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사람, 북한 사람들을 처음 만나면 생김새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다. 하지만 같이 오래 사업해보니까 똑같은 사람들인 것 같다.” 북한과 러시아 합작기업인 라선(나진·선봉) 콘트라스의 이반 톤키흐 공동대표(35)는 스스로 ‘촌사람’을 자청한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시골, 자조우의 철도병원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조부모, 부모가 모두 철도와 관련한 일을 했다. 모스크바 경제대에서 경제학과 마케팅을 전공한 그가 철도 관련 사업에 뛰어든 것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카레이스키(한국인)와 하는 일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북한 지원엔 ‘발상의 전환’ 필요
러 석탄, 북한 거쳐 남한에 수출
지난 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롯데호텔에서 KEB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와 사단법인 유라시아21이 공동주최한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 포럼’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라선 콘트라스는 시베리아산 석탄을 하산~나진 간 철도로 운송한 뒤 나진항 제3부두에서 한국으로 실어나르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업이다. 2014년 출범한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장차 한반도 종단철도(TKR)·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연결해 대륙과 보조를 맞추는 메가 프로젝트의 첫 출발로 기대를 모았었다. 하지만 180일 동안 나진항에 기항한 선박이 한국에 기항하지 못하도록 한 우리 정부의 독자제재로 2016년 이후 중단됐다.
회사 현황을 묻자 “라선 콘트라스의 북한 직원 500여명을 100명으로 줄이고, 러시아 직원도 절반(50명)으로 줄였다”면서 “직원들은 대부분이 주로 시설정비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톤키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양과 개성, 서울, 포항으로 뛰어다니며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다시 가동시키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다.
철도 연결사업에 기대 많았지만
대북 제재에 ‘시설 정비’로 소일
문재인 정부 출범 뒤 한·러 간 북극항로·조선·항만·가스·철도·전력·일자리·농업·수산 등 9개의 다리 건설 제안과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구상 등이 잇달아 발표되면서 희망을 가졌다. 내친김에 러시아 외교부를 통해 유엔 안보리 제재위에 정식으로 예외 인정을 신청, 지난 3월 예외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톤키흐는 “한국 측은 말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철도재건 등 발판 마련 불구
정치적 이유로 사업중단 아쉬워
그는 “남북경협과 관련한 한국 내 설문조사의 질문을 보니 ‘세금을 올려서 북한을 도와주는 건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이 있었다”면서 “오히려 ‘남북경협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면, 조세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설문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다. 그는 “나진을 한번도 와보지 않은 한국 학자들도 비판적인 입장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톤키흐는 “우리가 하산~나진의 노후한 철도를 재건하고 나진항 제3부두 앞 준설작업까지 마친 것은 장기 투자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면서 “한국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경제적인 사업을 외면하는 게 안타깝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라선 콘트라스를 싫어한다”면서 러시아는 남·북·러만의 협력사업이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내비쳤다(정부에 문의하니, 정부 당국자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우리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것은 여전히 안보리 제재에 저촉될 우려가 있다”면서 부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한국의 독자제재에 대해선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철도와 함께 카레이스키와의 인연은 어린 시절부터 성장 배경의 하나였다. 부친도 자신도 고려인 친구들이 많았기에 한국 음식을 일찍 접했다고 한다. 두 살배기 딸과 아내를 블라디보스토크에 두고 주로 나진에서 ‘기러기’로 지내는 그는 “나진의 백김치 맛이 일품”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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