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저널리스트 밥 우드워드의 신간 <공포>의 표지 AP연합뉴스
지난 1월 19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주한미군의 주둔 필요성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생뚱맞은 질문에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15분’과 ‘7초’의 차이를 들어 설명했다. 초등학교 수준의 산수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한국에서는 7초 만에 확인할 수있지만,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면 알래스카의 미군기지에서 파악하는 데는 15분이 걸린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우이독경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황당한 현주소를 냉정하게 해부한 밥 우드워드의 신간 <공포 : 백악관의 트럼프> 중에서 나오는 일화다. 단순히 한반도 거주민에게만 크게 들리는 말이 아니다. 미국 언론 역시 가장 심각한 대목으로 꼽고 있다. 워터게이트 특종을 터뜨린 저널리스트 우드워드가 전한 세부내용은 이렇다.
발단은 미군 수뇌부들이 참석한 NSC 회의석상에서 “주한미군을 그냥 한국에서 철수시키면 안되겠느냐”는 트럼프의 질문이었다. 몇달 뒤 밝혀졌지만 당시는 트럼프가 이른바 ‘코피 작전’으로 불리는 대북 제한적군사옵션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상태였다. 미국과 북한이 극한대치를 하는 상황에서 작은 오판이 핵전쟁으로 치달을 수있는 위험천만한 시점이었다. 그 와중에 트럼프가 내놓은 대안 아닌 대안이었다.
매티스 장관을 비롯한 군 지도부는 경악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미군의 통수권자이자 대통령이 아닌가. 설명할 수밖에.
하지만 트럼프는 이러한 설명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엉뚱하게 한국과의 무역적자 타령만 늘어놓았다. “한·미 동맹이 미국 경제에 상처를 주고 있다”는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매티스는 돈에 돈으로 답했다. “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는 것이 사실은 가장 비용절감적”이라고 강조했다. “3차 세계대전을 예방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갓 취임한 대통령이면 한·미 동맹의 중요성이나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지 만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며, 북한이 2017년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뒤의 일이다.
트럼프는 “하지만 우리는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에서 너무 많은 돈을 잃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논리가 달렸는 지 느닷없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 분담을 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과 연결시켰다. 당최 맥락이 없는 사고다. 트럼프는 “우리는 비용분담을 하지 않는 부자나라들 탓에 엄청난 돈을 지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가 그리 멍청하지 않으면 부자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속아넘어가는 사람(sucker)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반박했다.
NSC 회의 일화는 매티스가 트럼프의 지능 수준을 초등학교 5~6학년 수준으로 평가하게 된 계기였다고 우드워드는 썼다. 우드워드는 “회의가 끝난 뒤 매티스는 탈진하고 놀란 상태로 주변 동료들에게 ‘대통령이 초등학교 5학년 또는 6학년 처럼 행동한다’거나 ‘5학년 6학년 수준의 이해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기술했다.
지난달 말 별세한 상원의원 존 매케인은 베트남전 당시 해군제독의 아들이었다. 체포된 뒤 북베트남군은 이를 들어 그의 석방협상을 제안했지만, 매케인은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꼬박 5년 동안 포로생활을 했다. 미국민이면 누구나 아는 영웅 이야기다. 트럼프는 역시 군 수뇌부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매케인은 해군제독의 아들인 덕분에 일찍 석방됐다”고 말해 주변을 기함케했다. 매티스가 “대통령님, 거꾸로 아시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트럼프는 “아, 그래요?(Oh, okay)”라며 넘겼다. 워싱턴포스트의 애런 블레이크는 두가지 일화를 우드워드의 책 내용 중에서 그 중요성이 덜 알려진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매케인과 관련한 일화는 트럼프가 미국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증좌다. 하지만 우리에겐 트럼프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상상하는 순간, 머리칼이 쭈뼛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없다.
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도 몇번 맞닥뜨릴 지 모르는 놀람이자 분노이고 공포이기 때문이다. 국가 방위를 다른 나라 군대에 맡겨놓고 있는 나라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내세운 구호다. 냉전종식을 업적으로 내세우던 공화당의 조지 HW 부시 대통령을 함몰시켰다. 이 한마디가 미국민의 심금을 울린 덕분이다. 하지만, 가짜뉴스와 포퓰리스트들이 유포하는 공포와 증오에 중독된 상당수 미국 유권자들에게 ‘바보’를 식별해내는 눈이 아직도 있을까. 올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한반도 남측에서 여전히 수많은 인사들이 지상최고의 가치로 떠받드는 한·미동맹의 운명은 900초(15분)와 7초의 차이를 헛갈리는 미국 대통령의 손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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