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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북한인

칼럼/여적

by gino's 2012. 3. 1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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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를 찾은 이방인은 대개 어리둥절해진다. 자동차 경적소리와 알아듣지 못할 대화 등 도시의 소음 속에서 향수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1928년 파리를 처음 찾은 미국 음악가 조지 거슈윈도 다르지 않았나 보다. 파리는 당시 피카소와 헤밍웨이, 예이츠 등 각국 예술가들이 영혼의 둥지를 틀던 곳. 거슈윈은 파리가 풍기는 정서를 교향시 ‘파리의 미국인’에 담았다. 

엊그제 개선문 인근 살 플레옐 무대에서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북한 은하수 관현악단 단원들도 파리가 꽤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바이올린 주자이자 악장인 문경진씨는 “거리가 아름답고 고전 건물이 많다. 프랑스는 아름다운 나라”라고 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은하수 관현악단은 해금과 가야금을 곁들인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브람스 교향곡 1번 등을 단독 또는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해 호평을 받았다. 
 

북한 은하수 관현악단이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과 함께 리허설(경향신문DB)



음악은 국경도, 장벽도 뚫는다고 하지만 공연이 이뤄지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어찌보면 엉뚱하게 파리까지 날아간 것이다. 연주회를 기획한 정명훈씨가 당초 목표했던 것은 자신이 예술감독인 서울시향과 북한 교향악단의 협연이었다. 하지만 얼어붙은 남북관계 탓에 길이 보이지 않자, 첫걸음으로 은하수 관현악단의 파리 공연을 선택했다. 정씨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지휘를 맡고,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단원 중 5명이 서울시향에서도 연주를 하는 만큼 남북 간의 작은 협연이라고 자기 위안을 했다.

‘파리의 미국인’은 파리에서 프랑스를 만났다. 하지만 평균나이가 20세라는 은하수 관현악단 단원들이 만난 것은 프랑스뿐이 아니었다. 파리 공연의 백미는 마지막 곡으로 두 오케스트라가 협연한 ‘아리랑’이었다. 2000여명의 관객들이 여러 차례 커튼콜을 요청할 정도로 감동을 선사했다고 한다. 문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아리랑’을 연주할 때 많은 눈물이 나오는 걸 겨우 참고 했다. (관객뿐 아니라) 연주하는 우리가 더 감동스럽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북이 아닌, 북한과 프랑스가 ‘아리랑’을 연주하고, 그 감동을 이역만리 떨어진 서울에서 전해들어야 하는 구조가 안타깝다. 한 60대 파리지앤이 전했다는 감상평이 여운을 남긴다. “새로운 음악을 경험하게 됐다. 앞으로 남북한이 음악으로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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