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후오빌라 주한 핀란드 부대사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핀란드대사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북한 원산지역에 적합한 씨감자를 찾아내는 데만 몇년이 걸렸다. 파종할 때는 씨감자를 자르지 않고 통으로 심어야 한다. 북한보다 길고 혹독한 겨울을 나는 핀란드는 감자 재배에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안나 후오빌라 주한 핀란드 부대사(38)는 지난 9월 말 원산지역을 둘러보고 돌아와 ‘감자 박사’가 됐다. 북한에서 20년 동안 농업협력 및 보건의료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핀란드 비정부기구 ‘피다(Fida)’가 북한 측

과 함께 원산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감자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강원도 세포군의 감자농장도 방문했다. 감자 하면 ‘강원도 감자’인데 핀란드 사람들이 감자 농사에 대체 어떤 도움을 주고 있을까. 또 북유럽의 중립국, 핀란드 사람들이 어떤 연유로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주한 핀란드 대사관에서 그를 만난 이유다. 서울의 핀란드 대사관은 주북한 대사관 업무를 같이한다.


후오빌라 부대사는 “감자는 어떤 시설에 어떻게 저장하느냐도 중요하다”면서 “특히 겨울철 지붕을 최소 1m 두께의 흙으로 덮고 빛을 차단한 건물에 보관하면 전력 필요 없이 저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피다와 협력하는 세포군 농장에서는 저장 중 감자 손실률을 30%에서 10% 밑으로 줄였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감자는 피다가 북한과 관련을 맺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피다가 진출한 1998년이 마침 북한 당국이 선포한 ‘감자의 해’였기 때문이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식인 쌀과 옥수수를 수확하기 전의 ‘보릿고개’에 유용한 감자 재배를 적극 장려했다. 피다는 북한 측의 사업 지속 요청을 받아들여 올해부터 강원도 세포·판교·통천군과 문천시, 평안남도 개천시, 평안북도 정주군 및 평양시 등으로 대상 지역을 확대했다. 2021년까지 기존의 감자 프로젝트와 함께 병원 6곳의 의료시설 지원 및 의료인력 교육 등의 사업을 벌인다. 올해 예산은 40만유로(약 5억1500만원). 



"핀란드 사람들도 김자 덕분에 살아남았다." 감자는 핀란드가 제조업기반의 탄탄한 산업구조를 구축하기 전까지 핀란드 인들의 굶주림에서 해방해준 구황작물이다. 북유럽의 부국이 된 지금도 중요한 영양원으로 핀란드 사람들의 생활에 스며들어 있다. 사진은 핀란드 타임스의 감자기사 관련사진.



후오빌라 부대사는 피다를 비롯한 국제구호단체들의 북한 내 활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로 단연 국제사회의 제재를 꼽았다. 농장에 필요한 물품을 반입하기 위해선 유엔 안보리의 제재위원회에 ‘인도적 예외’ 신청을 해야 한다. 기계류를 비롯해 통상 반입 심사에만 몇달이 걸린다. 제재위는 특히 금속물품에 민감한데, 최근 한 국제구호단체의 반입품목 중 손톱깎이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제재가 국제 비정부기구들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만,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놓기 전에 제재를 완화해선 안된다”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의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평범한 핀란드인들에게 북한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후오빌라 부대사는 “나의 경우 초등학교 시절에 열린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과 함께 북한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주한 대사관에 근무하게 되면서 한반도를 안에서 보기 시작했다. 분단국인 것도 핀란드가 한반도에 관심을 갖는 이유의 하나다. 스웨덴과 제정러시아의 속국을 거쳐 냉전시대 동서 진영의 경계에 있었던 역사와 무관치 않다. 그는 핀란드가 1975년 수도 헬싱키에서 냉전 해체의 단초가 됐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주최한 나라임을 강조하면서 “노르딕(북유럽) 국가들은 평화 중재의 전통이 있다”고 말했다. 노르딕 국가들의 대사를 겸임하는 주




정지윤기자


스웨덴 북한대사의 역동적인 활동도 핀란드인들에게 북한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북한을 처음 찾은 그는 “아쉽게도 방문 일정 중 참관 프로그램이 없었다”면서 “하지만 평양~원산 간 도로변의 경치가 아름다웠다”며 다음 방문을 기대했다. 원산의 인상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입성은 깔끔했지만 건물과 도로는 개선이 필요했다”고 했다. 


우리민족서로돕기를 비롯한 국내 대북 지원단체들은 2010년 5·24조치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탓에 여전히 활동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1252104005&code=100100#csidxb466dd08e4a40608b55034d99bbb7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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