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째 '날개짓'하고 있는 한국항공스포츠협회 오세훈 회장

백령도 괭이갈매기는 매년 6~7월쯤 서식지를 떠나 북행한다. 여름과 가을, 황해남도 옹진과 평남 증산, 평북 철산 등 해안지역에 머물다가 11월부터 남행한다. 서해안을 따라 전북 군산, 전남 영광·신안·진도·완도에서 겨울 한철을 지낸다. 일부는 제주까지 날아가 둥지를 튼다. 국가철새연구센터가 최근 발표한 괭이갈매기의 한해살이 이동경로다. (경향신문 5월24일 보도)

한반도의 허리를 끊어놓은 군사분계선(MDL)에 서 보면 가장 부러운 게 남북을 오가는 새들이다. 철새만도 못한, 분단국가 거주민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상념이다. 생각만 할 뿐 실행은 언감생심이다. 

오세훈 회장이 2006년 6월 남북왕복비행을 앞두고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구형 ‘평화의 새’로 시험운항을 하고 있다.  한국항공스포츠협회 제공

 

“그래, 내가 남북의 창공을 날아보자!” 오세훈 한국항공스포츠협회 회장(71)은 달랐다. 그가 북한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특별생방송이었다. 무작정 따라 울었다. 경기 평택 태생으로 분단은 남의 일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138일 동안 온 국민을 울린 실향민들의 애틋한 사연들이 그의 가슴에 쌓였다. 통일은 그후 삶의 굵직한 주제가 됐다.

1990년 1월7일 국토통일원(현 통일부)에 남북 비행 허가를 신청했다. 그 얼마 뒤 처음 방북했다. 1994년엔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롱청)에서 몽산포까지 서해를 횡단했고, 1년 뒤엔 광복 50주년 기념일에 서울 여의도에서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의 물과 흙을 갖고 와 합수·합토식을 거행했다. 헬멧과 항공복에 ‘통일’ 두 글자를 명토박았다. 보이지 않는 창공의 분단을 초경량 항공기로 돌파하겠다는 그의 뜻에 남북 당국과 유엔사는 막을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2006년 6·15 공동선언 6주년을 맞아 평양(통일거리)~서울(광화문광장)~평양 비행일정을 천신만고 끝에 확정했건만, 이번엔 하늘이 외면했다. 때아닌 천둥, 번개 탓에 당일 미뤄야 했다. 그렇게 연기된 남북 종단비행은 14년이 지나도록 미망(未忘)으로 남아 있다. 일흔줄에 접어든 그는 아직도 꿈꾸고 있을까. 

지난달 22일과 26일 서울 성북동 북정마을과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그를 두차례 만나 근황을 물었다. 남북 교류·협력을 막은 5·24 조치 10년을 전후한 시점들이었다.

오세훈 회장이 지난 5월 22일 서울 성북동 북정마을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30년 동안 이루지 못한 남북왕복비행의 꿈을 펼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요즘은 매일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난 거였죠. 내가 감당할 정도만 보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만날 것을….” 
젊어 기계체조로 몸을 단련했고, 베트남전에 참전해 상이군인이 됐다. 특수부대에 배속돼 37개월 동안 미군 헬기에서 전쟁터로 숱하게 뛰어내렸다. 조원 12명 중 4명만 살아남았다. 지금도 “한번 창공에 날아 올라가면 내려오기 싫어 하루 너덧시간을 체공한다”는 그는 대체 무엇을 후회하고 있는가.

5·24 조치는 2006년에 첫 삽을 뜨고 4년쯤 뒤 완공을 목표로 대동강변에 짓던 평양항공수상체육학교 건설을 중단시켰다. 완공 뒤 남으로 되가져왔어야 할 중장비도 두고 왔다. 북측 ‘최고 존엄’은 대동강변 대안지역에 학교부지 3만평을 흔쾌히 내주었다. “수상 스포츠를 위해선 대동강도 필요하다”고 하자 대동강 수면 3만평을 떼어주었다. 북측 인사들이 그에게 ‘오 선달’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건 그즈음이다. 2008년쯤 마지막 방문 뒤 가보지 못한 학교부지는 미망의 출발점이다. 학교 건립에 32억원을 투입했다. 완공했더라면 6개반 60명의 학생들을 가르칠 계획이었다. 중장비 반입이 불가능해지면서 적지 않은 보상금을 물어줘야 했다. 정부가 교류·협력비용의 절반을 부담하는 매칭펀드는 남의 일이었다. 

한·중 수교 2주년이던 1994년 6월2일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에서 ‘통일호’를 타고 이륙, 8시간 35분 뒤 서해 몽산포에 착륙한 오세훈 회장. 이날 서해 횡단비행으로 초경량비행기 최장거리(674㎞) 및 최장시간 비행기록 보유자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헬멧에 쓰인 '통일'이 말해주듯, 그가 날고 싶었던 창공은 군사분계선 위, 조국의 하늘이었다.  한국항공스포츠협회 제공

 

“남북 경협 차원에서 북에 투자했던 남측 기업들은 보상이라도 받았죠. 사회문화 교류에 나선 사람들의 피해는 지금까지도 외면받고 있습니다.” 애당초 돈을 벌려고 북에 다가간 건 아니었다. 하지만 북한 최고 지도부의 신뢰를 얻은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사업, 행사 주선을 부탁했다. 부산 해운대 해변에 모래가 부족하다고 해서 황해남도 해주의 군부대 철조망을 들어내고 바닷모래를 실어 오는 일도 알선했다. 남측 바지선은 아직도 해주 앞바다에 묶여 있다. 그는 “작은 손들이 모여 진실되게 진행되던 사업들이 많았다. 나 때문에 투자해서 후회하고 가슴 아파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달라진 건 아직 없다.

