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tv.jtbc.joins.com/clip/pr10010365/pm10030346/vo10248328/view




만경대선 학생들의 공연 지난 16일 평양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공연을 마친 학생들이 모두 무대에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10여년 전 본 공연에 비해 인위적으로 전달하는 정치적 메시지는 사라졌다. 평양 |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여기가 무슨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 그게 어린이들이니까 보여드린 거다.” 


지난 16일 평양 도심에서 꽤 떨어진 만경대구역 장훈2동의 평양교원대학. 박금희 학장은 방북단에 “입학생들의 실력은 김일성종합대학보다 낫다”고 했다. 교원대학은 유치원(2년)과 5년 과정의 소학교(초등학교) 교원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북측 사회는 고등교육보다 지능의 80% 이상이 형성되는 12세 이하 교육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유치원 교양원이 대학교수보다 지식과 경험이 많아야 한다는 게 ‘최고 존엄’의 뜻이라고 했다. 


대학에는 가상현실·증강현실을 포함해 최첨단 교육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아이들 교육의 핵심 주제는 종합지능과 과학기술이다. 로봇의 경우 유치원 높은반에선 장난감처럼 갖고 놀면서 조립만 시킨다고 했다. 소학교 1학년은 두발 로봇, 2학년은 세발 로봇을 만든다. 3학년은 로봇의 과학·공학 원리를 깨닫게 하고 4학년이 되면 그 원리를 발표하게 한다. 5학년생들에게는 같은 내용을 영어로 발표시킨다. 의무교육은 유치원 높은반부터 고급중학교까지 12년. 어린아이들의 교양원을 키우는 교원대학에는 여학생이 많았다. 


어린이는 북측이 9박10일간 방북단에 보여준 가장 큰 테마였다. 과학기술이 그다음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6년간 신축·개건한 시설들을 보여준 참관 일정엔 교원대학과 류경아동병원, 1989년 건립돼 3년 전 신축건물처럼 개건된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이 포함됐다. 위민·위락시설인 문수물놀이장과 릉라곱등어관의 주 고객도 어린이였다. “아이들은 왕”이라던 김일성 주석의 훈령이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 “북남이 합해 좀 세졌으면…근데 북측이 잘살면 남측이 좋아할까요?”

<b>릉라도엔 돌고래, 대동강엔 유람선</b> 지난 17일 평양 대동강 릉라도의 곱등어관(돌고래관)에서 돌고래쇼를 본 관중들이 방북단을 보자 반갑게 손인사를 하고 있다(위쪽 사진). 지난 15일 밤 평양 대동강에서 유람선 대동강호가 운항하고 있다. 뒤로 주체사상탑이 보인다. 평양 |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릉라도엔 돌고래, 대동강엔 유람선 지난 17일 평양 대동강 릉라도의 곱등어관(돌고래관)에서 돌고래쇼를 본 관중들이 방북단을 보자 반갑게 손인사를 하고 있다(위쪽 사진). 지난 15일 밤 평양 대동강에서 유람선 대동강호가 운항하고 있다. 뒤로 주체사상탑이 보인다. 평양 |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북한 체류 열흘간 북측이 유일하게 특정 참관장소가 아닌 거리에 내려 20분 정도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곳이 평천구역 미래과학자거리였다. 과학기술 전문가들에겐 살림집 배정부터 무형의 존경과 대우까지 제공됐다. 지역마다 ‘과학자거리’가 조성돼 있다고 했다. 현 단계 북측이 이뤄낸 과학기술의 정점은 ‘로켓’이다. 아이들과도 과학기술이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의 넓은 홀에 대륙간 로켓(탄도미사일) 모형이 놓여 있다. 릉라도 곱등어(돌고래)쇼 안내 전광판에도 로켓이 그려져 있다. 1960년대 말 미국인들에게 달탐사선 아폴로 11호가 그랬을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핵무기와 함께 국제사회의 제재를 불러온 대량살상무기(WMD)지만, 북측에선 첫손에 꼽는 국가적 자랑이었다. 10년, 20년 뒤 북측이 어떻게 변할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아이들의 교육과 과학기술에 역량을 집중할 것은 분명해 보였다. 

