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을 둘러본 남측 방문단이 인근의 개선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평양 |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지난 10일 오후 군사분계선 너머 개성 초입의 북측 출입사무소(CIQ).

검색대 앞에서 다소 긴장한 채 대기하고 있는데, 검색벨트에 먼저 올려보낸 카메라가 막 떨어질 뻔했다. 반사적으로 검색대 너머로 발을 들여놓아 간신히 붙잡았다. 순간 “카메라 떨어뜨리면 골 때리는데…”라는 말이 들렸다. 머리가 희끗한 북한 검색원의 중얼거림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10여년 만의 방북을 앞두고 전날 잠자리를 설친 끝이었다. 더구나 어느 나라 관문에서건 긴장하기 마련인 CIQ 검색대 앞이 아닌가. 검색원의 무심한 한마디에 마음이 풀렸다.

평양에서 열리는 제4회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단과 함께 방북했다. 남측 남북체육교류협회(이사장 김경성)와 북측 4·25체육단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대회는 오는 15일 김일성경기장에서 개막, 18일까지 열린다. 선수단과 임원단을 합해 164명이 방북길에 올랐다.


남측 방북단이 개성에서 육로로 평양을 방문하는 기회는 흔치 않다.

평양에서부터 마중 나온 북측 보장성원(안내원)들에 따르면 2003년 류경 정주영체육관 준공 기념행사 당시 1000여명이 방북한 뒤 처음이다. 2011년에는 소규모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단이 이 길을 이용했다. 


평양으로 가는 길은 온통 초록의 바다였다. 비무장지대를 지나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하는 동안 길 오른편으로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자리 잡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맨 왼쪽의 송악산부터 천마산까지…. 개성의 산들이다. 인공기를 단 높은 철탑의 기정동 마을도 보였다. 개성공단을 지나면서 번듯하게 지어진 공장 건물들을 보자 착잡했다. 2016년 초 박근혜 정부의 폐쇄조치로 문을 닫은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 재개할 제반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늦은 밤 찾은 호텔 24시간 찻집 “온커피 한 잔에 네 딸라” 

<b>북으로</b> 국제유소년축구대회 참가단을 실은 버스들이 지난 10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군사분계선을 통과하고 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북으로 국제유소년축구대회 참가단을 실은 버스들이 지난 10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군사분계선을 통과하고 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산림복구 노력 결실 역력 
송악산은 그림 같은 풍광


오후 5시20분쯤, 개성 외곽을 지나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이제 평양까지는 고작 140여㎞. 개성~평양 고속도로는 관목을 심어놓은 중앙분리대 양쪽으로 각각 아스콘 포장의 2차선 도로와 갓길이 있다. 승용차로는 얼추 1시간 반이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버스 행렬은 시속 70~80㎞로 천천히 운행됐다. 그 느림이 오히려 고마웠다. 고속도로 진입 전 보이는 송악산 아래 개성 시가지는 한폭의 그림이었다. 작품집을 넘기듯 ‘풍경화’가 이어졌다. 마침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어 도로 양편의 풍광이 맑은 가을날처럼 선명했다. 


과거 북녘에는 민둥산이 많아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옷’을 갈아입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전국적으로 펼친 산림 복구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게 역력했다. 산하가 모두 초록으로 뒤덮였다. 길 양편의 녹색 물결 속에 옥수수밭, 수수밭도 펼쳐졌다.


간혹 북측 보장성원들이 4·27 판문점선언의 이행 등과 관련한 질문을 던졌지만 흘려들었다. 시선은 가급적 차창 밖을 향했다. 

버스가 금천굴(터널)을 지나 구릉지역을 천천히 올라가자 황해북도 금천군 시가지가 오른쪽으로 펼쳐졌다. 굽이쳐 흐르는 예성강 물줄기와 나지막한 산 아래 안겨 있는 금천군의 풍경은 개성~평양 구간의 제1 장관으로 꼽아도 좋을 것 같았다. 옥천굴, 룡궁굴, 주포굴, 삼봉굴, 정방굴…. 10여개의 터널을 지났다. 전부 쌍굴이다. 대동굴을 지날 때 표지판이 ‘평양 53㎞’를 가리켰다. 높은 산을 지날 땐 수백m에서 수㎞ 길이의 터널을 빠져나왔고, 야트막한 구릉지역을 오르내렸다. 그 도로의 경사각이 오히려 멋진 풍광에 재미마저 더했다. 아쉽게도 유일한 휴식시설인 은정휴게소에는 정차하지 않았다.