‘통일’을 화두로 북에 다가갔지만, 그의 교류사업은 ‘평화’로 주제를 바꿨다. 1997년인가. 북측은 통일을 강조하는 게 께끄름했던 것 같다. 한 북측 인사는 ‘최고 존엄’의 전언이라면서 “통일 대신 평화라는 말을 써줄 것”을 당부했다. ‘평화의 새’라고 새긴 항공복을 새로 만들었다. 

오세훈 회장이 평양의 류경 정주영체육관 실내에서 북한 문재덕 체육상에게 초경량항공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실은 굉장히 비관적입니다. 가짜가 진짜가 되고, 진짜가 가짜가 되는 세월에 너무 지쳤고요. 평생 우리 민족 하나되자고 별의별 일을 다 겪었는데, 학교만 정상 건립되면 아무 미련이 없겠어요….” 그사이 그는 학교 개교 뒤 자체적으로 운영재원을 마련토록 김치공장 설비들을 마련해 놓았다. 하지만 북측은 최근 총련 관계자 등을 통한 접촉 과정에서 유엔 대북제재를 염두에 둔 듯 “교장 선생님, 쇠붙이는 미국이 말리는 것”이라고 전해왔다. 저들도 알고 있는 것일까. 원상회복이 어려움을. 

올해는 처음 방북 신청을 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북측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 개천절을 비행일로 잠정 결정하고, 5월쯤 평양에서 만나자는 제안이었다. 지난해 해외에서 3차례 실무협의를 했지만, 아퀴지어야 할 일은 적지 않다. 북측은 3년 전부터 학교를 강원도 통천으로 옮길 것을 제안해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원산·갈마 해안지구 인근이다. 10월2일 평양 통일거리에서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날고, 이틀 뒤 다시 통일거리로 돌아가는 행사안을 세워놓았다. ‘남’과 ‘북’이 한 비행기를 타려 한다. 북측 인민배우 1명을 동승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탓에 5월 중 방북은 연기됐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도 그대로 넘길 공산이 크다. “이러다가 올해도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닐까….”

지난 5월 22일 서울 성북동 북정마을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양손으로 제스처를 보이는 오 회장. 양 팔이 날개를 연상시킨다.  우철훈 선임기자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22일 남북 교류에 강한 의지를 다시 내보였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우리가 남북 교류와 또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5·24 조치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밝혔다. 5·24 조치 폐지를 추진할 경우 예상되는 불필요한 남남갈등과 그보다 더 촘촘한 유엔 대북제재를 감안해 제도적 현상을 유지하되 “‘장애’를 더 이상 장애로 보지 않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당장 뭘 하겠다는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이 신년사와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강조한바, “이제는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말고 남북 간에 있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은 찾아내서 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재차 확인하는 데 무게가 놓인 다짐으로 읽혔다. 

지난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각계 대표가 모여 ‘남북공동선언 이행과 5·24 조치 즉각 해제’를 촉구했다.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 학술본부와 남북경총통일농사협동조합,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 본부, 평화재향군인회 등 45개 단체가 참가했다.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 이후 대북 응징 차원에서 시작한 5·24 조치는 되레 남측에 상당한 내상을 입혔다. 직접 경제손실은 9조4000억원, 간접 경제손실을 포함하면 약 27조원의 피해(2013년 11월,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현대경제연구원 연구용역 추산)가 발생했다. 북은 더 중국에 다가갔다. 통계청 남북교류협력시스템에 따르면 북·중 교역과 남북교역 간의 비율은 2009년 1.6배에서 2018년 87.8배로 늘어났다. 정부는 일반교역 및 위탁가공과 경제협력, 비상업적 거래 등에 참여한 남측 기업 511곳에 1606억원 규모의 지원을 제공했다.

왼쪽 다리에 가락지 형태의 위치추적발신기를 부착한 괭이갈매기.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각계 대표들은 “문재인 정부는 입으로만 ‘남북합의 이행’ ‘남북 협력’을 말했지 실제로는 한·미동맹, 한·미공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미국과의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왔다”라며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돌렸다. 하지만 북한의 핵·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과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작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미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대북제재의 견고한 유지를 강조한다. 북은 ‘삶은 소대가리’와 ‘겁먹은 개’를 운운하며 남북 간 소통을 차단해왔다.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서 문재인 정부는 과연 북으로 가는 길을 뚫어낼 것인가. ‘경제’ 앞에 놓인 ‘평화’ 문제를 먼저 풀어낼까. 북은 이에 응할 것인가. 그 의문의 끝에 오 회장의 소망이 놓여 있다. 

오 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각계의 공동기자회견문에 동의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의 염원은 이산가족들의 한처럼 제자리를 맴돌다가 소멸될 것인가. 오 회장은 현실에 갑갑해하다가도 비행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였다. 초경량 비행기는 높이 올라갈수록 안정된다. “4000m 이상 올라가면 산소가 부족해져요. 그런데 왜 기를 쓰고 올라갈까요. 그정도 올라가야만 제트기류가 비행기를 뒤에서 밀어주기 때문이죠.” 개천절 비행에 나설 신형 레보 비행기(912ULS·중량 250㎏)를 새로 장만해두었다. ‘평화의 새’는 올해, 충분히 높이 날아오를 것인가. 

Posted by gi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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