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제3차 세계대전을 치를만한 전력의 집중화가 이뤄진다. 미군은 판문점의 미류나무 몇 그루를 선제절단 하는데도 한반도의 해역과 상공 및 육상에서 전쟁을 대비했다. 하물며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겨냥하게 될 선제공격에 막대한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 안될 것이다. 군사기밀이라고? 미국 펜타곤을 출입한 적이 있는 기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시나리오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과 워싱턴포스트에서 20여년 간 군사전문기자를 지낸 토마스 릭스 신미국안보센터 연구원(61)이 1일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5027이란 숫자를 알아야 할 이유, 코리아에서 전쟁은 어떻게 전개되나’라는 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릭스는 수천개에 달하는 휴전선의 북한 포대들에 대한 공격과 벙커버스터를 통한 땅굴공략, 북한 사령부의 눈과 귀를 막을 사이버작전, 북한 지도부 제거작전 등을 두리뭉술하게 소개했다. 특히 북한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이점 중의 하나인 휴전선에 배치된 포대들의 경우 드론을 띄워놓고 땅굴에서 포신을 내미는 족족 제거한다고 해도 족히 몇일 동안은 가동될 것이라면서 북한이 경고한 ‘서울 불바다’는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그가 미군 지휘부로부터 들은 설명을 토대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며칠만 서울이 불에 휩싸이면 전쟁은 끝날 것처럼 비친다. 백악관 상황실 탁자 위에 놓여있을 ‘모든 옵션’의 일단이다. 베테랑 기자답게 릭스는 짧은 글의 말미에 액센트를 넣었다. “때마침 서울에 온 마이크 폼페오 미국 중앙정보국(CIA)국장이 서울에서 이런 의논을 하고 있을까,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라는 질문으로 글을 맺었다.
북한의 도발 때마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미 동맹을 강조하지만, 기실 미국이 체감하는 위기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이라고 지목하면서 여유를 보이던 조지 W 부시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뒤 북한과 대화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번엔 미국인들의 체감 온도가 더 올라갔다. 북한의 핵탄두 미사일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비로소 북한이 미국의 가장 큰 위협으로 떠올랐다. 사람은 급할 때 본심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를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 4선의 상원의원인 린지 그레이엄(61)이다. 그는 “미국은 북한과 충돌과정에 있다”면서 “북한이 핵탄두미사일을 캘리포니아에 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상원 표결에서 그런 쪽에 표를 던질 수없다”고 강조했다. 그 끝에 선제공격도 대응의 하나라고 말했다. 앵커가 “선제공격은 전쟁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고 되묻자 “맞다. 전쟁이 나면 끔찍하지만 전쟁은 거기서 벌어지지, 여기서 벌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르켰다. “(전쟁은)중국과 일본, 한국에 모두 나쁘겠지만 북한이 미국에 오는 유일한 방법은 미사일 뿐”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이 미국에 도달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레이엄은 자연인 1인이 아니다. 상원 군사위원회의 핵심 위원이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대한 위협의 체감온도의 차는 이처럼 크다. 그레이엄은 위의 발언을 한 뒤 ‘투데이쇼’를 진행하던 남녀 앵커를 바라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목전에서 전쟁을 겪을 한국과 태평양 건너편에서 미사일이나 걱정하고 있을 미국의 위기의식이 어떻게 같겠는가. 그럴 것이라고 맹신해온 것이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국군 수뇌부의 사고인 것 같다. 탄핵정권 말기 이를 악물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배치한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에게도 면면히 이어지는 사고라고 본다. 미국 미사일방어(MD)체계에 포함됨으로써 강대국 정치에 휘말렸으면서도 이를 부인했던 청와대 안보팀이다. 이제는 조급한 배치를 위해 미국에 10억달러 어음을 발행했다는 합리적인 의혹을 낳고 있다.
전쟁에 대한 대비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사드에 반대하면 종북, 반미라고 명쾌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국을 상수로 본다.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아무리 많은 미군의 목숨과 아무리 많은 국방예산을 들여서도 한국을 방위해줄 것이라는 맹신이다. “동맹은 영원하지 않다”고 말해봐야 소 귀에 경 읽기다. 하지만 동맹도 사람처럼 피로를 느낀다. 동맹도 사람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혀 새로운 미국인이 아니다.
케이토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인 더그 밴도우는 지난 4월13일자 포린폴리시 기고문 ‘이제 남한을 풀어줄 때’에서 “북한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반도는 냉전시대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잃었고, 남한은 더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니며,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은 (공산주의 저지라는) 목적을 잃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도 역시 그레이엄과 비슷한 말을 했다. “한반도 내부의 전쟁은 비극적이고,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지만, 미국인이 연루되지 않는다면 싸움이 반도에 국한된다”라면서 “미군이 계속 주둔하면 분쟁을 단언코 확산시킬 것”이라고 썼다. “한국군의 잠재력은 대단하지만 미군에 대한 의존 때문에 그걸 깨닺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나마 밴도우의 논리 중에는 새겨들을 대목도 꽤 있다. “1950년과 달리 남한은 스스로 지킬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것이 밴도우의 핵심 논리다. 자주국방을 하려면 비용도 많이 들고 진지한 노력도 기울여야 하지만 “미국의 재래식 전력이 떠나고 나면 적절하게 동기부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방 이후 자주국방을 가장 처음 내세운 것은 박정희 정권이었다. 미국이 주한미군 보병사단 2개 중 1개를 철수한다고 하자 중·고등학교 교련시간에도 ‘자주국방!’을 구호로 외치게 했다. 밴도우의 말처럼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의 핵심인 핵우산 역시 재래식 병력이 한반도에 없더라도 일본과 괌, 하와이 등에 포진한 전략핵무기로 충분히 가능하다.
트럼프 행정부 취임 이후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미국의 험악한 경고 등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면서 한국인의 자존심은 형편없이 추레해지고 있다. “미국 놈 믿지 말고, 소련 놈에 속지말자. 일본 놈 다시 일어선다”는 해방직후 신파극의 대사가 연상되는 요즘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미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해 난민수용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굳이 북한이나 미국, 일본, 중국을 탓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냉엄한 국제관계인 것이다. 그런데도 제19대 대통령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 중 누구도 한반도 방위와 관련해 “우리가 지키겠다”고 말하는 후보는 단 한명도 없다. 한·미동맹 만 강조하고 있다. 어떤 근거로 미국이 착할 것이라고 단정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