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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여적

정대세와 제레미 린

by gino's 2012. 2. 19.
2010년 6월 남아공 월드컵 개막전. 재일동포 정대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가 울려퍼지는 순간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며 덩달아 눈시울을 적셨다. 정작 본인은 꿈의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됐다는 사실에 감동이 밀려왔었다고 말했지만 그의 눈물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핏줄이 당겼기 때문일 게다. 마음은 남과 북 사이에서 서성거리면서 몸은 일본에 둔 재일동포들의 수난사가 그 눈물에 비치지 않았을까 싶다.

북한의 정대세가 2010 남아공월드컵 브라질전에 앞서 열린 국민의례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경향신문DB)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대만계 미국인 제레미 린(林書豪·24)을 두고 중국과 대만이 벌이는 ‘핏줄 논란’을 보면서 정대세가 연상되는 것은 분단이라는 정치적 현실이 같아서만은 아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린이 이달 초부터 소속팀 뉴욕 닉스의 7연승을 이끌자 양안(兩岸)은 열광하고 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의 팔로어가 100만명을 넘고, 대만의 10대들 사이에서는 린의 헤어스타일이 유행한다고 한다.
분단의 그늘은 여기에도 틈입한다. 중국 관영언론 신화통신은 “린은 중국인”이라면서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올해 런던올림픽에서 중국 국가대표로 뛰어달라고 주문했다. 대만인들은 “린은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이라며 발끈했다.

린의 부계는 300여년 전 중국 푸젠(福建)성에서 대만으로 이주했고 197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민했다. 린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내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진정 자랑스럽다”면서도 “부모님이 대만 출신이라는 사실이 진정 자랑스럽다”는 말로 등가의 애착을 내보였다. 많은 미국 언론이 그를 ‘대만계 또는 중국계 미국인’이라고 소개하는 까닭이다. 린은 미국에서 태어나 성공한 많은 아시아계 이민 2세들과 마찬가지로 뼛속 깊이 미국인일 게다. 그러나 종종 “칭크(Chink·중국인의 경멸적 표현)” “완탕 수프” 등의 인종적 야유를 듣는 대만인 또는 중국인이기도 하다. ‘남한인 또는 북한인’인 정대세와 처지가 비슷하다. 

뉴욕 닉스의 제레미 린이 LA 레이커스전에서 레이업슛을 시도하고 있다. (경향신문DB)

 
그러나 린을 둘러싼 양안 간 말의 전쟁에 애잔함은 없어보인다. 거친 입담과 엉뚱한 핏줄 욕심이 엇갈릴 뿐이다. 정대세의 멋진 드리블을 볼 때마다 자랑스러우면서도 마음 한쪽에 애잔함이 남는 것과 다르다. 분단이라고 같은 분단이 아니다. 정대세는, 우리의 분단은 왜 더 슬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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