남과 북은 이날, 각각 축구공을 둘러메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에 참가하는 북측 방남단이 이날 오전 같은 서해 육로로 내려왔다. 조선직업총동맹 선수단과 대표단 등 64명이 오전에 밟은 길을, 남측 방북단이 오후에 거슬러 오른 것이다.


검은 연기를 내뿜는 황해제철의 높은 굴뚝이 멀리 보이는 사리원시 외곽을 지날 무렵엔 평야가 펼쳐졌다. 황주평야에는 논과 밭이 섞여 있었다. 드문드문 풀을 뜯는 소, 자전거를 타고 농로를 지나는 주민들이 보였다. 낮은 구릉과 평지가 섞인 황주평야는 한반도 남녘에선 보기 드문 경치다.



지난 10일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촬영한 예성강. 황해북도 금천군 지역을 통과할 때 예성강 물줄기와 산자락에 안긴 금천군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이었다. 아쉽게도 그 장면은 담지 못했다.  김진호기자


20㎞, 10㎞, 5㎞…. 평양이 서서히 다가오면서 붉은 노을이 서쪽 하늘을 물들였다. 차창 밖으로 평양화력발전소 굴뚝이 보였다. 

평양 방문은 6·15 제5주년 기념행사를 취재한 2005년 이후 처음이다. 을밀대, 만수대, 만경대 등 ‘대(臺)’자 돌림의 지명이 많은 평양은 대동강 양안 곳곳에 낮은 경사의 너른 땅이 펼쳐진 도시다. 주체사상탑과 김일성경기장, 평양 개선문, 인민문화궁전, 만수대 의사당 등 역사적·정치적 의미 등을 녹여낸 모뉴먼트들을 곳곳에 배치한 ‘쇼윈도’이기도 하다. 

평양을 읽는 방식은 두 가지다. 적지 않은 경우 가슴으로만 읽거나, 머리로만 읽는 우를 범한다. 많은 경우 처음엔 가슴으로 만난다.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노래 ‘반갑습니다’의 가사에서 내비치듯 ‘민족’ ‘동포’ ‘조국통일’이라는 말과 정서가 범벅이 되면 목울대가 뜨거워지기 십상이다. 발레, 고전무용, 태권도, 서예 등 소조(동아리)별로 어린 학생들의 장기를 둘러보고 마지막에 종합공연을 관람하는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북녘이 고향인 한 분은 역동적인 농악으로 풀어낸 종합공연의 끝자락에 결국 무대로 뛰어나가 어린 학생을 껴안으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기자 역시 눈물샘을 자극하는 공연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 가슴으로 경험한 첫 만남이었다.


지난 10일 개성~평양 고속도로상에서 석양을 맞았다. 평양을 20킬로미터 정도 남긴 곳으로 평양시 강남군으로 생각된다. 

김진호기자



2003년 가을, 평양을 처음 방문한 뒤 보름 정도 간격으로 두 번째 방문을 할 수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의 앳된 어린 학생들을 다시 만났다. 소조별로 같은 학생이 같은 선율에 맞춰 같은 춤을 추거나 같은 장기를 펼치는 장면을 다시 보면서 ‘거리 두기’가 가능해졌다. 일종의 ‘소격 효과’였다. 이번에도 북으로, 징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난타하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같은 레퍼토리를 다시 접하면서 차분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머리로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평양의 진면목을 만나는 여정은 이처럼 가슴에서 출발해 머리에 이른다. 사람마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가슴과 머리가 타협한다. 방문 횟수가 잦아질수록 머리 쪽에 가까워진다. 4번째 평양을 만난다. 하지만 그런 기자에게도 10여년의 공백은 컸던 것 같다. 생각의 행로를 되짚어 가슴 쪽으로 향했던 게 분명하다. 


