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일이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도 나왔다. 거의 습관적인 여성폄하 발언들에 이어 “(잘난 여자일수록)그들의 XX(생식기)를 잡아라”는 트럼프의 말이 녹음된 테이프가 대선을 코앞에 둔 작년 10월7일 워싱턴포스트에 의해 공개됐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물론 페미니즘 단체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물론이다. 트럼프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유명 여배우들의 증언과 고발, 고소도 잇따랐다. 누가봐도 인간말종 같은 트럼프의 발언과 이에 따른 소란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트럼프의 당선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유권자들의 감정의 곡선은 가팔라진다. 가장 큰 변수로 ‘분노’가 떠오른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분노’도 같은 결은 아니다. 결에 따라 엉뚱한 분노도 있기 마련이다. 그 엉뚱한 분노가 판세를 갈라놓은 것이 지난해 미국 대선이었다. 이성적으로 보면, 트럼프의 여성폄하 발언이 선거에서 치명적인 패착이 돼야 했다. 하지만 감정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 지 모른다. 그 방향에 따라 판세가 달라지는 것이 선거다.
지난해 미시건대 연구팀의 분석 결과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유권자들의 여성에 대한 분노가 막판 판세를 바꾸었다.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열쇗말은 공화, 민주당의 정체성과 이념, 권위주의 및 인종주의 등이다. 성차별주의(섹시즘·sexisme)은 작은 변수로 비쳤다. 하지만 미시건대 연구팀이 지난해 6월 유권자 700명의 표본추출해 조사한 결과 섹시즘의 영향력은 인종주의의 영향력과 비슷했으며, 권위주의 보다 훨씬 강한 영향을 미쳤다.
연구팀이 던진 질문은 두가지였다. ‘많은 여성들은 별 상관없는 말과 행동을 성차별주의자로 해석한다’와 ‘많은 여성들은 (성)평등을 요구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고용정책 등에서 남성에 비해 특별한 대우를 요구한다’는 등 두가지 질문을 받았다. 성차별주의와 성(Gender)에 대한 태도를 분석할 때 흔히 사용되는 질문들이었다.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 지지를 밝히지 않았다가 투표한, ‘샤이(Shy) 트럼프’ 뿐 아니라, ‘샤이 섹시즘’에 숨은 여성에 대한 분노가 공화당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다. 클린턴이라는 능력은 있지만 믿기 어려운 여성후보의 존재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판세를 갈랐다는 분석이다. 근거가 있건 없건 분노는 이처럼 민주주의 선거제도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대세를 결정짓는 변수가 된다.
제19대 대선의 막바지에 “종북좌파 척결” 구호가 등장한 것 역시 이러한 감정의 정치학에 기댄 것으로 비친다.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샤이 지역주의’가 덜 먹히자, 친일파에서 유전자변이 과정을 거쳐 ‘좋은 세상’을 누려온 수구기득권층을 노리고 ‘샤이 반(反)빨갱이’ 카드를 내민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수구기득권층의 민낯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가 많아 영향이 적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영향력이 줄었다고 소멸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선 결과와 함께 ‘샤이 종북몰이’의 현주소를 점검해야 할 이유다.
‘감정의 정치학’이 때론 우연히, 때론 의도적으로 만든 분노의 특성은 맹목성이다. 한반도에서는 수구기득권층이 주류를 장악한 상황에서 맹목성을 교묘하게 희석시켜온 것이 부끄러운 현대사의 단면이자 현재진행형인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특히 북·미관계에서 이러한 모순이 돌출한다.
분단은 많은 아이러니를 만들어왔다. 그중 치명적인 것이 종북(從北)과 숭미(崇美)의 아이러니다. 예컨대 김영삼 정부는 1990년대 북한에 ‘한국형 경수로’ 2기를 공급(약 40억달러 상당)하기로 한 제네바합의 같은 것은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1기 행정부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체제전복을 공공연하게 말하다가 북한의 1차 핵실험 뒤 태도를 180도 바꾼 조지 부시 행정부는 어떠했는가. 부시 대통령이 2007년 12월 크리스 힐 국무부 차관보 손에 들려 보낸 김정일 앞 친서는 ‘친애하는 위원장(Dear Mr. Chairman)’으로 시작해 ‘충심으로(Sincerely)’라는 말로 끝났다. 한국 지도자가 이런 표현을 썼다면 나라가 뒤집혔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하면 아무일도 없이 넘어간다. ‘종북좌파’와 ‘숭미주의자’들은 일란성 쌍생아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당장이라도 북한을 선제공격할 듯 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느닷 없이 김정은이 "영리한 친구"라며 "만나게 되면 영광"이라고 말해도 국내에선 별 반응이 없다. ‘코리아 패싱(한국 왕따)’은 이처럼 우리 스스로 자초하는 측면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