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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1신-평양으로 가는길

떨어진 반쪽/방북기

by gino's 2018. 8. 2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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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을 둘러본 남측 방문단이 인근의 개선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평양 |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지난 10일 오후 군사분계선 너머 개성 초입의 북측 출입사무소(CIQ).

검색대 앞에서 다소 긴장한 채 대기하고 있는데, 검색벨트에 먼저 올려보낸 카메라가 막 떨어질 뻔했다. 반사적으로 검색대 너머로 발을 들여놓아 간신히 붙잡았다. 순간 “카메라 떨어뜨리면 골 때리는데…”라는 말이 들렸다. 머리가 희끗한 북한 검색원의 중얼거림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10여년 만의 방북을 앞두고 전날 잠자리를 설친 끝이었다. 더구나 어느 나라 관문에서건 긴장하기 마련인 CIQ 검색대 앞이 아닌가. 검색원의 무심한 한마디에 마음이 풀렸다.

평양에서 열리는 제4회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단과 함께 방북했다. 남측 남북체육교류협회(이사장 김경성)와 북측 4·25체육단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대회는 오는 15일 김일성경기장에서 개막, 18일까지 열린다. 선수단과 임원단을 합해 164명이 방북길에 올랐다.


남측 방북단이 개성에서 육로로 평양을 방문하는 기회는 흔치 않다.

평양에서부터 마중 나온 북측 보장성원(안내원)들에 따르면 2003년 류경 정주영체육관 준공 기념행사 당시 1000여명이 방북한 뒤 처음이다. 2011년에는 소규모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단이 이 길을 이용했다. 


평양으로 가는 길은 온통 초록의 바다였다. 비무장지대를 지나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하는 동안 길 오른편으로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자리 잡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맨 왼쪽의 송악산부터 천마산까지…. 개성의 산들이다. 인공기를 단 높은 철탑의 기정동 마을도 보였다. 개성공단을 지나면서 번듯하게 지어진 공장 건물들을 보자 착잡했다. 2016년 초 박근혜 정부의 폐쇄조치로 문을 닫은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 재개할 제반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늦은 밤 찾은 호텔 24시간 찻집 “온커피 한 잔에 네 딸라” 

<b>북으로</b> 국제유소년축구대회 참가단을 실은 버스들이 지난 10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군사분계선을 통과하고 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북으로 국제유소년축구대회 참가단을 실은 버스들이 지난 10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군사분계선을 통과하고 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산림복구 노력 결실 역력 
송악산은 그림 같은 풍광


오후 5시20분쯤, 개성 외곽을 지나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이제 평양까지는 고작 140여㎞. 개성~평양 고속도로는 관목을 심어놓은 중앙분리대 양쪽으로 각각 아스콘 포장의 2차선 도로와 갓길이 있다. 승용차로는 얼추 1시간 반이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버스 행렬은 시속 70~80㎞로 천천히 운행됐다. 그 느림이 오히려 고마웠다. 고속도로 진입 전 보이는 송악산 아래 개성 시가지는 한폭의 그림이었다. 작품집을 넘기듯 ‘풍경화’가 이어졌다. 마침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어 도로 양편의 풍광이 맑은 가을날처럼 선명했다. 


과거 북녘에는 민둥산이 많아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옷’을 갈아입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전국적으로 펼친 산림 복구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게 역력했다. 산하가 모두 초록으로 뒤덮였다. 길 양편의 녹색 물결 속에 옥수수밭, 수수밭도 펼쳐졌다.


간혹 북측 보장성원들이 4·27 판문점선언의 이행 등과 관련한 질문을 던졌지만 흘려들었다. 시선은 가급적 차창 밖을 향했다. 

버스가 금천굴(터널)을 지나 구릉지역을 천천히 올라가자 황해북도 금천군 시가지가 오른쪽으로 펼쳐졌다. 굽이쳐 흐르는 예성강 물줄기와 나지막한 산 아래 안겨 있는 금천군의 풍경은 개성~평양 구간의 제1 장관으로 꼽아도 좋을 것 같았다. 옥천굴, 룡궁굴, 주포굴, 삼봉굴, 정방굴…. 10여개의 터널을 지났다. 전부 쌍굴이다. 대동굴을 지날 때 표지판이 ‘평양 53㎞’를 가리켰다. 높은 산을 지날 땐 수백m에서 수㎞ 길이의 터널을 빠져나왔고, 야트막한 구릉지역을 오르내렸다. 그 도로의 경사각이 오히려 멋진 풍광에 재미마저 더했다. 아쉽게도 유일한 휴식시설인 은정휴게소에는 정차하지 않았다.