버스는 어느새 평양에 진입하고 있었다.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막 지났다. 한복 차림의 남한 여성과 북한 여성이 도로 위로 양손을 맞잡아 달덩어리 같은 한반도를 맞들고 있는 기념탑은 평양의 남쪽 관문이다. 아쉽게도 해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오후 8시쯤. 숙소인 양각도 국제호텔 앞에는 직원 20여명이 도열해 남측 대표단을 환영해주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호텔 로비는 남측 대표단과 중국인,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잡화점과 서점을 비롯한 대부분의 호텔 내 상점들도 손님을 맞았다. 커피와 음료를 판매하는 은정찻집 여성 봉사원에게 물으니 “찻집은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며 열어놓는다”면서 “다른 점포들도 자정까지는 근무한다”고 했다. 필터로 거른 ‘온커피’ 한 잔에 “네 딸라(4달러)”였다. 잡화점 유리벽 너머로 물건을 쳐다보자 승강기 앞에 서 있던 벨보이가 다가와 닫힌 문을 두들겼다. 어느새 자정이 넘었다. 안에서 걸어나오는 여성 복무원의 얼굴에 피곤이 역력했다. “어차피 구경만 하려고 했다. 내일 다시 오겠다”며 간신히 문 여는 것을 만류했다. 중년의 벨보이는 “그래도 그렇지 손님이 오셨는데…”라며 못마땅해했다. 폐점시간을 묻자 “손님이 계시는 한 어떤 상점이건 문을 여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평양의 낮 기온은 33도 안팎이라지만, 밤에는 창문을 열어놓으니 으슬으슬할 정도로 선선했다.

<b>평양 미래과학거리 빌딩들</b> 지난 11일 평양 평천구역에 위치한 미래과학자 거리 인근에 고층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광경. 비슷한 높이로 보이지만 왼쪽의 하얀 탑이 있는 건물은 70층으로 평양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이다. 대동강에는 모래 준설선이 떠 있다. 평양 |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평양 미래과학거리 빌딩들 지난 11일 평양 평천구역에 위치한 미래과학자 거리 인근에 고층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광경. 비슷한 높이로 보이지만 왼쪽의 하얀 탑이 있는 건물은 56층의 고층 살림집(아파트)이다. 대동강에는 모래 준설선이 떠 있다. 평양 |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양각도 호텔 관광객 북적 
김일성경기장도 새 단장
9·9절 축전 준비 곳곳 분주
 


11일 아침 평양 시내로 나섰다. 산과 들만 ‘옷’을 갈아입은 게 아니었다. 평양도 그새, 많이 달라졌다. 특히 평천구역의 미래과학자거리에는 50여층 높이의 아파트를 비롯해 세련된 디자인의 고층빌딩들이 빼곡했다. 행인들의 옷차림 역시 세련되고 깔끔했다. 여명거리에도 최근 건립한 수십층 높이의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북측 안내원은 “과학자와 연구사, 대학교수 등이 몰려 사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유소년축구대회 장소인 10만석 규모의 김일성경기장도 말끔히 단장됐다. 그라운드와 좌석은 물론 1층의 선수 대기실, 탈의실 등이 잘 준비됐다. 평양 개선문, 만경대 등도 참관했다. 오랜만에 ‘평양랭면’을 먹으며 옥류관 테라스에서 바라본 대동강변의 풍경은 화창했다. 김일성경기장 앞 광장을 비롯한 시내 곳곳에서는 9월9일 정권 창립(9·9절) 70주년 기념 군중대회를 준비하는 젊은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12일 평양은 비교적 맑은 날씨를 보이더니 오후 늦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b>옥류관 앞 거리의 평양 시민들</b> 지난 11일 오후 평양시 경상동에 있는 평양랭면 전문식당인 옥류관 앞길을 평양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평양 |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옥류관 앞 거리의 평양 시민들 지난 11일 오후 평양시 경상동에 있는 평양랭면 전문식당인 옥류관 앞길을 평양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평양 |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유소년축구대회는 만 15세 이하의 중학생 선수들로 구성된다. 남측에선 경기 연천과 남강원도 남자팀이, 북측에선 국제축구학교팀과 4·25남자팀이 출전한다. 하나은행 여자팀은 북측 4·25여자팀과 친선경기를 치른다. 6개국 8개팀이 참가했다. ‘남강원도팀’은 북측에도 강원도가 있는 만큼 북측 관중들을 배려해 팀명을 바꿨다. 방북단은 개막 전날인 14일 만수대 의사당으로 김영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의장을 예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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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no's gino's 2018.08.24 16: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정은, 과학자 중시 … 평양 새 명물 고급식당엔 전용룸까지
    [중앙일보] 입력 2018.08.23 00:02 수정 2018.08.23 21:04


