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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읽기

중간선거? '세계의 트럼프화'는 계속된다

by gino's 2018. 11. 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1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에스테로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집회에서 연설을 한 뒤 워싱턴의 백악관에 복귀하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미국 중산층을 겨냥해 10% 감세 공약을 던지더니 1만5000여명의 군인들을 멕시코 국경에 보내기 시작했다.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출생시민권을 주지 않겠다는 약속도 내놓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6일(현지시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잇달아 내놓은 막판 승부수들이다. 유세기간 동안 젠더(성) 문제를 건드린 브렛 캐버노 대법관 인준청문회에서 고전을 하는가 했더니 결국 돌파했다. 피츠버그 유대인 회당 총격사건과 반트럼프 인사들을 겨냥한 소포폭탄 사건이 돌출하면서 뒤숭숭한 분위기이지만 선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분명치 않다. 미국 대선과 비교할 때 중간선거 결과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작다. 하지만 트럼프가 만들어가는 세계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인 것은 분명하다. 

 #예측불허의 미국 중간선거 판세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누구를 비난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하원에서 우리는 잘할 것이다. 상원에서는 아주 잘하고 있다. 그동안 지원유세를 해온 공화당 열세 선거구에서 지지가 올라가고 있다. 선거 결과를 지켜보자.” 10월31일 아침 플로리다주 유세에 가기 위해 백악관 뜰에 나온 트럼프가 출입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트럼프답지 않게 비관도 낙관도 아닌, 다소 덤덤한 입장이었다. 팩트가 맞건 틀리건 한껏 허풍을 부리는 트럼프의 익숙한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대통령 취임 2년째에 실시하는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상원(100석·임기 6년)의 3분의 1(올해는 35석)과 하원(435석·임기 2년) 전석을 새로 뽑는다. 현재 연방의회 의석 분포는 상원은 공화 51석·민주 49석(무소속 2석 포함), 하원은 공화 235석·민주 193석·공석 7석이다. 

 미국 정치지형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여론조사는 유권자들에게 ‘어느 당의 하원의원 후보를 지지하느냐’고 묻는 무작위조사(Generic Ballot)이다. 이날 현재 민주당이 49.5% 대 42.0%로 공화당을 앞서고 있다. 선거분석 전문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에 따르면 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우세 지역구는 각각 50곳, 44곳이고 경합 6곳이다. 하원은 198곳, 203곳으로 민주당 우세다. 나머지 34곳은 경합 지역이다. 대통령 소속 정당은 첫 중간선거에서 대부분 고전해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상원 6석·하원 63석을 잃었다. 종종 여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당의 지위를 잃는다. 하지만 트럼프와 공화당에는 ‘100년 만의 행운’이 따르고 있다.

 공화당 상원의원 51명 중 선거 대상은 8명에 불과하다. 43명이 선거와 무관하다. 선거 대상인 35곳의 선거구 중에서 8곳에서만 승리하면 과반 수성이 가능하다. 하원 역시 민주당의 다수당 복귀를 장담하기 어려운 판세다. 경합 선거구가 34곳이나 되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전략은 ‘상원 수성, 하원 패배 최소화’에 집중돼 있다. 

 #또다시 등장한 트럼프 ‘공포의 정치’

 이번 선거의 특징 중 하나는 대선 당시에 미약했던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반트럼프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도시 외곽에 거주하는 고학력 백인 여성들이 변화의 핵으로 지목된다. 워싱턴포스트 조사 결과 경합 선거구의 고학력 백인 여성들은 민주 62% 대 공화 35%의 압도적 비율로 민주당 지지성향을 보였다. 국경 경비 강화 및 이민자 통제, 출생시민권 거부 등의 막판 공약들은 여성 유권자들의 치안불안 심리를 부추기기 위한 것이다. 출생시민권 불허가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가능하다는 트럼프와 수정헌법 14조 위반이라는 법조계의 의견이 맞서고 있지만,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지난 31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에스테로에서 열린 중간선거 공화당 후보들의 유세장에 참석해 다양한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에스테로/로이터연합뉴스 


 공화당은 불법이민의 범죄 및 폐단을 강조하는 네거티브 TV 선거광고 28만개에 1억2400만달러의 자금을 쏟아부었다. 2014년 중간선거 당시 4만4000개·2300만달러의 6배를 집중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류 언론은 트럼프와 공화당의 공포와 소수자 배제 전략을 집중 성토하고 있다. 선거를 미국 민주주의의 존망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라면서 유권자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2016년 대선이 그랬듯이 주류 언론의 올바른 주장이 늘 선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트럼프 본인을 놀라게 한 ‘대선 충격’의 경험은 주류 언론에서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 선거의 이면을 짚어보게 한다.

