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서 긴요한 동맹이었던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를 배반했다. 미국 조야는 물론 각국은 미국이 언제든 동맹을 버릴 수 있는 사례로 꼽아 비난하고 있다. 국제뉴스에는 하나의 굵은 흐름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불가능성, 모든 판단 기준을 채산성으로 보는 거래주의의 특이한 사례로 들면서 각국 미디어들이 비난 대열에 동참해 트럼프의 배신을 소비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익숙한 과정이다. 1920년 세브르 조약으로 독립의 꿈이 영글었다가 강대국들의 잇단 배신으로 결국 터키와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지에 흩어져 나라 없는 설움을 겪는 쿠르드의 슬픈 역사가 뒤이어 쏟아진다.
하지만 진실은 큰 흐름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작은 흐름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미국의 망토에서 벗어나면 당장이라도 국가 존재 자체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포획된 동아시아의 한 분단국에선 그러한 생각의 경로가 더욱 분명하다. 미국의 시리아 쿠르드족 방기(放棄)는 과연 예외적인 사건일까. 착시가 생기는 지점이다. 트럼프가 예외적인 인물이라고 해서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까지 예외적인 건 아니다. 예외가 아닌 현실로 인정할 때 목전의 선택과 향후의 선택을 구분해보는 혜안이 생긴다.
마운트 버논. 미국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생가다. 워싱턴에서 포토맥 강을 건너 올라가면 멀지 않은 거리다. 기념관에는 독립전쟁 고비마다 워싱턴의 활약상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기념관을 둘러보다 보면 프랑스 라파예트 장군의 업적이 돋을새김돼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워싱턴 기념관인지 라파예트 기념관인지 헛갈릴 정도다. 미국 국부(國父)의 생가 기념관임에도 라파예트의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그만큼 그의 공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군을 상대로 결정적 승리를 거둔 1781년 ‘요크타운 전투’는 그의 지휘와 헌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식민지 민병대를 번듯한 대륙군으로 키운 주역이었다. 백악관 뒤편의 아담한 정사각형 공원을 라파예트 스퀘어라고 이름 지은 연유다.
미국은 그러나 태생부터 외국과의 영속적인 군사동맹과는 거리를 뒀던 나라다. 워싱턴은 1796년 퇴임사에서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권했다. “특정 나라들과 영원하고 뿌리 깊은 반감도, 다른 나라들에 대한 열정적인 결탁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정국에 대한) 습관적인 증오나 습관적인 선호는 미국을 반감과 애정의 노예로 만들며, 둘 중 어떤 경우도 국가의 길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1789년 프랑스가 대혁명 소용돌이에 휩싸이자 워싱턴은 독립전쟁 때 프랑스 전우들의 숱한 도움 요청에도 중립을 고수했다. 미국 동맹정치의 출발점이자, 동맹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의 맹아였다.
워싱턴의 세계관을 돌아보면 미국이 시리아 쿠르드와의 동맹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게 정당하다. 트럼프의 성급한 결정과 경박한 방식에 문제가 있지만 옳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미국 케이토 연구소의 더그 밴도 선임연구원과 크리스토퍼 프레블 부회장이 최근 워온더록스 공동기고문에서 펼친 논지다. 이들은 트럼프의 결정을 두둔하면서 “동맹이라고 다 같은 동맹이 아니며, 그중 일부는 동맹도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미국과 시리아 쿠르드는 상원에서 비준을 받은 조약상 동맹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쿠르드는 IS가 시리아를 제패하면 몰살당할 운명이었고, 미국도 IS 토벌 필요성이 있어 ‘마음의 동맹(alliance in mind)’을 맺었을 뿐이라는 논리다. 쿠르드와 터키의 갈등에서 수십년간 조약상 동맹이자 미군기지를 두고 핵무기까지 배치했던 터키의 역성을 든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조약상의 동맹을 존중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자국 안보와 별 관련이 없음에도 유지하고 있는 동맹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한·미 및 미·일 동맹을 콕 짚어 지목했다. 소련이 붕괴하고 바르샤바조약이 해체됐으며 마오쩌둥이 죽었는데도, 미국보다 더 부유해진 나라들과의 동맹 유지에 예산을 쓰고 있다는 말이다. 동맹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설파하는 이들은 미국 내 동맹회의론자들을 대표한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1970년대 초 남베트남과의 집단안보협정을 휴지통에 던진 것처럼 필요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는 게 동맹정치라고 역설한다. 차제에 미국이 무작정 동맹을 늘리기보다 국익과 상황 변화에 따라 필요한 동맹이 무엇인지를 검토하는 계기로 삼자는 게 이들의 제안이다.
