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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의회연설이 '연두교서'가 아닌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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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s 2017. 3. 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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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세계읽기]트럼프의 의회연설이 '연두교서'가 아닌 진짜 이유

입력 : 2017.03.02 16:46:00 수정 : 2017.03.02 16:47:58
■연두교서는 최소 1년간 대통령 직을 수행한 뒤에나 할 수 있는 연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 달 28일 첫 의회연설은 왜 연두교서(State of Union)연설이 아니었을까. 연두교서 또는 국정연설로 불리는 연설은 미국 대통령이 연초 상·하원 합동회의장에 초청돼 국정의 골간을 밝히는 연설을 말한다. 하원의장이 대통령에게 초청장을 보내 이뤄진다. 이번 연설이 연두교서가 아닌 까닭은 트럼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전통이 그렇기 때문이다. ‘연두교서’라고 부르려면 대통령이 최소한 1년 이상 현직에 근무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말뜻 그대로 국가(Union)의 상태(State)를 알기 위해선 최소한 그정도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처음 연례연설을 시작했고, 프랭클린 루즈벨트부터 지금 형태의 직접연설이 된, 오랜 전통이다.

2009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첫 의회 합동연설도 연두교서로 불리지 않았다. 존 F 케네디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예외적으로 첫 의회연설을 ‘연두교서’라고 불렀다. 연두교서는 ‘대통령은 종종 국가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의회에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한 미국 헌법 3조2항에 근거한 것이다. 대통령과 의회 간의 소통은 대통령과 (연방의원들을 선출한)국민과의 소통으로 여겨져 대통령의 의무로 규정됐다. 이에 따라 미국 대통령들은 1934년부터 매년 1월 말이나 2월 초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례연설을 해왔다.

연두교서의 또 다른 전통은 미국 합중국의 대통령이 국가가 나아갈 굵직한 방향을 자신의 지문이 묻은 ‘화두’로 제시하는 것이다. 멀리는 제임스 먼로의 ‘먼로독트린(1823)’에서부터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표현·신앙·필요·공포로부터의 자유(1941)’ 린든 존슨의 ‘빈곤과의 전쟁(1964)’ 등 ‘대표 정책(Signature Policy)’이 발표됐다. 우리에게 악몽이었던 조지 W 부시의 ‘악의 축’ 발언도 2002년 연두교서에서 나왔다.

■역사에 남길 대표적인 ‘화두’를 제시하는 자리
트럼프 경우엔 이러한 ‘화두’ 보다는 그동안 유세과정에서 밝혀온 이런저런 정책 또는 구상들을 나열식으로 늘어놓는 데 그쳤다. 전세계가 그나마 이번 의회연설에 의미를 두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전달방식이었다. 트럼프 특유의 저속한 표현이나 막무가내식 태도가 보이지 않았기에 가슴을 쓸어내렸기 때문이다. 인종주의나 이민자 무시 발언도 없었다. 그 정도도 다행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월가에서 뉴욕증시의 다우존스평균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21000을 넘으면서 ‘황금시대’에 대한 기대가 표출됐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의 이러한 ‘스타일 상의 변화’를 환영하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방향제시도, 대표정책 발표도 없었던 트럼프의 첫 의회연설을 두고 연두교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대통령의 의회연설로도 수준미달이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1일 캘리포니아주 시미 밸리에 있는 로널드레이건 도서관에서 자신의 새 책 <용기의 초상들, 미국의 전사들에게 바치는 총사령관의 헌사 >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미밸리/UPI연합뉴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1일 캘리포니아주 시미 밸리에 있는 로널드레이건 도서관에서 자신의 새 책 <용기의 초상들, 미국의 전사들에게 바치는 총사령관의 헌사 >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미밸리/UPI연합뉴스

■의회 연설로도 함량미달, 오바마 연설 시청자의 66.5%에 그쳐
뉴욕타임스는 1일 ‘이제, 총사령관의 역할은…(Now, About That Role as Commander in Chief…)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미국 국내정책의 거의 모든 분야가 망라됐지만, 대외정책을 빼놓았다”면서 미국이 직면한 대외관계의 위협과 기회를 설명하고, 미국의 역할에 대해 논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대통령의 의회 연설은 대개 의회에 던지는 메시지와 국내정책 및 대외정책이라는 3개의 기둥으로 구성된다. 트럼프가 그중 대외정책이라는 기둥을 제외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최근 대통령 5명의 첫 의회연설만 보아도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1981)과 조지 H.W. 부시(1989)는 소련의 전략핵무기 전력 및 강한 국방력에 대한 경고음을 내놓았고, 빌 클린턴은 1993년 인종청소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그롤벌 민주주의 혁명, 글로벌 환경의 도전을 대외정책의 핵심키워드로 제시했다. 트럼프 처럼 당초 국내정책에 코를 박고 취임했던 조지 W 부시도 9·11테러 이후 국제주의로 돌변했음을 공표했다. 오바마는 ‘개입의 새로운 시대’를 대외정책의 아젠다로 내놓았다. 트럼프의 연설에선 미국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사활이 걸린 한반도 문제가 빠진 건 물론이다.

포린폴리시는 1일 “(첫 의회연설을 보고)새로운 트럼프를 믿지 마라”면서 “트럼프는 여전히 똑같이 낡았고, 무식하며, 쉽게 조정되고, 병적으로 자기중심적”이라고 꼬집었다. 2일자에는 아예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브랜드를 더럽히고 있다’고 썼다. 미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만 주로 이야기했지만 황금시간대 공중파와 케이블 TV 등으로 전국에 방영된 트럼프 첫 의회연설 시청자는 3485만명으로 버락 오바마의 2009년 첫 의회연설 시청자 5240만명의 66.5%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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