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위안부 할머니들, 해바라기꽃, 하원결의안 10년

위안부 할머니들의 벗, 고 에미 팔레오마배가 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동아태소위 위원장이 2009년 경기 퇴촌 ‘나눔의 집’을 방문해 위안부 할머니들을 감싸안고 있다. 팔레오마배가는 2007년 7월30일 미국 연방 의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채택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의 주역으로 지난 2월 지병으로 타계했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2007년 7월30일은 미국 하원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HR121)을 채택한 날이다. 그 사이 결의안 통과의 주역들과 할머니 여러분이 돌아가셨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 사과하고, 끔찍한 행동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2007년 결의안 상정, 청문회 개최, 통과의 전 과정을 주도했던 고 에니 팔레오마배가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동아·태 소위 위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리사 윌리엄스가 결의안 통과 당시 드라마 같았던 과정을 되돌아보는 글을 보내왔다. 

아래는 기고글 전문.

위안부 할머니들, 해바라기꽃, 미 하원 결의안(HR)121

리사 윌리엄스 전 에니 팔레오마배가 미국 하원 외교위 아·태 소위원회 위원장의 비서실장

2007년 두 명의 (미국) 하원 의원이 공모를 했다. 위안부 생존자들을 위해 뭔가 하자는 결의였다. 완곡한 표현으로 ‘위안부’라고 불리는 이 분들은 193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일제군대에 의해 일본의 아시아·태평양 식민지와 점령지에서 성적노예로 내몰렸던 분들이다. 고 에니 팔레오마배가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 소위원회 위원장(민주·아메리칸 사모아)과 마이크 혼다 의원(민주·캘리포니아)은 형제와 같았다. 일본군대 안에서 잔혹한 대우를 받았던 여성들을 옹호하기 위해 태어난 분들이었다. 에니와 마이크는 무엇보다 이 귀한 분들을 경건하게 대하면서 ‘할머니들’ 이라고 불렀다. 자신들의 할머니이자, 당신들과 나의 할머니들이라고. 두 분은 ‘그날’이 올 때까지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정의라면 무엇이던지 되돌려 놓기 위해 울력을 다했다. 

일본계 미국인인 혼다 의원은 종래 관행을 단호하게 반대하면서 일본 정부의 공식 시인, 사과 및 역사적 책무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하원 결의안(HR) 121을 상정했다. 다른 의원들도 과거 ‘할머니들’을 위해 결의안 도입을 감행했었지만 일본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이었다. 팔레오마배가는 혼다의 청을 받아들여 위안부 청문회 개최에 동의했다. 상·하원을 통틀어 연방의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할머니들’을 위해 열린 청문회였으며 그가 연 첫 청문회였다. 

청문회에서는 혼다 의원과 세명의 살아 있는 ‘할머니들’이 증언했다. (네덜란드의) 얀 러프 오헤른, 김군자, 이영수 할머니였다. 그들의 증언은 강력했고, 비통했으며, 감동적이었고 또 필요했다. 당연히 주목을 받았다. 청문회의 대담록은 사이트(대담록 바로가기)에서 볼 수 있다. 팔레오마배가가 말했듯이 오늘까지 “이들의 증언은 움직일 수도, 바뀔 수도 없는 기록”이다.

백악관은 안타깝게도 2014년 ‘우리 국민들(We the People)’ 사이트에 캘리포니아 글렌데일 소녀상의 철거를 지지하는 청원이 게재되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한인사회의 노력으로 위안부 이슈는 여전히 살아 있다. 엘리 위젤(유대계 미국인 작가·198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은 홀로코스트 추념일에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을 위해, 우리는 증언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인사회가 바로 그렇게 했다.

결의안 통과를 위해 노력한 김동석씨와 그의 미주한인 시민참여센터(KACE)에 감사한다. 데니스 핼핀 하원 외교위원회 전문위원과 고 헨리 하이드 전 외교위원장(공화·일리노이, 2007년 작고)은 드러나지 않은 영웅들이다. 하이드 전 위원장은 위안부 결의안(HR 759)을 처음 상정했던 분이고, 고 레인 에반스 의원(민주·일리노이)이 이를 이어받았다. 피터 여 하원 외교위 부국장과 톰 랜토스 의원(민주·캘리포니아, 2008년 작고) 및 일레나 로스레티넨 당시 외교위 야당 간사(공화·플로리다)의 도움이 없었다면 위안부 결의안(HR121)의 통과는 불가능했다. 랜토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중 최초이자 유일한 연방의원이었다. 

팔레오바매가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이 모든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팔레오마배가는 지난 2월 세상을 떠났고, 김군자 할머니는 며칠 전 돌아가셨다. 팔레오마배가를 대신해서 이 글을 전달한다. 

팔레오마배가의 비서실장이자 아·태소위원회의 첫 여성 직원으로 나 역시 증언한다. 팔레오마배가는 우리의 ‘할머니들’을 끔찍하게 아꼈고, 사랑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나눔의 집으로 찾아가 함께 춤을 추곤 했다. 그때마다 팔레오마배가를 수행해 그가 할머니들과 나눴던 특별한 유대관계를 목격할 수 있었던 특권을 누렸다. 마이크 혼다 역시 그러한 유대와 특권을 함께 했다.

팔레오마배가는 HR121의 통과를 자신의 하원의원 재직기간(1989~2015년) 중 하원에서 통과된 가장 중요한 결의안의 하나로 여겼다. 일본의 사과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계할 때까지 그 사과가 충분치 않았기에 일본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팔레오마배가 의원과 김군자 할머니는 안식을 취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팔레오마배가가 불렀던 사모아 노래 CD를 틀어놓고 하늘나라 어딘가에서 함께 춤을 추고 있으리라 믿는다. 

한 개척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늘 쉽지 않다고 말했었다. 우리도 그곳에 도달하려면 어려운 때를 지나야 것이다. 하지만 그 여정에 “거대한 버팔로 무리와 언덕 위의 높다란 삼나무들, 해바라기꽃들이 넓게 펼쳐진 땅처럼 지금까지 보지 못한 풍경을 보게될 것이다.”

팔레오마배가 위원장과 혼다 의원, 김군자 할머니, 오헤른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 살아 계시든 돌아가셨든 모든 할머니들 한 분 한 분은 활짝 핀 해바라기들이 펼쳐진 넓은 땅과 같다. 김군자 할머니의 시신이 놓였던 병원에 꽃을 보내준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들을) 기억한다는 것의 대의(大義)를 이어준 문 대통령의 용기에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살아 계시거나 돌아가신 이들을 위해 우리는 요한게시록 21장 4절에 쓰인대로 ‘그날’이 올 때까지 증언을 지킬 것이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할” 그날이 올 때까지. 

<미국 하원 결의안 HR121호 주요내용> 

미국 하원은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위안부’로 알려진 젊은 여성들을 군대에 대한 성적 서비스 목적으로 동원하는 것을 위임했다. 위안부는 잔학성과 규모면에서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 가운데 하나다. 일본 정부는 강제로 위안부를 만든 사실을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하고 사과하며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2. 일본 총리가 공식 성명을 통해 사과하면 반복되는 의혹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있다.

3. 일본 정부는 일본군이 위안부 인신매매를 한 사실이 결코 없다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4. 일본 정부는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대상으로 끔찍한 범죄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