    김 위원장 집권 7년 … 평양을 가다
    김책공대 교수 등에 무상 아파트
    미래거리는 ‘북한판 판교’로 불려

    대북제재 속에도 대규모 건설 붐
    60~70층 빌딩, 스카이라인 바꿔

    평양 가는 길은 낯설지 않았다. 버스 창문 밖으로 펼쳐진 농촌의 모습은 어릴 적 봤던 우리 농토와 너무 닮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기자가 평양을 방문한 건 지난 10~17일. 제4회 아리스포츠컵 축구대회 취재단의 일원으로다. 첫 평양 방문이었다.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북측이 내준 대형 버스로 갈아타고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3시간여 달리자 우뚝 솟은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낙랑구역(구역은 우리의 구에 해당) 통일거리 입구에 건설된 30m 높이의 거대한 석탑은 6·15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이듬해인 2001년 지어졌다. 폭이 61.5m에 달하는 아치형 석탑엔 남한과 북한의 여성이 한반도 지도를 마주 들고 있는 형상이 새겨져 있다.

    확 뚫린 대로변 양편에 우뚝 선 알록달록 형형색색으로 채색된 아파트와 초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단번에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세히 보니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들엔 주홍, 분홍, 코발트, 비취, 그린 같은 형광색상의 페인트를 입혀 새 단장을 했고, 최근 건설된 신형 아파트와 60~70층짜리 초고층 빌딩들은 유선형이나 타원형 건축기법을 써 세련미를 더했다.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형성된 초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평양 시내의 명물로 떠오르면서 스카이라인을 바꿔놓고 있었다.

    대동강수산물식당 2층에 있는 과학자 전용룸. 과학자들에겐 음식값도 깎아주고 예약도 우선적으로 받아준다. [이정민 기자]

    숙소인 양각도 호텔에서 만난 30대 여성 안미경 씨는 “세대주(남편)가 김일성대 교원(교수)여서 지난해 여명거리의 살림집(아파트)을 무상 배분받았다. 배분받은 날 온 식구들이 같이 울었다”고 소개했다. 딸을 포함, 세 식구가 살고 있는데 방 4개와 화장실 2개가 있는 아파트를 배정받았단다.

    2015년 건설된 미래과학자거리의 아파트도 김책공대 교수와 연구원 등 과학자들에게 무상 분양됐다. 미래과학자거리는 북한의 과학자 중시 정책의 상징이다. 레지던스 은하 타워, 미래과학자거리 트윈 타워 등이 잇따라 완공돼 하나의 타운을 형성하고 있고, 단지 내에 상점들이 입주해 있어 편리하게 돼 있다. ‘북한판 판교’라 불리는 이유다.

    유례없는 고강도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의 수도에서 이처럼 대규모 건설 붐이 일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북측 안내원에게 “대규모 건설사업을 하려면 자재 등을 수입해야 할 텐데 제재의 영향을 받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자재와 기술이 100% 국산화돼서 제재와는 관련이 없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또 다른 안내원은 “지금 제재가 있다고 하지만 인민들이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은 이렇다.

    “고난의 행군 때는 평양에도 배급이 끊기고, 전기 공급이 제대로 안 돼서 열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다. 그때 자력갱생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또 재래식 무기론 안 된다, 핵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미국도 우리가 핵을 갖고 있으니까 인정하고 대접해주고 있지 않은가.”

    안내원이 안내하는 곳만 제한적으로 볼 수 있을 뿐 일반 주민들과는 접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볼 수는 없었지만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형성된 자신감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표면적으로는 대북 제재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듯한 모양새지만 최근 외환보유고가 줄어드는 등 제재가 장기화하면서 그 효과도 가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옥류관에 이은 평양의 신흥 명물이라는 대동강수산물식당에서도 달라진 평양의 모습이 보였다. 지난달 문을 연 이 식당은 1층에 철갑상어, 연어, 대게, 털게 등이 담긴 대형 수조가 여럿 있고 2, 3층은 1500석 규모의 식당을 갖추고 있다. 수산물과 식재료를 파는 2층의 마트에서는 일본과 유럽 등지에서 수입해온 간장, 식초, 마요네즈, 참기름, 캐비어 같은 고급 식재료가 판매되고 있었다. 가격표를 보니 일제 참기름이 1077원, 이탈리아산 비인코 식초는 700원이다. 북한 노동자의 평균 월급이 4000원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고가다.

