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인 스티븐 월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 27일 서울 한강로 국방컨벤션에서 한반도 및 동아시아 안보환경의 변화를 주제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동아시아 안보 환경을 진단한다 上

 

뜨거운 정치학은 없다. 차갑거나, 미지근하다. 바로 국제정치학의 양대 산맥인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차이다. 한반도 안팎의 안보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제외 및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탓에 한·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파기로 핵무기 통제체제의 한 축이 허물어졌다. 한반도 중거리미사일 배치 가능성을 놓고 중국의 경고가 예사롭지 않다. 러시아 군항기가 사상 처음 독도 상공을 정찰했다. 북한의 단거리미사일 또는 방사포 발사는 미국의 묵인 아래 ‘일상’이 됐다. 북·미 협상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난 안보 변수들을 꿰뚫어 보는 통찰이 아쉬운 시점이다. 경향신문이 때마침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제1회 세계안보학대회 참석차 방한한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64)와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64)를 지난 27일 만난 까닭이다. 각각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을 대표하는 이들의 견해를 두 차례에 나눠 소개한다. 다음은 월트 교수와의 일문일답. 

 

미, 한·일관계 복원 원하지만 
압력 가하거나 개입 안 할 것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 요구 

힘 균형 위한 ‘제몫’ 원하는 것
새로운 길 가겠다는 북한 
2년 내 핵 포기 가능성 없어
장·단기 비핵화 ‘비현실적’ 
추가적 신뢰구축·협력 등
제한적 목표 설정해야
 

 

- 한·일관계가 심상치 않다. 한국의 GSOMIA 중단 결정에 미국은 이례적으로 ‘강한 우려’를 표명한 데 이어 주한미군에 대한 위협 증가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미국이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은 다만 한·일 협력관계의 복원을 희망하는 만큼 양국 정부를 상대로 관련 대화를 해나갈 것이다. 외교관들이란 그래서 존재한다. 미국이 압력을 가하거나 직접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윤중 기자

 

- 이번 사태가 군사동맹국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대한국 공약을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오랫동안 중동이나 다른 지역 문제에 주의가 분산됐었다. 한·일 갈등은 미국이 동아시아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 신호가 될 수도 있다.” 

 

- 기존의 북핵 문제에 더해 한·일 갈등과 미·러 간 INF 파기, 미·중 무역전쟁 탓에 동아시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좋은 소식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아시아 안보환경 변화를 과장해서는 안된다. 우선 미국이 이 지역에 배치한 군사력이 강고히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일본, 호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베트남 및 인도 관계는 개선됐다.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부상과 행동을 우려하고 있기에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한다. 안보 상황이 생각만큼 달라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만 미국이 이러한 변화를 적절하게 다뤄오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 미국이 INF를 파기한 것은 중국 요소를 생각하면 현실적인 필요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왜 지금인가. 너무 늦은 건 아닌가. 

“중국은 이미 미사일 능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늦은 감이 있다. 미사일은 미국보다 중국에 더 중요하다. 중국 방위전략의 중요한 부분이기에 감축을 꺼릴 것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INF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군축협상에 관심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미국이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줌으로써 외교적으로도 잘못된 접근이다.” 

 

- 미국과 소련이 1980년대 INF를 체결하는 데 7년이 더 걸렸다. 새 조약의 협상은 더 어렵지 않겠나.

“트럼프 행정부에선 협상이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조약에 반대하는 존 볼턴 같은 사람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있는 한 더욱 그렇다. 미국이 새로운 조약의 가능성을 탐사한다면 다른 대통령, 다른 안보보좌관들이 하게 될 것이다. 미·러 간 양자회담이 아닌, 중국이 포함된 3자 회담은 더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 그러한 협상의 결론을 기다리는 동안 한국은 고통을 받아야 한다. 중국은 벌써부터 한국 내 중거리미사일 배치에 반대한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의 이해와 처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역시 선택해야 한다. 한국 영토에 배치할 특정 무기가 안보를 더 강화할지 약화할지, 또 중국이 두려워 한국의 이해가 아님에도 받아들일지를 선택할 수 있다.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과 솔직하게 대화를 나눠야 할 문제다.” 

 

강윤중 기자

 

-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이 훨씬 넘는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동맹 전문가가 보기에 이런 (한·미)동맹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 

“물론이다. 동아시아 안보환경을 감안할 때 한국은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미국에도 중요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아시아에서 제기하는 도전과 동맹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동맹관계를 현명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 괌에 있는 미군 전략자산을 한반도 지역으로 전개하는 비용까지 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미국은 공정한 업무 분담을 놓고 아시아 국가들과 솔직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각국은 집단적인 부담을 나눠야 한다. 우방국들이 ‘미국과 관계를 끊고 중국에 가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나, 미국이 ‘더 분담하지 않으면 떠날 테니 알아서 하라’고 위협하는 것도 문제다. 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을 위해 각국이 어떻게 제 몫을 해야 할지 대화를 해야 한다. 각국이 자기 몫을 할 때 아시아 안보환경은 다룰 수 있다고 본다.”

