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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오늘

북중 접경지 단둥을 가다1, 압록강 넘어온 '북한 바람'... 변화는 아직 물 밑에서만 일렁였다

by gino's 2018. 7. 17.

압록강의 중국 관광보트 지난 6일 중국 단둥에서 압록강 너머로 바라본 북한 신의주. 정박해 있는 북한 배 앞에 중국의 관광보트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아버지는 왜 안 나오나….” 

금요일이던 지난 6일 오후 4시36분 단둥(丹東)역 출구. 평양에서 출발한 국제열차에서 내린 북한 주민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30대 엄마와 함께 북한에서 오는 아빠를 기다리던 예닐곱 살 된 아이의 말에는 평안도 억양이 묻어나왔다. 북한 주민들은 세관검사 탓에 중국인 승객들보다 나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엄마는 “(아버지가) 짐이 많아 그래”라면서 난간에 올라서서 목을 길게 빼며 기다리는 아들을 달랬다. 아이는 “아냐, 뚱뚱해서 그래”라며 흘려버린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아빠는 입성이 깔끔했다. 단둥 주재원 가족으로 보였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역광장으로 사라지는 젊은 가족의 뒷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이날 국제열차에서 내린 북한 여행객 20여명은 일부 중장년 남성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용모와 자태, 차림새가 세련됐다. 

정중동(靜中動). 단둥은 조용히 들썩이고 있었다. 변화는 뚜렷한 실체가 아니었다. 실제보다는 마음속에, 오늘보다는 내일을 기대하는 희망이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핵전쟁 직전으로 치닫던 한반도 정세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가장 먼저 변화의 바람이 표출된 곳은 단둥이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북·중 정상회담과 사상 첫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리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로 얼어붙었던 단둥에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달 12일, 싱가포르 북·미 대좌는 미증유의 변화를 예고했다. 

■ 북·중 교역 늘리려 인프라 확대한 랑터우, 아직은 ‘대기 중’ 

지난 7일 중국 단둥 도심에서 바라본 신의주. 공장 굴뚝 너머로 멀리 고층빌딩들이 들어선 남신의주 시가지가 보인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지난 7일 중국 단둥 도심에서 바라본 신의주. 공장 굴뚝 너머로 멀리 고층빌딩들이 들어선 남신의주 시가지가 보인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세상은 이제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및 한반도와 미국의 모든 관계가 과거와 아주 많이 다른 상황이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 변화가 시작된다면 북·중 교역의 70% 이상이 진행되는 단둥(丹東)에서 비롯될 것이 분명하다. 경향신문이 지난 6일 단둥을 찾은 까닭이다. 단둥 남쪽 둥항(東港)에서 수풍댐까지 120㎞를 자동차로 오가면서 바라본 압록강 건너 북한의 초여름 풍경도 함께 전한다.


북 여행객들, 세련된 차림새 
역 광장선 북 관광상품 판매


단둥역 광장에서는 천막을 쳐놓고 중국인 단체관광객(游客·유커)을 상대로 북한 신의주로의 당일 관광 또는 평양, 묘향산, 개성 등지를 돌아보는 3박4일 여행상품을 팔고 있었다. 단둥시 웨량다오(월량도)의 베니스 호텔 로비에도 북한 관광상품을 홍보하는 입간판이 서너곳 눈에 띄었다. 신의주 당일 관광의 경우 1인당 390위안(약 6만5000원)의 비용에 여권 필요없이 신분증만 지참하면 된다는 안내문구가 쓰여 있었다. 단둥시 도심에서 바로 강 건너로 보이는 신의주 관광식당에서 식사하고 북한 예술단 공연을 관람한 뒤 신의주 시내를 둘러보는 상품이었다. 단둥과 신의주는 한 생활권이다. 중조우의교(압록강대교)를 오가는 빵통차(컨테이너 트럭)는 대략 500대. 대부분 중국 트럭이고 ‘평북’ 번호판을 단 북한 트럭은 100대 안팎이다. 단둥 일대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는 대략 1만5000명에서 2만명 사이다.