    북한이 자체 기술로 양식에 성공했다고 선전하고 있는 철갑상어회는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인데 1㎏에 14.5달러라고 표시돼 있었다. 외국인 전용 상점이 아닌데도 메뉴판에 달러로 가격이 표시돼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평양 전역에서 달러와 유로,중국 위안화가 통용된다) “북한이 최근 개인들의 거래와 시장경제 활동을 허용하면서 대규모 재력가(돈주)도 생기고, 월급 이외에 생기는 수입이 상당하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북측 안내원은 "과학자들에겐 음식값도 깎아주고 전용 식사칸까지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북한 제품의 포장기술과 디자인. 훈제 햄이나 소시지, 수산물들이 진공 포장돼 있었고 과즙을 함유한 다양한 탄산단물(탄산 주스) 캔 제품이 진열돼 있었다. 10년 만에 평양을 방문한 동료 기자는 “포장기술과 디자인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며 놀라워했다. “국산화 노력의 결실”이라고 북측 안내원은 설명한다.

    경제 제재 속에서도 국산화에 어느 정도 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과학중시, 과학인 우대 정책에 기인한다는 게 북측 인사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북측 안내원 김 모 씨는 “과학자들에겐 고급 살림집을 우선적으로 무상 제공하고 과학자 전용 상점이 있어서 생필품도 싸게 살 수 있다”며 “그러니 다른 걱정 없이 과학 기술 연구에만 열중할 수 있다”고 했다.

    핵, 경제 병진 정책을 표방한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핵 무력을 완성,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4·27 남북, 6·12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를 약속한 북한은 지금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비핵화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가 공언한 대로 핵을 내려놓고 과감한 경제 개혁 개방으로 나설지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평양=이정민 기자 lee.jungmin@joongang.co.kr

  2. gino's gino's 2019.06.01 15: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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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만에 직항로로 다시 가 본 평양, “달라졌다” 기사입력 2018.09.29.

    ·10년 만에 직항 경로로 다시 가본 평양, 두 정상의 이해와 신뢰 깊어져


    나는 그동안 서너 차례 서해 직항로를 통해 방북한 경험이 있다. 남북관계가 정체되거나 악화되었을 때는 직항로는 굳게 닫혀버린다. 직항로는 남북관계의 맑음과 흐림을 재는 일종의 가늠자인 셈이다. 9월 18일 서해 직항로를 따라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만10년 만이었다.


    평양 정상회담 사흘째인 9월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백두산 천지에서 남측 특별수행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문 대통령 부부 옆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홍석현 중앙홀딩스 그룹 회장 사이에 있는 이가 필자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공식수행원과 특별수행원, 그리고 기자단을 태운 공군 1호기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평양국제비행장(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대통령 전용기의 항로는 과거 특별전세기의 항로와 동일한 듯 보였다. 평양 인근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북녘 지형은 같았지만 마을의 집과 논밭의 모습은 10년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신축한 집들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주택의 외관과 지붕들은 과거보다 깨끗해졌다. 논밭도 잘 정비되어 보였다.

    평양국제비행장 청사는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현대식 건물로 면모를 일신했다. 과거의 칙칙했던 순안공항의 모습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공항이 한 나라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중요 얼굴 중의 하나임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공항에서의 환영행사는 2000년 정상회담 때와 비슷했다. 이미 두 차례나 정상회담을 한 후인지라 양 정상과 부인들은 자연스럽게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리설주 여사의 답가는 끝내 사양

    2001년 마지막으로 투숙했던 고려호텔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과거보다 깨끗하고 밝아진 느낌이었다. 방에는 김일성 주석의 초상도 없었다. 예정된 행사(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면담) 참석차 호텔을 나서면서 불현듯 한 기억이 떠올랐다. 2000년 8월 남북 공동행사 참가차 갔을 때 고려호텔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 우리 일행은 3대 헌장 탑 준공식 참석 여부를 놓고 북측 보장성원들과 치열하게 논쟁했다. 논쟁 끝에 말문이 잠시 막힌 북측 성원은 우리를 향해 “남조선 특무 아니냐”고 공격했다. “특무는 아니고 특무를 가르친 선생”이라고 되받아쳤다. 그때의 다소 살벌했던 분위기는 이번에는 완전하게 달라졌다.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삼갔다.

    저녁엔 평양대극장에서 평양 정상회담 환영 공연이 있었다. 양 정상이 입장할 때 평양 시민들은 일제히 기립했다. 그리고 우리로서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수준의 박수를 치며 만세를 연호했다. 북녘 땅에 와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공연 후 목란관에서 환영 만찬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남과 북의 인사들이 동석해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소통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특히 남측 경제계 인사들에 대한 북측 인사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현송월 삼지연악단 단장은 2박3일간의 오찬과 만찬석상에서 계속 경제인들과 자리를 같이했다. 특히 이재용 삼성 부회장 옆자리에 앉아 이 회장을 대접하고 있었다. 북한의 경제개발에 대한 관심의 크기를 엿볼 수 있었다.