 

- 미·중 무역전쟁에서 트럼프의 최종 목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미국은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때 약속과 다른 무역관행, 지식재산권 보호 등과 같은 정책의 변화를 노리고 있다. 두 번째 군사적 전용 가능성이 있는 기술을 중심으로 중국의 첨단기술 획득을 늦추려 한다. 다른 나라들이 화웨이의 5G 장비 사용을 자제토록 하는 게 그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야심을 드러낸 시진핑 국가주석의 최근 성명들을 보면 이해가 가는 목표들이다. 하지만 이를 추진하는 방법이 틀렸다. 무엇보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유지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파기는 잘못이다. 또 다른 나라들과도 작은 무역분쟁을 함으로써 연합하기는커녕 미국이 홀로 중국과 맞서는 상황을 초래했다.” 

 

- 미국이 동아시아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면 본격적인 군비경쟁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이 지역에서 군비경쟁은 이미 25년쯤 전에 시작됐다. 중국은 경제발전과 동시에 군 전력 현대화 작업을 다른 어떤 국가보다 빠르게 진행해왔다. 동아시아 힘의 균형을 위해 어떤 무기가 좋을지는 다른 문제다. 하지만 군비경쟁이라기보다는 떠오르는 위협에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라고 봐야 한다. 특정 무기 배치가 심각한 위기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걱정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강윤중 기자

 

- 현실주의 이론가로서 작년 6·12 싱가포르 대좌 이후 지금까지 진행돼온 북·미 협상을 어떻게 평가하고 전망하는가. 

“미국이 북한에 손을 내민 게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더 잘 준비해서 더 진지하게 접근했다면 더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실질적 성과보다 기념촬영을 하는 기회 정도로 다뤘다. 또 미국은 현실적인 목표를 내놓아야 한다. 완전하고 영구적인 비핵화는 단기는 물론, 중기적으로도 현실적이지 않다. 아무리 많은 경제지원을 내놓더라도 북한이 가까운 시일 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을 제한하고 미국과는 추가적 신뢰구축 조치를, 남북 간에는 협력을 늘리는 등 제한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게 낫다고 본다. 다소 진전된 결과는 도출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향후 2년간 결정적인 돌파구는 없을 것으로 본다. 평화체제와 동북아 집단 안보체제를 구축하는 것 역시 절대적으로 올바른 목표다. 하지만 미사일 활동에서 북한의 양보를 받아내고 이를 보상하는 식의 좀 더 소박한 희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김정은과의 회담 한두 번으로 야심적인 목표를 달성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 북한은 올해 말까지 근본적인 진전이 없으면 부득이하게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한다.

“북한이 위험하고도 극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북한은 종종 위협하지만 그 위협을 실행하지는 못한다. 자멸을 각오하기 전에는 강력한 무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강국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이 아닌 ‘위협의 균형(Blance of Threat)’ 이론을 내놓았다. 그 이론에 비추어 동아시아 안보환경을 요약한다면...

 

“위협의 균형은 각국이 주로 위협에 대응하며, 위협은 힘의 조합이라는 이론이다. (월트 교수는 자신의 저작 <동맹이론(The Theory of Alliance)>에서 강대국이 제기하는 위협의 수준을 국력과 지리적 인접성, 공격 능력, 공격적 의도 등의 조합으로 설명했다.) 아시아에서 보자면 중국이 강력해질수록 중국의 위협에 맞서는 움직임 역시 강화될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각심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과 호주, 인도, 일본 및 아세안이 연합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다. 중국이 지역에서 지배적인 힘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인도와 호주, 베트남, 한국, 일본, 대만은 함께 묶기 어려운 연합이다. 미국의 군사적 균형은 나쁘지 않다. 외교적 균형이 문제다. 미국은 외교적으로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놓았지만) 정확하게 트럼프 행정부가 하지 않고 있는 일이다.” 

Posted by gi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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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no's 2019.08.29 15: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지에 따라 같은 동맹은 성격이 달라진다. 약소국 또는 중견국 입장에선 생존의 문제이지만, 강대국 입장에선 관리의 문제다. 1990년대 이후 민주, 공화당을 막론하고 미국 사회 주류는 동맹관리의 방식으로 역외균형론(off-shore balancing)을 내세운다. 지역 안보 문제에서 미국은 손안대고 코를 풀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의 말은 더 차갑고, 건조했다. “제값을 내고 제몫을 다하라, 아니면 동맹에서 떠나라”는 말로 요약된다. 트럼프는 막간배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