남과 북은 이날, 각각 축구공을 둘러메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에 참가하는 북측 방남단이 이날 오전 같은 서해 육로로 내려왔다. 조선직업총동맹 선수단과 대표단 등 64명이 오전에 밟은 길을, 남측 방북단이 오후에 거슬러 오른 것이다.


검은 연기를 내뿜는 황해제철의 높은 굴뚝이 멀리 보이는 사리원시 외곽을 지날 무렵엔 평야가 펼쳐졌다. 황주평야에는 논과 밭이 섞여 있었다. 드문드문 풀을 뜯는 소, 자전거를 타고 농로를 지나는 주민들이 보였다. 낮은 구릉과 평지가 섞인 황주평야는 한반도 남녘에선 보기 드문 경치다.



지난 10일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촬영한 예성강. 황해북도 금천군 지역을 통과할 때 예성강 물줄기와 산자락에 안긴 금천군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이었다. 아쉽게도 그 장면은 담지 못했다.  김진호기자


20㎞, 10㎞, 5㎞…. 평양이 서서히 다가오면서 붉은 노을이 서쪽 하늘을 물들였다. 차창 밖으로 평양화력발전소 굴뚝이 보였다. 

평양 방문은 6·15 제5주년 기념행사를 취재한 2005년 이후 처음이다. 을밀대, 만수대, 만경대 등 ‘대(臺)’자 돌림의 지명이 많은 평양은 대동강 양안 곳곳에 낮은 경사의 너른 땅이 펼쳐진 도시다. 주체사상탑과 김일성경기장, 평양 개선문, 인민문화궁전, 만수대 의사당 등 역사적·정치적 의미 등을 녹여낸 모뉴먼트들을 곳곳에 배치한 ‘쇼윈도’이기도 하다. 

평양을 읽는 방식은 두 가지다. 적지 않은 경우 가슴으로만 읽거나, 머리로만 읽는 우를 범한다. 많은 경우 처음엔 가슴으로 만난다.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노래 ‘반갑습니다’의 가사에서 내비치듯 ‘민족’ ‘동포’ ‘조국통일’이라는 말과 정서가 범벅이 되면 목울대가 뜨거워지기 십상이다. 발레, 고전무용, 태권도, 서예 등 소조(동아리)별로 어린 학생들의 장기를 둘러보고 마지막에 종합공연을 관람하는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북녘이 고향인 한 분은 역동적인 농악으로 풀어낸 종합공연의 끝자락에 결국 무대로 뛰어나가 어린 학생을 껴안으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기자 역시 눈물샘을 자극하는 공연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 가슴으로 경험한 첫 만남이었다.


지난 10일 개성~평양 고속도로상에서 석양을 맞았다. 평양을 20킬로미터 정도 남긴 곳으로 평양시 강남군으로 생각된다. 

김진호기자



2003년 가을, 평양을 처음 방문한 뒤 보름 정도 간격으로 두 번째 방문을 할 수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의 앳된 어린 학생들을 다시 만났다. 소조별로 같은 학생이 같은 선율에 맞춰 같은 춤을 추거나 같은 장기를 펼치는 장면을 다시 보면서 ‘거리 두기’가 가능해졌다. 일종의 ‘소격 효과’였다. 이번에도 북으로, 징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난타하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같은 레퍼토리를 다시 접하면서 차분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머리로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평양의 진면목을 만나는 여정은 이처럼 가슴에서 출발해 머리에 이른다. 사람마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가슴과 머리가 타협한다. 방문 횟수가 잦아질수록 머리 쪽에 가까워진다. 4번째 평양을 만난다. 하지만 그런 기자에게도 10여년의 공백은 컸던 것 같다. 생각의 행로를 되짚어 가슴 쪽으로 향했던 게 분명하다. 


