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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여적

독일의 오씨 대통령

by gino's 2012. 2. 21.
1871년 파리 외곽 베르사유 궁전에서 탄생한 독일제국처럼 다양한 구성의 국가도 드물다. 25개 국가가 모여 하나의 국가를 이뤘다. 덴마크어·프랑스어·폴란드어권 주민들까지 포함됐다. 지금도 독일이 연방국가인 것은 그만큼 역사와 문화가 다른 국가들의 인위적 결합이기 때문이다. 동·서독 분단사는 또 다른 지역주의를 남겼다. 통독 20년이 지나서도 주민들 간에 동독 출신을 가난한 오씨(Ossi)로, 서독 출신을 거만한 베씨(Wessi)로 서로 낮춰부르며 담을 허물지 않고 있다.

그런 독일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이어 또 다른 동독 출신 지도자가 탄생할 모양이다. 옛 동독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출신의 인권운동가 요아힘 가우크가 지난 19일 연방대통령으로 공식 지명됐다. 한반도 남쪽에서조차 여전히 소지역주의의 포로가 돼 있는 우리로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감자바위니, 보리문둥이니 하던 폐쇄적 지역주의에 실향민들을 낮춰부르는 ‘38따라지’까지 더해졌다. 분단이 길어지면서 여러 지역 출신들이 모둠살이를 하는 서울에서조차 이제는 평안·함경도 등 이북 말씨가 낯설어졌다. 1970년대 영동 개발 전까지만 해도 ‘서울 아닌 서울’이었던 강남지역이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강남인과 강북인의 구분이 생긴 지도 오래다. 이들은 각종 선거에서 확연하게 다른 투표성향을 보인다.

모두가 알고 있되 굳이 내세우지 않던 강남·북의 불편한 경계를 4월 총선에 나오겠다는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무심결에 끄집어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전도사가 된 그가 강남 지역구에서는 해볼 만하지만, 강북 지역구에 출마해야 한다는 모 여당 의원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디 저 캄캄한 데서…”라는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김종훈의 한계, 한국 정치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경향신문DB


기민·기사련·자민·사민·녹색당 등 독일 5대 정파는 원만한 합의를 통해 동독 출신 대통령을 추대했다. 지역보다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일 터이다. 정치인들이 먼저 경계를 허물고 있는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슬그머니 지역주의에 편승하는 한국과 다른 점이다. 정치인들부터 소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언젠가 평양이나 원산, 함흥 출신 통일한국 대통령의 탄생을 기대하는 건 단연 언감생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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