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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오늘

[김진호의 세계읽기]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의 지독히 불편한 방북기

by gino's 2017. 10. 10.


북한 주민들이 지난 8월9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유엔 안보리가 내린 대북 제재에 반대하면서 미국에 핵보복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최근 방북한 미국 언론인들은 북한 주민들이 실제로 핵전쟁이 임박했으며 그 결과 북한이 이길 것이라는 당국의 선전을 믿고 있는 것 같다고 전한다. AP연합뉴스



“1980년대부터 북한 문제를 다뤄왔지만, 이번 방북에서처럼 재앙의 위협을 접한 적은 없었다.”

노련한 언론인 역시 개인적 경험과 느낌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일까. 지난 달 말 북한을 12년 만에 방문했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의 방북기가 연휴 동안 한국 사회 일각에서 조용한 주목을 받았다. 지난 10월8일자(현지시간) 뉴욕타임스 일요판에 소개된 그의 방북기는 ‘북한 내부에서 전쟁의 북소리를 감지하다(Inside North Korea, and Feeling the Drums of War)’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평양이 온통 핵전쟁 전야의 분위기였음을 강조했다. 긴장이 고조돼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이 그에게 특히 불안감을 갖게 했을까. 


■평양은 미국과의 핵전쟁 전야? 

크리스토프는 우선 북한 외무성 고위당국자들은 물론, 평양 거리에서 만난 고등학생부터 다양한 직업인들에 이르기까지 단 한명도 예외없이 미국과의 핵전쟁이 임박했으며, 미국은 재로 변하겠지만 북한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가 인터뷰한 최강일 외무성 북미국 부국장은 “한반도는 핵전쟁 발발 전야”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서로 욕하면서 배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일 뜬금 없이 ‘폭풍 직전’이라고 말한 것과 겹친다.)

‘셀수 없이 많은’ 탈북민과 인터뷰했다는 크리스토프는 노인세대와 북·중 접경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주민들은 대부분 북한이 미국과의 핵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당국의 발표를 실제로 믿는다고 짚었다. 두번째는 호텔에 머물렀던 2005년 방북 때와 달리 이번에는 고방산 초대소에 묶으면서 북한 외무성 관리들의 철저한 감시 또는 보호를 받았다는 점을 들었다. 군부나 보위부 강경파들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하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북한군 고위 장성들이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북한에 수감된 미국인 3명과의 면담도 불발됐다고 전했다. 최강일과 리용필 외무성 미국연구원 부원장은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망과 관련해 미국쪽에 책임을 떠넘겼다.

북한 주민들이 지난 10월8일 평양 대동강변의 김일성 광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노동당 총비서 추대 20주년 경축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북한 주민들이 지난 10월8일 평양 대동강변의 김일성 광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노동당 총비서 추대 20주년 경축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크리스토프가 지적했듯이 그의 이번 방북이 과거와 가장 다른 대목은 북한 뿐 아니라 미국 역시 충동적이고, 지나치게 자신만만하며, 곧 잘 흥분하는 성격의 지도자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핵능력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수준에 거의 도달했다는 점도 다르다.


■‘출구’가 안보이는 상황 

북한은 미국이 먼저 제재를 포기하고 적대적 태도를 접으라고 주장한다. 미국 역시 북한이 먼저 모든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라며 각각 ‘비현실적 요구’를 하고 있다. 크리스토프는 양측이 서로 약하게 보이지 않도록 군사적 엄포를 놓고 있지만, 기실 평화적 해결을 선호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갈등을 개인감정화하고 확대시키는 것을 즉각 중단하고, 조건 없는 대화에 착수하며,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박탈을 걸고서라도 인권문제 아젠다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외부 정보를 담은)USB 반입 단체를 지지하고, 미국이 이미 착수한 대북 사이버전을 강화하며, 타당한 결과를 도출하도록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6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북핵 해법을 조금이라도 고민해보았다면, 서로 상충되거나 현실성이 없으며, 희망사항을 나열한데 지나지 않음을 간파할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최선책은 배핵화의 장기적 목표를 유지하되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발사 중단과 한·미 합훈 중단을 교환하는, ‘동결 대 동결’의 잠정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썼다. 그게 안되면 차선책으로 (핵전력 간)상호 억지(mutual deterrence)를 시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론은? 비관이다. “불행히도 북한과 미국 모두 이러한 접근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북한 당국이 10월7일 배포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북한 당국이 10월7일 배포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글을 닫으며 그가 남긴 마지막 단락은 한반도 거주민이 읽기에 지독하게 불편했다. “북한을 떠나면서 2002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떠나면서 느꼈던, 똑같은 불길함을 느꼈다. 전쟁은 예방가능하지만, 예방할 수있을런지 모르겠다.” 사담 후세인 정부도 승리를 장담했지만, 2003년 조지 부시 행정부의 침공으로 궤멸됐다. 크리스토프는 최강일에게 같은 경고를 했지만 “(핵을 갖추지 못했던)이라크나 리비아 같은 나라와 우리는 다르다”는 답을 들었을 뿐이다. 이라크 침공은 지역문제에 국한됐지만, 북·미 핵전쟁은 세계사적 재앙이 될 수있다. 

