 오후 대한민국 통일부
등장인물 :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 

■AP통신, “한국 정부는 늘 북한 내 적들을 신속하게 비난해왔다”

사건이 북한 정권에 의한 ‘국가테러’라는 단정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말레이 경찰청의 발표 직후 대한민국 통일부는 ‘김정남 피살 관련 말레이시아 수사발표에 대한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냈다. 통일부는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오겠지만, 우리 정부는 동(同) 피살자가 여러 정보와 정황상 김정남이 확실하다고 보며, 용의자 5명이 북한 국적자임을 볼 때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말레이 경찰이 확인해주었어야 할 피살자의 신원과 북한 정권의 주도 사실을 뜬금없이 대한민국 정부가 확인해준 꼴이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이 배후라고 확정적으로 발표할 추가 정보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말레이시아 정부가 정확한 자료를 낼 때까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당연한 말이다. 정확한 자료는 말레이 정부가 확보해 발표할 사안이다. 이를 통일부가 발벗고 나선 것은 넌센스다. 오지랖이 넓은 정도가 아니고 외교적인 상궤를 이탈해도 많이 이탈한, ‘월권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P통신은 이날 통일부 대변인의 발표내용을 전하면서 “한국 정부는 김정남 죽음과 관련해 신속하게 북한 내 적들을 비난해왔다(South Korea has been quick to blame its enemies in North Korea for Kim‘s death)”고 꼬집었다. 물론, 논평의 주체가 ’통일부 대변인‘일 뿐 대한민국 정부가 낸 논평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준 것은 다음날 아침 긴급소집된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였다.

#장면3. 20일 오전 8시30분. 정부 서울청사 9층 총리 집무실 옆 회의실.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
등장인물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NSC 사무처장, 청와대 비서실장, 국가정보원장, 국무조정실장,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외교부 1차관 등 

국가안보사안을 다루는 NSC 상임위원회가 오전 8시30분에 열렸다는 말은 참석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출근했다는 말이다. 황급하게 회의를 소집한 NSC는 회의 뒤 “어제 말레이시아 경찰의 발표와 여러 정보 및 정황에 비추어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다는 판단 하에, 앞으로 북한 정권의 잔학하고 반인륜적인 실체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국제사회와 함께 합당하고 강력한 대응을 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NSC가 김정남 피살사건과 관련해 소집된 것은 지난 15일에 이어 두번째다.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까지 나서 ‘북한 배후’ 기정사실화 
NSC가 국민의 생명과 국가안보를 굳건히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본연의 사명이다. 하지만, 말레이 경찰의 발표에 더해 ’여러 정보 및 정황‘까지 들어 김정남 피살이 북한 소행이라고 단정하고 나아가 국제사회와 강력 대응하겠다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 누가 때렸는 지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앞당겨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더구나 피해자가 NSC가 보호해야할 ’우리 국민‘도 아니다. 언제부터 NSC가 김정남의 안위까지 책임졌는지 모를 일이다. 이날 NSC 발표 내용 가운데 정작 국가안보에 위협을 제기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등 군사적 도발 가능성에 대한 대처는 후순위로 밀렸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보다 김정남 피살을 더 앞에 배치한 것이다. 정부의 엉뚱한 의도를 백일하에 드러낸 것으로 누가봐도 해괴한 에피소드가 아닐 수없다. 

■북한 핵과 미사일 보다 김정남 피살을 우선시 한 블랙코미디 

김정남 피살사건에 북한 국적자가 5명이 연루된 사실이 확인된 만큼 북한 정권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직접 당사국인 말레이 정부가 확인을 하지 않은 사안을 두고 멀리 떨어진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재한 회의에서 당면한 국가안보 위기사안 보다 김정남 피살에 방점을 찍어 대응을 다짐하는 것은 생뚱맞기조차 하다. 한국정부가 과연 무엇을 노리고 이같은 소동을 벌였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여전히 그정도 수준이라는 점이 절망스러울 뿐이다. 말레이 정부는 20일 현재 김정남 피살 사건 처리를 전적으로 경찰에 맡겨두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이 말레이 정부도 아닌 말레이 경찰 대변인을 자처하면서 벌인 한편의 블랙코미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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