새로 들어선 거리·공공시설 
김정은 시대 ‘변화 속도’ 빨라
교육·과학기술에 역량 집중 
곳곳에 ‘ICBM’ 로켓 모형


3년 전 평양을 방문했던 남측 대표단 사람들은 그사이 획기적으로 많아진 4가지가 있다고 꼽았다. 불빛·손전화·자동차·거리매대였다. 손전화는 대략 250만대. 아이들을 제외하면 300만 평양 시민 한 사람당 1~2대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과거에도 북측은 꾸준하게 변화해왔다. 하지만 속도가 빨라졌다. 한 북측 인사는 “원수님(김정은 위원장) 들어 속도가 달라졌단 말입니다”라면서 “1년에 하나씩 새 거리가 일떠섰다”고 소개했다. 김 위원장 집권 첫해인 2012년 창전거리에서 시작해 1년 사이로 문화과학자거리, 미래과학자거리가 들어섰고 2016년엔 여명거리가 새롭게 단장됐다. 공공시설들은 대부분 6개월 안팎 짧은 기간에 신설·개건됐고, 문수물놀이장 건립 기간이 10개월로 오래 걸린 편이라고 했다. 지금도 곳곳에서 건물 신축공사가 벌어지고 있고, 국립교예극장과 여러 시설들이 개건 중이다.


지난 16일 촬영한 평양 만수대 창작사 경내의 김일성 주석-김정일 국방위원장 기마상. 평양 시내에선 유일한 기마상이다.   김진호 기자 



포전제(농가책임생산제·일부 생산물은 징수하고 나머지는 임의처분하게 하는 제도) 도입으로 식량 사정이 좋아지고, 개인·집단 비즈니스로 돈이 돌기 시작했다. 위락·위민시설과 고층 살림집(아파트)들이 늘어나고, 선대부터 허리띠를 조여가며 개발해온 로켓이 핵탄두를 싣고 대기권을 돌파할 수 있음도 만방에 입증했다. 북한 사람들은 세계 최강대국 수뇌가 싱가포르에서 ‘최고존엄’에게 머리를 숙이고 들어왔다고 했다. 활기가 없으면 외려 이상할 일이다. 


2000년대 초반 평양을 세 차례 방문하면서 ‘박물관 도시’로 읽었다. 낮이면 사람들로 붐비다가 저녁이면 텅 빈 공간만 있는 박물관이나 쇼윈도처럼 보여주고 싶은 것을 전시해놓은 도시로 보였다.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아무나 평양에 거주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에서는 같은 수준의 특혜와 특전을 누리지 못할 게 분명하다. 일행 중 1주일 늦게 베이징에서 항공편으로 도착한 사람들은 순안공항에서 평양으로 들어오는 가도에서 목격한 주민들의 생활이 여전히 어려워 보였다고 했다. 하지만 인구 2500만명 중 300만명이 사는 평양은 ‘박물관 도시’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변화의 폭과 깊이도 예전과 달랐다. 일회적인 변화라기보다 지속적인 진화라고 해야 할 듯하다. 여전히 9·9절 기념행사를 위해 휴일을 반납하고 뙤약볕 아래 집단체조 연습을 해야 하는 동원사회지만, 시민들의 표정에서 보이는 여유와 낙관은 북측 사회가 내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웅변했다. 순간순간 우리 식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지난 16일 양각도 호텔에서 바라본 평양 시내. 오른쪽에 주체사상탑이 보이고 그 건너편에는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 광장이 있는 중심지다.   김진호 기자 


이번에도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은 북측의 오늘을 읽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지난 16일 오후 평양 아이들의 종합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 북측 인사가 소감을 물어왔다. “훨씬 아이들 공연다워졌다”고 답했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말에 뼈가 있단 말입니다”라고도 했다. 대화가 길어졌다.