■북한이 기획한 미국 주요언론 기자들의 방북 

이쯤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크리스토프를 비롯한 뉴욕타임스 기자 일행 4명의 방북은 북한 당국이 기획한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지난달 25일자 ‘평양으로부터의 편지’라는 방북기를 현지 분위기 전달을 중심으로 보도한 바 있다. 미국 국무부는 웜비어 사건 이후 미국민의 북한방문을 최근 금지시켰지만 자국 기자들에게 특별 단수여권을 발급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프로파갠다에 능하다. 실제로 북한 당국자들은 미국 기자들에게 자신들의 전쟁능력과 제재 내구력을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북한이 정말 자신이 있다면, 굳이 미국 기자들을 동원해 능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 자체가 자신감의 부족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 또는 희망적 사고가 고개를 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5일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군 수뇌부 부부동반 만찬 전에 기자들 앞에서 양손 엄지 손가락을 올려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고 반문한 뒤 “폭풍전의 고요(the calm before the storm)”라는 말을 내놓았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5일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군 수뇌부 부부동반 만찬 전에 기자들 앞에서 양손 엄지 손가락을 올려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고 반문한 뒤 “폭풍전의 고요(the calm before the storm)”라는 말을 내놓았다. EPA연합뉴스


1984년 뉴욕타임스에 들어간 크리스토프는 지금까지 140여개국을 취재했다. 특히 ‘악의축’으로 낙인찍힌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각각 여러차례 방문했고, 수단 다르푸르에서 위험한 현장에서 전쟁통에 희생되는 여성과 난민 등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북핵 해법으로는 북한을 직접 상대(engagement)할 것을 강조해왔다. 그가 북·미간 핵전쟁의 우려를 처음 전한 것은 아니다. 2005년 7월 평양 방문에서는 3편의 방북기를 썼다. ‘적의 전선 뒤에서(Behind Enemy Lines)’라는 칼럼의 마지막 단락에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어느 때 보다 우리는 핵무장국과의 충돌 도상에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세편 중 두편에서 북·미 대화를 통한 직접 상대(engagement)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번 방북기에는 더이상 북·미 직접 대화론을 펼치지 않았다. 



■한반도 거주민에겐 지독히 불편한 결론


수십년 분쟁 현장을 누벼온 그에게도 이번 상황은 녹록지 않았는지, 아니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좌절이 깊어서인지 이번엔 맥없는 논조에 그쳤다. (그는 지난해 미국 대선 직전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다면 우리 안에 또 다른 김정은을 갖게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니콜라스 크리스토프가 2010년 1월30일 다보스 포럼에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위키피디아

니콜라스 크리스토프가 2010년 1월30일 다보스 포럼에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위키피디아

다만, 이번 방북은 오토 웜비어의 죽음이 던진 충격에 더해 이를 발뺌하는 북한의 태도에 더욱 움츠러든 여정이었음이 감지된다. 크리스토프와 함께 간 뉴욕타임스 필진 캐럴 지아코모의 방북기에서도 비슷한 정서가 잡힌다. 북한의 호전적인 프로파간다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음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 독자들을 위한 방북기다. 

그럼에도 크리스토프가 전한 불길함은 여운을 남긴다. 같은 날짜, 같은 지면에 실린 소설가 한강의 기고문 ‘미국이 전쟁을 이야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 가 한국민의 정서를 내보였다면 크리스토프의 글은 미국 여론주도층의 좌절을 담고 있다. 일부 국내 핵무장론자들의 주장처럼 우리는 북핵에만 인질이 된 게 아니다. 백악관 집무실 탁자 위에 놓인 모든 옵션에도 인질이 됐다. 청와대 탁자 위에는 어떤 옵션이 놓여 있을까. 한·미가 쥐고 있는 옵션들의 ‘최대 공약수’를 찾아내려는 노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101805001&code=970100&sat_menu=A074#csidxdbf12159b56133ba6ccd5e8351d9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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