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이 몇 번 연합훈련 취소 또는 연기 결정을 내리니까 북한은 더 많은 연합훈련을 취소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지 않은가.” 2020 평창평화포럼 참가차 방한한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67)는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한·미 연합훈련 취소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는 “한번 박스를 열면, 다시 닫기 힘들어진다”면서 유화주의의 폐해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10일 강원 평창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이뤄졌다. 

 

힐 전 차관보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 개별관광 및 남북 철도 연결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부정적인 의사를 내보이는 것과 관련, “미국은 분단에서 비롯된 한국인들의 정서를 우선 이해해야 한다”면서도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북핵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와 주한 미국대사를 거쳐 차관보로 북핵협상을 이끌었던 그의 생각은 여전히 비핵화 협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전날 포럼 강연 중 북·미 간 신뢰 부족 탓에 핵문제 해결이 안되고 있다는 지적에 “비핵화 문제에 관한 한 신뢰보다는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의견을 내놓았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10일 강원 평창 인터콘티넨탈 호텔 라운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커피 주문을 받아간 호텔 여종업원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을 보고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증후군 때문인 건 알겠지만, 왜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지 참 이상하다"고 말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힐 전 차관보는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측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제재 완화를 요구했던 것과 관련해 “일단 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아이디어였다”고 평가하면서도 검증 문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나라면 우선 영변 지도를 펼치고 건물 하나하나의 목적을 북측에 물었을 것”이라면서 “북측이 충분히 세부사항을 내놓지 않으면 다음날 오전 9시 다시 만나자고 하고, 그다음날도 답이 없으면 다시 다음날 9시에 만나자고 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계속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연합훈련 취소·연기 등 
북 압박에 섣불리 타협 말야야
대북 개별 관광엔 ‘유보적 견해’ 
핵보유 인정, 북 버티기 돕는 것
미 대선 이전 대화 가능성 낮아
 

 

그러면서 북·미 정상이 불과 4~5시간의 협상으로 이 문제의 해결을 시도한 점을 개탄했다. 힐 전 차관보는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에 도착하자마자 떠나고 싶어 할 정도로 주의가 산만한 상태였다”면서 “4~5시간이라고 해야 통역 시간을 빼면 2~3시간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압력과 위협에 타협책을 내놓는 것은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미국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의 핵보유를 잠정적으로 인정하고 일단 북한의 부분적인 비핵화와 주한미군 감축을 교환하는 방식의 핵군축회담을 시작하자는 밴 잭슨 빅토리아대 교수의 아이디어에 대해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못 박았다. 그는 “학자들의 토론 주제로는 흥미롭겠지만 죽느냐, 사느냐의 (비핵화) 문제를 다룰 때는 그다지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자는 아이디어는 북한이 견디기만 하면 미국이 숙이고 올 것이라고 북한에 알려주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다. 

 

힐 전 차관보는 “(북한의 완전한 투항을 강요하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북한의 위협에 굴복하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 사이에 많은 대안(middle ground)이 있다”면서 북한의 핵보유를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근본에 충실한 비핵화 협상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도 서로 잡음을 내려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북·미 협상이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는 “트럼프는 북한이 조용히 있기를 바랄 것”이라면서 “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이미 해결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대통령이 등장할 경우 미국의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는 “오바마 행정부보다는 비핵화 협상에 더 문을 열어놓아야 할 것 같다”면서 “미국과 중국 간에도 한반도 문제에 관한 대화 노력을 강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무부 재임 중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그는 김계관 현 북한 외무성 고문과 베이징과 뉴욕, 제네바 등지에서 40여차례 협상을 했다. 힐은 20만명의 사망자와 수백만명의 난민을 낳았던 보스니아 전쟁을 평화적으로 매듭지은 1995년 데이턴 협상에서 타고난 협상가(negotiator)의 진면목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는 그의 협상 노하우도 통하지 않았다. 한적한 시골에 자리잡은 미국 콜로라도 덴버 대학에서 9년째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 그가 여전히 협상가의 마인드로 한반도를 바라보고 있는 연유인지 모르겠다.

 

 

크리스토퍼 힐 전 차관보가 국무부 동아태국을 떠난 2009년 봄, 한국언론의 워싱턴 특파원단이 버지니아 패어팩스의 한국음식점(우래옥)에서 송별연을 마련해주었다. 그 자리에서 힐과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보여주니 힐은 "아, 그때는 내가 젋었었네~"라고 탄성을 내놓았다. 세월도 사람도 바뀌었지만, 한반도 문제는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있다. 그는  내게 "영화 <Groundhog day>를 본적이 있냐"고 물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Posted by gi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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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ino's 2020.02.12 18: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크리스토퍼 힐 대사와 커피를 한잔 나눴다. 32년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한적한 시골의 대학강단으로 돌아간지 9년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피끓는 협상가(negotiator)였다. 한-미 협의의 중요성을 몇번이나 되풀이 강조한다. 그 말은 그가 보기에 한미 협의가 없거나, 거의 없다는 말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