여자들은 봉제업체에서 일하고, 남자들은 주로 수산물 가공업체에서 선별작업을 하고 있다. 먼지 많은 작업장이나 얼음창고에서 일을 해야 하는 고된 노동이다. 임금은 월급과 숙박비를 포함해 2300위안(350달러) 안팎. 여기에 사회보장비용 등을 합해도 중국인 노동자 임금의 80% 정도에 불과하다. 교민 ㄱ씨는 “임금은 낮지만 생산성은 중국인 노동자의 1.5배에 달해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유엔 안보리 제재 2397호에 따라 외화벌이에 나선 북한 노동자들의 기존 계약기간이 끝나면 신규 채용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북한 노동자의 총원은 그다지 줄어들지 않은 것 같다”는 전언이다. 2016년 말 기준으로 노동자와 무역상 등을 합해 3만여명(세종연구소)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줄어든 규모다. 20여곳에 이르는 북한식당들도 정상적으로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압록강변의 ‘봉선화’에서는 북한 여성 직원들이 친절하면서도 싹싹하게 손님을 맞고 있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결 친절해졌다는 평가다. 북한식당이나 북한상점들은 중국인 또는 중국 기업이 소유권을 갖고 직원이나 운영체계를 북한에 맡기는 방식이 정형화되고 있었다. 


지난 5일 신의주 압록강변에 정박한 북한 선박의 갑판 위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북한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왼쪽의 남자들은 강물을 길어 몸을 씻고 있다. 해맑은 표정의 여자들이 살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지난 5일 신의주 압록강변에 정박한 북한 선박의 갑판 위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북한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왼쪽의 남자들은 강물을 길어 몸을 씻고 있다. 해맑은 표정의 여자들이 살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단둥·신의주 집값 동반상승

신압록강대교 들어선 랑터우

세관 완공, 북 영사관도 이전 


지난봄 단둥에 가장 먼저 일어난 현상은 부동산 붐이었다. 토지는 소유하지 못하지만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상업용 건물 값이 껑충 뛰었다. 가장 민감한 곳이 신압록강대교로 연결된 단둥 신도시 랑터우(浪頭)였다. 과도한 개발로 ㎡당 2000~3000위안(33만~50만원) 하던 아파트값이 2배로 뛰었다. 신축 아파트의 경우 7000위안을 웃돌기도 한다. 물론 실거래에 기반한 가격이라기보다 기대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그나마 단둥시가 거래제한조치를 취한 뒤 주춤하고 있다. 한인 부동산 분양대행업체의 한 관계자는 “요즘은 가격을 안 올리고 있다. 올리더라도 표 안 나게 조금씩 올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투자자들을 상대로 인위적인 인상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신의주 집값도 함께 춤을 춘다. 지난달 29일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북한정보’에 따르면 “신의주는 중국과 맞닿아 있어 경제적으로 가장 발달한 지역으로 주택 매매가격이 ㎡당 5000위안(84만원)으로 단둥 지역과 비슷한 수준”이다. 개성(2300~4000위안)이나 청진·나선(1000위안)보다 높다. 2009년 북한 주택법에 의해 주택은 거래 대상이 아니지만, 이미 암암리에 거래되면서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역시 코트라에 따르면 지난 5월1일 연휴기간 동안 부동산 매입을 위해 단둥을 찾은 손님 중 30% 정도가 외지에서 왔다. 집값만 동반상승한 게 아니다. 


분양 완판된 오피스 빌딩 ‘공실’ 
호시무역구, 상점 2곳만 입주
교민 “민간부문 제재 여전”
 


2014년 9월 완공된 신압록강대교가 들어선 단둥 남부 랑터우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신의주와의 교역을 대폭 확대하기 위한 인프라를 갖춰놓은 상태였다. 웅장한 규모의 세관 건물과 북한 국제학교가 들어섰고 북한 영사관이 40㎞ 정도 떨어진 도심에서 이전해왔다. 20여층 규모의 오피스빌딩 궈먼다샤(國門大厦)는 3년 전 준공도 되기 전에 이미 100% 분양됐다. 단둥과 신의주는 압록강이라는 탯줄을 공유하는 일란성 쌍생아다. 북한은 2013년 11월 지방급 경제개발구 13곳을 발표하면서 신의주를 특수경제지대(중앙급)로 선정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같은 해 10월 구리도를 ‘국제관광개발경제구역’으로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압록강 구리도에 국제 정품면세점, 세계미식거리, 조선특산물점, 관광기념품점, 대형 가무식당, 5성급 관광호텔, 민속휴가촌, 대형 도박장 등 시설을 구비해 연간 100만~3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같은 해 3월 “나라의 여러 곳에 관광지구를 잘 꾸미고, 각 도에 자체 실정에 맞는 경제개발구를 설치하라”고 지시한 결과다. 신의주는 관광산업 진흥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추구할 요충으로 지목된다. 2014년 7월 ‘신의주 국제경제지대’로 개칭됐다.