충격의 시작은 2000년대 초 금강산에서 본 평양교예단 공연이었다. 서커스는 늘 혼을 빼놓는다. 단원들의 묘기에 정신놓고 있던 순간, 높은 사다리 위에 있던 단원이 아래로 무언가 툭 던졌다. 펼침막이었다. ‘조국은 하나다!’ 붉은 천에 쓰인 검은 글씨들이 머리를 강타했다. 기어코 눈물이 흘러내렸다. 프로파간다의 파괴력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어린이 공연 이념색 옅어져 
경제 개선에 시민들도 활기
지도자 신격화 여전하지만 
남북 호전 땐 투자자 줄 설 듯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공연은 그 결정판이었다. 같은 공연을 두 번, 세 번 보면서 깨끔치 않은 인상이 굳어졌다.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누선을 자극하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전달하려는 정치적 메시지도 사라졌다. 바로 그 점이 신선한 변화였다. 싱거웠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5번째 평양을 찾았다는 최문순 강원지사 

역시 “과거에 비해 이념적 색깔이 엷어졌다”며 공감을 표했다. 공연을 처음 본 방북단 인사들 사이에선 “너무 기계적으로 아이들을 훈련시킨 것 같다”는 촌평도 많았다. ‘최고존엄’을 그리워하는 노랫말과 기계적인 동작이 곳곳에 여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체사상과 집체생활이 몸에 배인 북측의 실상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정상으로 비쳤다. 기자의 공연평에 실망한 북측 인사에게 개인적으로 축적된 경험들을 설명해주자 어느정도 이해하는 눈치였다. 


지난 16일 평양교원대학에서 박금옥 학장이 남측 방문단을 상대로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 학장은 유치원 교양원을 최고 학부에서 최고 수준의 학생들을 상대로 교육하는 나라는 북측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래 동영상에 그의 설명이 담겨 있다.  김진호기자 



양각도호텔 상점이나 음식점에는 가격이 북측 원화로 표시돼 있다. 공식 환율은 1달러 100원. 달러로 결제하겠다고 하면, 북측 원화를 유로화로 환산한 뒤 다시 유로화 대 달러화 환율을 계산해 가격을 알려준다. 복잡할 것 같은 계산을 순식간에 해냈고, 친절했다. 환경이 좋아지면 북한에 투자하려는 기업들이 줄 설 게 분명하다. 정치적 안정과 인건비가 낮은 우수한 인력, 여기에 시장 선점 효과까지 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북측이 인민경제 개선 단계를 넘어 국가경제 발전단계에 돌입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걸 미리 예상하고 있어서일까. 50대 초반의 한 시민은 “북남이 합해 우리나라가 좀 세졌으면 좋겠습니다”면서도 “북측이 잘살게 되면 남측이 좋아할까요?”라고 물었다.


수령님(김일성 주석), 대원수님(김정일 국방위원장), 원수님(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말을 소개할 때마다 북측 해설사들의 눈빛은 진지하다 못해 꿈결을 더듬는 것 같았다. 감정이입이 완벽에 가까웠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기도 했다. 접촉할 수 있었던 거의 모든 북측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돌고래쇼 중에 관람객을 불러내 돌고래의 키스를 받게 하는 장면이 재미있었다고 하자, 북측 인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원수님께서 바로 그 장면을 보시고 ‘인간과 곱등어의 교감이 좋다’고 말씀하셨단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눈빛이 진실돼 보였다. 백두의 혁명정신 같은 거창한 선언에서부터 문수물놀이장에 대형시계 2개를 하사한 일상적인 말까지 최고존엄의 말은 알파요 오메가다. 변화든, 진화든 그 점만은 바뀔 수 없다. 우리는 평양을 경제적 타산이나 안보적 고려에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어느 한쪽만 보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번에도 ‘가슴’과 ‘머리’ 사이를 오가는 10일간의 여정이었다.


가깝고도 먼 평양 체류를 마치고 개성행 고속도로에 오른다. 예성강과 어우러진 황주평야의 매혹적인 풍광과 송악산 품에 안긴 개성을 다시 만난다. 서울 홍제동에서 북쪽으로 산골고개에 접어들면 통일로 길가에 '평양까지 227'라는 현수막이 여러곳에 있다. 그곳으로 돌아간다. 양각도 호텔 리발사 선생의 인삿말이 떠오른다.  “선생님, 건강해서 평양에 꼭 다시 오십쇼.” 

Posted by gino's gino'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