    목란관 만찬장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김정숙 여사가 무대로 나와 박태준이 작곡한 ‘동무생각’을 불렀다. 남측 참석자들은 일제히 리설주 여사에게 답가를 요청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눈치를 보던 리 여사는 열화와 같은 요구에도 끝내 노래를 하지 않았다. 아마 북한식 의전상 최고 존엄의 부인에게 그런 청을 하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일일 듯했다.

    오랜만의 평양 방문에서 온 흥분 탓인지 9월 19일 아침 일찍 일어났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호텔 문을 나섰다. 2000년에도 아침에 고려호텔 밖을 나선 적이 있었다. 그때는 평양역도 못가서 제지를 받았었다. 이번엔 달랐다. 역전 백화점을 끼고 돌아서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점심은 옥류관에서 했다. 9월 평양 공동선언을 발표한 남과 북의 정상도 동석했다. 자연스럽게 오찬장의 화제는 공동선언 내용이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김정은 위원장과 동석했던 남측 인사의 전언에 의하면 김 위원장은 측근들의 태반이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강력하게 계속 답방을 요청해서 서울을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 내외분이 잠깐 대동강 주변을 보기 위해 자리를 떴다. 이때 남측 인사는 재차 김정은 위원장에게 방문 여부를 확인했다. 김 위원장도 다시 한 번 가겠다는 확약을 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답방이야말로 남북관계 발전의 또 다른 한 획을 긋는 일이다.

    저녁에는 5·1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을 관람했다. 나는 과거 같은 장소에서 ‘아리랑’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아리랑 집단체조 때와는 내용이 현저하게 달랐다. 체제 선전이나 군사력을 과시하는 장면은 거의 없었다.

    백두산 등정 기대가 마침내 현실로

    공연의 절정은 특별장인 ‘평화·번영의 새 시대’와 종장인 ‘통일 삼천리’였다. 아마 남측 대표단을 위해 특별히 구성한 듯했다. 공연은 15만 평양시민들 앞에서 한 문 대통령의 짧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연설로 절정을 이루면서 끝났다.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이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 선언의 핵심 내용을 힘주어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김정은 위원장과 합의했다고 말했다. 잠시 침묵했던 평양시민들은 곧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고려호텔에 돌아오자 새로운 희소식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20일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백두산 등정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서울을 출발할 때 혹시 백두산에 갈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기대를 했었다. 경등산화와 가벼운 우모복을 챙겨온 것도 그 때문이다. 막연한 기대가 현실이 된 셈이다. 새벽녘에 우리 일행은 평양공항으로 출발했다. 호텔 로비에는 전날 저녁 서울에서 공수해 온 방한복이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가져온 우모복의 빛이 그만 바래 버렸다. 호텔을 나서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연도에는 평양 들어 올 때처럼 수많은 평양시민들이 환송을 위해 도열해 있었다. 순간 반가움보다는 연민이 앞섰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고려항공에 탑승했다. 과연 이런 날에 천지를 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삼지연 공항의 날씨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화창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9월 하순인데 춥지도 않았다. 공항에서 백두산 가는 길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나는 과거 지금과 비슷한 계절에 두 차례 이곳에 온 적이 있다. 칼바람과 칼비, 짙은 안개로 한 번도 천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천지에 오르니 백두산이 자신의 속살을 다 내놓고 있었다.

    2박3일의 짧은 평양 방문 일정을 끝내면서 몇 가지 상념들이 내 머리를 스쳤다. 우선 김정은 위원장 체제의 북한은 체제 생존과 경제발전을 위해서 과거와 다른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또한 남과 북의 두 정상이 자주 만나서 대화하고 신뢰를 쌓아 가면 어려운 국제환경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두 정상은 16시간 이상 만났고 오찬·만찬 자리에서도 쉴 사이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과 신뢰가 그만큼 깊어졌을 것이다. 키신저는 ‘모든 업적은 현실이 되기 전까지는 하나의 비전에 지나지 않는다. 뛰어난 업적은 불가피한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굳게 확신하고 몸을 던지는 데서 이뤄진다’고 했다. 두 정상이 몸을 던져 우리 민족이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업적으로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

    최완규 신한대학교 설립자·석좌교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