<b>한국전쟁의 흔적</b> 단둥과 신의주를 잇던 목교 기념시설에서 지난 7일 중국인 관광객이 쌍안경으로 북한 쪽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이 북한 쪽으로 도강했던 곳이다.

한국전쟁의 흔적 단둥과 신의주를 잇던 목교 기념시설에서 지난 7일 중국인 관광객이 쌍안경으로 북한 쪽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이 북한 쪽으로 도강했던 곳이다.


하지만 단둥과 신의주가 함께 꿈꾸는 번영의 미래는 아직 현금화되지 않았다. 어음만 거래되고 있는 상태다. 궈먼다샤는 완판됐음에도 거의 비어 있었다. 신압록강대교 역시 북측이 연결도로와 부대시설을 갖추지 않아 완공 4년이 다 되도록 개통되지 않고 있다. 지난 6일 랑터우에서 바라본 신압록강대교 북한 쪽에는 어떠한 공사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단둥시가 2015년 건립한 ‘중조변민 호시무역구(中朝邊民互市貿易區)’에는 조선족 동포가 운영하는 상점 2곳만 입주해 있었다. 1인당 8000위안 이하의 물품거래에 관세를 면제해주는 호조건으로 건물 4~5개 동이 들어선 무역구는 한산했다. 북한 여행상품을 파는 창구 역시 붐비지 않았다. 양쪽 모두 한껏 몸단장을 마쳤지만 아직 맞선을 보지 않은 격이다. 일각에서 중국이 이미 대북 제재를 완화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현지에서는 굵직한 변화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단둥 시내 보세창고들과 감관(감독관리)창고에 하역되는 물동량이 늘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2012년 8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건립했던 황금평 개발본부 건물은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었다. 5·24조치 이전까지 대북 임가공사업을 했던 교민 ㄴ씨는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식량과 비료는 계속 건너가고 있지만, 민간부문에서는 어떠한 제재도 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세창고는 주로 천연고무와 수지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 제품들이, 감관창고는 중국산 제품들이 거쳐가는 곳이다. 

<b>압록강변 주민들의 일상</b> 두 개의 압록강 다리 밑에서 지난 5일 단둥 주민들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위쪽은 사용되고 있는 중조우의교이고, 아래는 한국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끊겨 있다.

압록강변 주민들의 일상 두 개의 압록강 다리 밑에서 지난 5일 단둥 주민들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위쪽은 사용되고 있는 중조우의교이고, 아래는 한국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끊겨 있다.


다만 수산물은 제재 이전부터 소규모 밀무역으로 거래됐던 만큼 완전한 금지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다. 중국 쪽 황해 연안은 오염 탓에 조업이 녹록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단둥 시내에서 유통되는 수산물은 대부분 북한 연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위성을 비롯한 감시에 포착되기 않기 위해 해상에서 수산물을 건네거나, 때론 수산물을 실은 북한 배와 비어 있는 중국 배를 해상에서 맞바꾸는 거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단둥 도심을 흐르는 압록강 한복판에 고정된 채로 정박된 배에 꾸러미를 싣는 광경을 목격했다. 멀리서 꾸러미의 내용물을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북·중 한쪽에서 싣고 다른 쪽에서 가져가는 방식으로 작은 거래가 가능할 것 같았다. 동행한 교민 ㄷ씨는 “중국이 제재를 완화했다는 조짐은 없다. 다만 소규모 수산물 거래까지 엄중하게 단속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달 초 단둥에 가장 의미심장한 '북한 바람'을 몰고 온 주인공은 바로 김정은 위원장이다. 그는 지난 달 12~20일 방중 뒤 첫 공개행사로 같은 달 29일부터 사흘 동안 단둥과 마주보고 있는 평안북도 신도군과 신의주의 제지공장, 화장품공장 등을 현지지도 했다. 신도군에는 북한과 중국이 합작으로 추진했던 황금평 경제특구와 비단섬이 있다. 지난 봄부터 모두 여섯 차례의 양자 정상회담 뒤 김 위원장이 처음 찾아간 곳이 압록강변이었다는 사실은 북한이 향후 나아갈 방향을 짐작케 하는 중요한 지표로 읽힌다. 왜 개성을 먼저 찾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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