밴도 선임연구원은 일관된 한·미 동맹 회의론자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가 맞붙어 한반도에 전운이 짙어가던 2017년, 북한 문제 해결의 첫 단추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바 있다. ‘이제 남한을 풀어줄 때’라는 제목의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다. 미군이 주둔하는 한 분쟁이 확산될 뿐이라며 충분히 자체 국방력을 갖춘 한국에 한국 방위를 맡기자고 제안했다. 그의 한·미 동맹론에는 진즉 성년이 됐음에도 유년의 추억에 매몰돼 있는 한국군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있다. 한국군이 주한미군에 의존하는 오랜 관성 탓에 스스로의 잠재력을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도 내놓았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대한 방비는 일본과 괌, 하와이 등에 포진한 미국의 전략 핵무기로 충분하다는 전제에서 주한미군의 재래식 전력을 빼내야 한국군이 자주국방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짚었다. 한국을 위해 내놓은 충언은 아니다. 2005년 테드 갤런 카펜터와 공저한 <한반도 난제(The Korean Conundrum)>에서 밝혔듯이 북한의 핵무장과 한·미 간 갈등 사이에서 주한미군이 ‘핵(核) 인질’이 되는 만큼 한반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미군의 시리아 철군과 쿠르드 방기가 미국의 글로벌 동맹을 약화시킨다는 우려와 지적은 미국 리버럴과 보수 양 진영에서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 조야의 주류가 모두 이런 비난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이자, 동맹 전문가인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달 28일자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밴도 등의 주장을 환영하면서, 미국은 이제 좋은 동맹과 나쁜 동맹을 가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밴도나 월트 모두 트럼프의 대외정책에 신랄한 비판론자라는 점이다. 트럼프가 취임 이후 전통적인 미국 대외정책의 가치와 규범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월트는 동맹은 비용과 의무를 동반하는 것이기에 결코 신성불가침의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한 이유의 하나로 소련이 지극히 의존적인 바르샤바조약국들과 맺은 동맹보다 미국이 일본과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경제적·군사적으로 부강한 나라들과 맺은 동맹이 더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논했다. 베트남의 경우가 유일한 예외였다. 미국·남베트남 동맹보다 소련·북베트남 동맹이 더 강했다. 월트가 꼽은 좋은 동맹의 조건은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고 있거나, 걸프만의 유전과 같은 전략적 자산을 통제하는 나라들이다. 안정된 국내정치 역시 주요 덕목이다. 미국이 정권 유지를 돕기 위해 많은 시간과 재원을 투입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유의 전략적 가치가 줄었듯이 좋은 동맹의 조건도 시시각각 바뀐다.
이 기준에서 나토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력에서 합격점이지만 미국 보호에 의존해 군사력을 증강하지 않은 것을 단점으로 꼽았다. 취임 이후 분담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나토 회원국들을 비난하는 트럼프와 같은 가치관이다. 반면 중국의 부상에 군사비 지출을 늘리는 아시아 국가들은 높게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우방 및 동맹국들은 여전히 미국의 지지를 갈구하고 있는 만큼 미국이 관계의 조건을 조정할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고 짚었다. 동맹정치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심 이해가 걸려 있을 경우에만 동맹 공약을 확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밴도의 동맹 선별론과 맥이 닿는다.
지난 8월 말 내한했던 월트는 동맹의 가치에 대해 보다 쉽게 풀어서 말했다.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제 몫을 내고, 제 역할을 다해야 좋은 동맹”이라면서 동맹의 비용과 의무를 설명했다.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을 소요액의 5배나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전하며 “한국에 이런 동맹이 지속가능한가”라고 기습적인 질문을 던지자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답했다. “동아시아 안보환경을 감안할 때 한국에 미국과의 긴요한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고 못박았다. 괌에 배치한 전략자산을 한반도 지역에 전개하는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집단적 부담을 나눠야 한다”는 답을 돌려보냈다.
미국의 동맹정책은 원칙이 아닌, 편의에 따라 움직였다. 1914년과 1939년 영국의 동맹이 아님에도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국전쟁에도 동맹으로 참전한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미 동맹은 불변의 조건으로 굳었다. 다음달 한·미안보협의회(SCM)를 앞두고 ‘한·미 동맹 위기관리각서’ 개정과정에서 한·미연합사의 위기관리 범위를 기존 ‘한반도 유사시’에 더해 ‘미국 유사시’도 포함시키자는 미국 제안이 알려졌다. 연말까지 매듭을 지어야 하는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에선 방위비분담금을 5배 늘려 50억달러로 하자는 미국 셈법도 전해진다. 월트가 말한 비용과 임무를 모두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미국은 쿠르드처럼 한·미 동맹을 버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서 입증됐듯이 중국을 포위하는 장기판의 말로 생각하고 있다. 더 많은 비용을 대고 미국의 세계전략에 복무하라는 명령이다. 한국군은 미군을 대신해 또는, 미군 앞에서 낯선 전장을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한·미 동맹의 존재를 깊이 생각할 좋은 기회다. 대한민국엔 이런 고민을 하라고 봉급 받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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