버스는 어느새 평양에 진입하고 있었다.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막 지났다. 한복 차림의 남한 여성과 북한 여성이 도로 위로 양손을 맞잡아 달덩어리 같은 한반도를 맞들고 있는 기념탑은 평양의 남쪽 관문이다. 아쉽게도 해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오후 8시쯤. 숙소인 양각도 국제호텔 앞에는 직원 20여명이 도열해 남측 대표단을 환영해주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호텔 로비는 남측 대표단과 중국인,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잡화점과 서점을 비롯한 대부분의 호텔 내 상점들도 손님을 맞았다. 커피와 음료를 판매하는 은정찻집 여성 봉사원에게 물으니 “찻집은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며 열어놓는다”면서 “다른 점포들도 자정까지는 근무한다”고 했다. 필터로 거른 ‘온커피’ 한 잔에 “네 딸라(4달러)”였다. 잡화점 유리벽 너머로 물건을 쳐다보자 승강기 앞에 서 있던 벨보이가 다가와 닫힌 문을 두들겼다. 어느새 자정이 넘었다. 안에서 걸어나오는 여성 복무원의 얼굴에 피곤이 역력했다. “어차피 구경만 하려고 했다. 내일 다시 오겠다”며 간신히 문 여는 것을 만류했다. 중년의 벨보이는 “그래도 그렇지 손님이 오셨는데…”라며 못마땅해했다. 폐점시간을 묻자 “손님이 계시는 한 어떤 상점이건 문을 여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평양의 낮 기온은 33도 안팎이라지만, 밤에는 창문을 열어놓으니 으슬으슬할 정도로 선선했다.

<b>평양 미래과학거리 빌딩들</b> 지난 11일 평양 평천구역에 위치한 미래과학자 거리 인근에 고층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광경. 비슷한 높이로 보이지만 왼쪽의 하얀 탑이 있는 건물은 70층으로 평양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이다. 대동강에는 모래 준설선이 떠 있다. 평양 |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평양 미래과학거리 빌딩들 지난 11일 평양 평천구역에 위치한 미래과학자 거리 인근에 고층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광경. 비슷한 높이로 보이지만 왼쪽의 하얀 탑이 있는 건물은 56층의 고층 살림집(아파트)이다. 대동강에는 모래 준설선이 떠 있다. 평양 |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양각도 호텔 관광객 북적 
김일성경기장도 새 단장
9·9절 축전 준비 곳곳 분주
 


11일 아침 평양 시내로 나섰다. 산과 들만 ‘옷’을 갈아입은 게 아니었다. 평양도 그새, 많이 달라졌다. 특히 평천구역의 미래과학자거리에는 50여층 높이의 아파트를 비롯해 세련된 디자인의 고층빌딩들이 빼곡했다. 행인들의 옷차림 역시 세련되고 깔끔했다. 여명거리에도 최근 건립한 수십층 높이의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북측 안내원은 “과학자와 연구사, 대학교수 등이 몰려 사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유소년축구대회 장소인 10만석 규모의 김일성경기장도 말끔히 단장됐다. 그라운드와 좌석은 물론 1층의 선수 대기실, 탈의실 등이 잘 준비됐다. 평양 개선문, 만경대 등도 참관했다. 오랜만에 ‘평양랭면’을 먹으며 옥류관 테라스에서 바라본 대동강변의 풍경은 화창했다. 김일성경기장 앞 광장을 비롯한 시내 곳곳에서는 9월9일 정권 창립(9·9절) 70주년 기념 군중대회를 준비하는 젊은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12일 평양은 비교적 맑은 날씨를 보이더니 오후 늦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b>옥류관 앞 거리의 평양 시민들</b> 지난 11일 오후 평양시 경상동에 있는 평양랭면 전문식당인 옥류관 앞길을 평양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평양 |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옥류관 앞 거리의 평양 시민들 지난 11일 오후 평양시 경상동에 있는 평양랭면 전문식당인 옥류관 앞길을 평양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평양 |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유소년축구대회는 만 15세 이하의 중학생 선수들로 구성된다. 남측에선 경기 연천과 남강원도 남자팀이, 북측에선 국제축구학교팀과 4·25남자팀이 출전한다. 하나은행 여자팀은 북측 4·25여자팀과 친선경기를 치른다. 6개국 8개팀이 참가했다. ‘남강원도팀’은 북측에도 강원도가 있는 만큼 북측 관중들을 배려해 팀명을 바꿨다. 방북단은 개막 전날인 14일 만수대 의사당으로 김영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의장을 예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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