 #다시 등장한 민주당의 ‘품성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의 패배는 냉정하게 보아 선거전략의 패배였다. 클린턴은 트럼프의 저속함과 품성을 집중 비난했지만, 정작 주요 현안에 대한 유권자들의 감수성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제이슨 라일리 논설위원이 제기한 대목이다. 대선의 향배를 가른 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주의 민주당 지지성향 유권자들 역시 트럼프의 품성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를 선택했던 점을 강조한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반감, 일자리, 중국에 대한 막연한 공포 등이 선택을 가른 것이다. 트럼프가 신사는 아니었지만, 그가 내뱉는 저속한 말들이 오히려 보통사람들의 감수성에 다가갔다. 유세 중반까지 민주당 후보들의 절반가량이 트럼프가 지난해 폐지한 ‘지불가능한 건강보험법(ACA·오바마케어)’의 방어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이러한 학습효과 때문일 터이다. 2년 전만 해도 오바마케어는 민주당의 약점이었지만, 이번엔 강점이 됐다. 트럼프 집권 이후 불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전략가 칼 로브 역시 같은 맥락에서 트럼프에 대한 찬반 여론 외에 ‘제3의 여론’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지지율이 38%에 그치고 반대율이 43%에 달한다는 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이 조사에서 개인적으로 트럼프를 싫어하지만, 그의 정책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16%에 달했다는 것이다. 2년 전 대선에서 인간적으론 싫지만 정책을 지지한 현상이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적지 않은 민주당 후보들은 피츠버그 유대인 회당 총기난사와 소포폭탄이 터지면서 유세전에서 정책적 필요에 호소하는 대신 트럼프 비난에 몰두하는 우를 다시 범하고 있다. 이민문제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판단은 광장에서 표출하는 인권에 대한 입장과 밀실에서 진행되는 투표 결과가 다르기 마련이다. 

 #공화당은 선거에 져도, 트럼프는 전진한다?

 모든 중간선거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는다. 이번 선거가 특이한 점은 트럼프가 집권당 상·하원 의원 후보들을 위한 지원유세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트럼프는 떡 본 김에 제사드리는 격으로 2020년 자신의 대선 유세를 동시에 하고 있다. 중간선거 유세가 끝나자마자 다른 장소에서 대선자금 모금행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폴리티코는 트럼프의 유세 행보가 플로리다·위스콘신과 같은 2016년 대선 당시 경합주와 네바다·미네소타·펜실베이니아·오하이오 등 차기 대선에서 그가 승리를 노리는 주에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차피 트럼프는 ‘공화당 밖’에서 득세했다. 공화당은 의석을 잃어도 트럼프는 재집권 플랜을 착실히 진척시킬 수 있는 구도이기에 덤덤하게 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트럼프의 대통령 업무수행 지지율은 여전히 높다. 지난달 31일 현재 갤럽과 ABC·워싱턴포스트 등 올해 실시된 수십개 여론조사의 평균이 43.9%(반대 52.7%)이다. 지지자들 사이에선 “트럼프의 약속이 지켜지고 있다(promises made, promises delivered)”는 찬사가 나오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로 시작된 무역정책의 U턴 또는 미국 입맛대로의 개정이 잇따르고 있다. 캐나다, 멕시코, 한국 등과 FTA를 이미 개정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 쪽에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미국은 다소 고통이 따르더라도 중국 없이 살 수 있지만, 중국은 미국 없이 살 수 없는 구조 때문이다. 미국 내 일자리는 늘어나고 경제는 호황이다. 트럼프가 취임한 작년 1월 4.8%였던 실업률이 지난 9월 3.7%(미국 노동통계청)로 내려갔다. 올 3분기 국내총생산은 3.5% 성장(상무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장기적으로 무역전쟁 및 보호무역 정책이 결국 미국 소비자들에게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제기되지만, 목전의 위험은 아니다. 공화당 후보들이 ‘감세 및 일자리법(TCJA)’을 지지하는 데 선거자금을 투입하는 이유다. 여기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로부터 분담금을 제대로 내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등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봉’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아메리카 퍼스트’ 공약도 실현하고 있다.

 #중간선거 이후 세계는?

 외교안보 부문에서도 트럼프는 의회로부터 예산을 받지 못해 진행이 안되는 멕시코 국경장벽과 대규모 인프라 건설 등을 제외한 대표 공약들을 꾸준히 이행하고 있다. 핵개발을 영구 봉쇄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란 핵합의를 파기했다. 최근엔 1987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체결한 미·러 중거리핵전력(INF)협정의 폐기 방침을 공표했다. 중국은 INF에서 자유롭다. 미·러 협정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까지처럼 중국의 탄도미사일망 구축을 더 이상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지 않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지난 2월 핵태세보고서(NPR)에서 밝힌 대로 핵무기를 추가 개발해서라도 러·중과의 전력경쟁에서 앞서겠다는 전략의 연장이다. 중간선거 이후 본격화될 북·미 협상이 그나마 긍정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평화과정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나라들이다. 지극히 불온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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