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부터 북한에 억류돼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오토 웜비어(22)의 친구들이 석방촉구 스티커에 인공기를 넣은 것이다. 졸업생들은 너나없이 인공기 스티커를 집어들었다. 한 손에 풍선을, 다른 손에 스티커를 든 학생은 활짝 웃으면서 “오토는 우리가 오늘 하루를 즐기면서 자기 생각을 해주길 바랄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오토를 보고싶다(We miss Otto)라는 글귀 붙인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은 졸업의 기쁨을 만끽하면서도 함께 하지 못한 친구를 기억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워싱턴포스트가 같은 날 소개한 장면이다.
오토가 북한에 억류된 것은 지난해 1월. 경영학과 3학년이던 그는 해외무역연구 프로그램에 참가한 길에 북한을 방문했다. 예정된 귀국일을 넘기고 두어달이 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관을 경유하느라 3월 말에나 미국 국무부에 전달된 동영상에 오토의 모습이 나왔다. 눈물이 범벅이 된 모습으로 자신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에 적대적 행위를 했다고 뇌우치면서 용서를 비는 기자회견(2월29일) 장면이었다. 친구들이나 오토의 부모는 일단 그가 살아 있음을 알고 안심했다. 곧 석방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봄학기가 끝나고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으며 친구들은 졸업식을 맞게 됐지만 석방 소식은 감감이다. 되레 북한 사법당국에 의해 공화국에 대한 ‘적대행위’ 혐의로 15년 간의 노동교화형에 처했다. 북한 측은 CNN인터뷰에서 오토의 혐의와 관련, 방북전 미국 오하이오주 와이오밍의 연합감리교회에서 만난 한 반북인사로부터 슬로건을 훔쳐오면 1만달러를 주기로 했다는 사실도 적시했다. 물론 사실 여부는 규명되지 않았다.
북한의 인질 외교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5월7일에도 미국 국적자로 평양과기대에 근무하던 김학송씨를 ‘반공화국 적대행위’ 혐의로 억류했다고 보도했다. 5월3일에는 한국계 미국인 김상덕씨(토니 김)를 ‘국가를 전복하려는 적대적인 범죄행위’를 한 혐의로 억류했다.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 목사와 오토를 포함해 미국 국적자 4명을 억류하고 있다.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당국이 김정남 살해 용의자들을 구금하려는 데 반해 평양의 말레이시아인들을 인질로 삼았다.
북한의 미국인 억류는 크게 두가지 의도가 담겨 있다. 실제로 북한 민주화나 선교 목적을 갖고 체제전복을 기도한 경우는 북한에서 중대한 범죄로 규정된다. 분단 이후 수십년 동안 ‘피포위심리(seiged mentality)’에 갇혀 있는 북한으로선 체제수호를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질타를 받는 또다른 경우는 심각한 범법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장기징역(노동교화형)을 선고한 뒤 이를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불쏘시개로 이용하는 관행이다. 오토의 혐의도 자유세계에서는 철없는 젊은이의 ‘장난’으로 치부할 수 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집에 불이나거나 홍수에 떠내려가게된 위급상황에서도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초상을 비롯해 체제상징인 ‘1호사진’을 먼저 챙겨야 하는 북한에선 심각한 범죄로 간주된다. 하지만 처벌 목적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외교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의도가 짙어보인다. 외교적 긴장이 높아지거나, 스스로 긴장을 높이려고 하는 시점에 향후 긴장완화의 도구로 인질을 활용해온 것이다. 북한의 인질외교는 말레이시아 외교관 억류에서처럼 많은 경우 먹힌다.
북한은 2009년 미국인 여기자 로라 링과 유나 리를 국경침범 혐의로 5개월 간 억류하다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해서 데려가게 했다. 2010년 8월에는 역시 노동교화형을 받았던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를 평양으로 찾아온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귀국길에 딸려보냈다. 그 전에 잘못을 공개리에 시인토록 하고 종종 눈물로 뇌우치는 모습을 외부에 내보낸 뒤 용서하는 유죄시인-반성-용서의 3단계 수순을 거친다.
북한은 언제까지 정치적 목적에서 자국민은 물론 타국민의 기본권을 억류, 감금할 것인가. 북한은 외부의 압박과 고립을 늘 강조하지만, 정작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면서 그 안에서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그러면서 명분으로 내세우는 ‘조국 통일’은 또 얼마나 허황된 구호인가. 하지만 북한 체제가 존재하는 한 자유세계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외국인 억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외부세계는 북한의 행위를 비난할 권리가 있다. 한껏 목울대를 울리며 반북구호를 외칠 수도 있다. 하지만 한풀이 외에 실질적인 의미는 적다. 문제해결과도 거리가 멀다. 반북 논리의 끝을 따라가보면 종종 전쟁을 통해서라도 북한 지도부를 제거해야 한다는 주전론과 맞닿아 있거나 결과적으로 전쟁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북한과 대화하려는 모든 노력을 ‘좌빨’로 몰아세우는 것 역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보다는 우리 안의 갈등만 높일 뿐이다. 그럴수록 오토의 석방은 멀어진다.
북한의 뻔한 수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직 미국 대통령들이 2009년과 2010년 각각 평양을 방문해 억류된 미국인을 데리고 나온 것은 왜 그랬을까. ‘반미자주’를 강조하는 북한 당국은 “미국을 굴복시켰다”면서 득의양양하게 선전할 것이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들이 고작 한 두명의 국민을 가족 품에 돌려주기 위해 어찌보면 굴욕적인 적대국 방문을 마다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모를 것이다. 알더라도 질끈 눈을 감고 프로파갠다에 올인할 것이다. 은퇴후에도 세계의 지도자로 활동하는 클린턴과 카터가 평양에 간 까닭은 자국민 보호에 최우선순위를 뒀기 때문이다. 그게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 해야할 일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방북을 ‘굴욕’으로 보는 순간, 북한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