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틀전인 지난 6월10일 평양 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기 전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전용기 참매1호가 아닌 중국 국제항공의 보잉747기로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배부한 사진이다. EPA연합뉴스
“도대체 북한이 뭐길래,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을 앞두고 세계가 이 난리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좌를 앞두고 있는 시점, 누군가 이런 말을 내놓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제나라 국민을 수십만명 굶겨죽인 나라의 정권을 3대 세습하고, 생물학적인 형을 외국 공항에서 독살했으며, 호기심 많은 미국 대학생이 1년여 동안 구금됐다가 부모품에 안기자 마자 숨지도록 한 나라.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해 한국과 일본은 물론, 서태평양 상의 미군 기지 괌을 포위사격하겠다고 위협했던 나라. 1990년대 핵개발을 본격화한 이후에도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북한과 만나주는 것 자체가 일종의 보상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미국이 그리 하찮게 대해왔던 나라의 지도자가 갑자기 세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집권 6년이 넘도록 어떠한 외국 정상과도 회담을 하지 않았지만 최근 각각 두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북·중정상회담을 거쳐 북·미 대좌에까지 이르렀다.
국내외 언론은 두 지도자의 만남을 냉전시절 데탕트의 물꼬를 텄던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뚱 중국 주석의 만남,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만남과 견주고 있다. 테이블의 한편에는 미국 대통령을 그대로 두었지만, 맞은편 자리에는 옛소련과 중국 지도자 대신 북한 지도자를 놓는 비유다. 싱가포르 북·미 대좌가 ‘세기의 회담’인 것은 맞지만 세계를 좌우할 회담이라기 보다 그만큼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회담이라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국무위원장은 어떻게 세계의 눈과 귀를 훔쳤을까. 아이로니컬하게도 ‘세계’가 가장 반대한 일을 기어코 해냈기 때문이다. 부인할 수 없는 국제관계의 단면이다. 북한을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라며 한없이 비웃다가 2006년 1차 핵실험 뒤에야 6자회담장에 다시 돌아온 조지 부시 행정부가 보여준 극적 전환의 확대판이다.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열화우라늄탄(수소탄)을 포함한 핵무기 능력을 갖췄다. 여기에 핵무기를 싣고 미국 본토를 위협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거의 갖췄기 때문이다. 두가지 능력은 지난해 한해동안 입증됐다. 북한이 2017년 11월29일 ICBM 화성15형 발사성공과 동시에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연유다. ‘달’도 차면 기운다. 북·미 간 대치가 종점에 가까워지면서 북·미 정상이 정상회담 하루전부터 싱가포르에 달려온 것도 그 때문일게다. “북한의 핵위협이 없었다면 북한과 같은 작은 나라가 이처럼 세계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린지 포드 미국 아시아정책연구원 국장)”는 말은 그래서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뿐일까. 한반도 문제를 철저하게 북핵문제의 하위개념 또는 후속개념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20세기부터 이어진 미국 조야의 지독한 한계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결국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되자 반북·친미에 뿌리를 둔 대한민국 제1 보수야당의 대표가 트럼프를 비난하는 해프닝은 그렇게 탄생했다. 한국전쟁과 그 이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군사적 대치의 역사는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세계는 북·미 지도자의 만남에서 핵문제만 보지만, 한반도 거주민들은 그리 단순하게 볼 수 없는 까닭이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내일 만난다. 트럼프의 말대로 ‘상대를 알아보는(get-to-know-you)’ 만남이어도 좋고, 비핵화와 체제보장과 관련해 굵직한 합의를 도출해내는 정상회담이어도 좋다. 세계의 넘치는 관심 속에 두 지도자의 만남을 기다리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과연 북한이 무엇인가, 한반도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상념에 먼저 휩싸이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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