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월17일 일본 중의원에서 발언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해서 비상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한반도에서 난민이 몰려올 경우에 대비해 ‘외국인’ 보호와 일본 입국 절차, 난민수용소 건립·운영 및 망명신청자 스크린(선별) 작업이 비상계획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도쿄/AP연합뉴스
참 이상한 나라다. 이웃 국가에서는 내놓고 전쟁이 일어난다고 불안감을 부채질하는 데 모두가 손놓고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은 물론 외교를 밥벌이로 하는 고위공직자들마저 한가하기 그지없다. 지금, 여기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냉철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어떻게 ‘나랏일’을 업으로 밥을 벌겠는가. 그중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납득이 안되는 것이 대한민국 외교부의 침묵이다.
널리 알려졌듯이 최근 일본 정부 관계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종합해보면 ‘한반도는 전쟁 직전’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급기야 17일 중의원(하원) 공개발언에서 한반도 유사시 대책에 관한 질문에 “상륙절차와 수용시설 설치 및 운영에 관해서는 일본 정부가 보호해야 할 사람에 해당하는지 스크리닝(심사)하는 등의 대응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이건, 북이건 한반도에서 대한해협을 넘어 일본으로 넘어올 난민심사를 하겠다는 말이다. 제나라 국민이 졸지에 ‘가상 난민’으로 전락했음에도 외교부 당국자들은 입을 닫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한반도 유사시 한국 거주 일본인 6만여명의 보호 방안에 대해서도 협의를 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지극히 비외교적인 언사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 반사이익으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하락세에서 반등하고 있다하니, 이웃나라의 안위를 제물로 제 정치적 잇속을 챙기고 있는 꼴이다. 아베는 지난 13일 참의원 외교국방위원회에서는 사린가스 지하철 테러의 트라우마가 있는 일본 국민들에게 북한이 사린가스를 장착한 미사일 발사 능력을 갖췄을 것”이라고 말해 불안감을 한껏 높였다.
물론 현재 한반도 상공을 덮고 있는 먹구름의 발원지는 북한이다. 김인룡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17일 “미국이 간절이 원하는 어떤 종류의 전쟁에도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6차 핵실험 역시 “우리 지도부가 결정할 문제”라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고를 깡그리 무시했다. 우리 외교부가 이러한 말에 대응할 방법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일본에 대해서도 항의하고 경고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 11일 ‘해외안전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에 입국하거나 체류할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의경보를 내렸다. 여행이나 체류중 비상사태 발생에 대비한 메일 알림서비스까지 시작했다. 한국 내 일본인학교에 ‘한반도 정세주의 요청’메일도 발송했다.
개인 간의 일이건, 국가 간의 외교사안이건, 침묵은 암묵적 동의를 뜻한다. 한반도 전쟁 상황을 기정 사실로 두고 벌이는 일본 정부의 행동에 우리 외교부가 침묵한다면, 한국 정부 역시 한반도 전쟁위기를 인정하는 것이다. 침묵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외교부 아닌가.
더구나 박근혜 정부의 외교부이다.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대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합의해줌으로써 한·일 수교 이후 가장 큰 선물을 통째로 선물해준 ‘윤병세의 외교부’ 라는 말이다. 그 큰 선물을 주고도 할 말을 못하는 외교부가 스스로 제 얼굴에 침을 뱉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꼴을 하릴없이 바라보면서 자존심이 형편없이 구겨지는 국민은 뭔가.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소녀상을 치우라고 항의하다가 일본으로 넘어가 85일 동안 ‘시위’를 했던 나가미네 야사마사 주한 일본 대사가 개선장군 처럼 귀환하는 것을 정말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현직 외교관들의 상당수는 2011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해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받아본 사람들이다. 아무리 이상한 리더십 밑에서 몇년을 보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외교부가 망가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