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저 멀리, 높이 있는 게 아닙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의 리더이자 자기 삶의 최고경영자(CEO)이죠. 내 삶의 리더십이 올바르지 않으면 성공한 삶을 살기 어렵죠.”
1991년 창설멤버로 들어간 통일연구원에서 꼬박 20년 동안 ‘북한 전문가’로 밥을 벌었다. ‘인생 1막’을 마치고 은퇴한 지 9년. 지난 17일 서울 정동길에서 만난 서재진 전 통일연구원장(66)은 ‘리더십 코치’라는 생뚱맞은 명함을 들고 있었다. 그는 어떤 변이 과정을 거쳤을까.
현역 시절 내놓은 북한 관련 전문서적만 20권. 퇴직 후 거기에 한 권을 더 보태느니 리더십 분야의 책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최근 그가 내놓은 책 <아들러 리더십 코칭>에는 표지부터 몇 개의 전문용어가 쓰여 있다. 부제는 ‘성숙한 리더를 위한 뇌과학과 심리학의 지혜’이다. 학자와의 인터뷰는 자칫 인터뷰이의 말에 빨려 들어가기 십상이다. 논리적으로 조근조근 설명하는 것을 수동적으로 듣다가 보면 인터뷰가 아닌,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대화를 뒤집어야 한다.
그런데 리더를 위한 코칭이면 보통사람과 상관이 없는 게 아닐까. “군자는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게 아니라,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그가 인용한 한비자의 말을 비틀어 ‘군자는커녕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리더도 아닌 사람들에겐 코칭이 어떤 의미인가’라며 딴지를 걸었다. ‘북한 사회를 평생 연구해온 전문가가 뜬금없이 심리학은 또 뭔가’라고도 반문했다. 그는 "연구원의 리더가 된 12년 전 처음 '리더는 단순한 보직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연구 주제의 전이 과정을 설명했다. “리더들의 삶이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건 공감, 경청, 질문, 피드백(좋은 말로 비평하기)의 4가지 핵심기술이 인간관계를 규정한다”면서 예의 학문적 설명으로 돌아갔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배운 핵심은 인본주의였다.” 상대방의 감정과 욕구, 의견을 공감, 청취하고 질문을 던지며 그 답변에 피드백을 주는 게 인간사의 기본이라는 설명이다. “코칭을 공부하고, 타인을 코칭하면서 얻은 개인적인 기쁨은 아내는 물론 자식들과 며느리와의 관계까지 좋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인생 2막의 주제로 주저 없이 ‘코칭’을 선택한 연유다. 학자식 대화를 흔들겠다는 결기는 사적인 경험담에 무너지고 말았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 열등감과 결핍감을 ‘초기 기억’으로 갖게 되며, 이를 극복하거나 메우기 위해 자기만의 ‘사적 논리’를 개발한다. 타인을 비난하고 짓밟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인생의 전반기는 일과 직장·결혼·공동체 생활이라는 3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정신없이 내달리는 기간이다. 사적 논리가 인생의 답인 줄 착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주변으로부터 “저 사람, 능력은 있는데 자기밖에 모른다. 인간적이지 않다”는 평을 듣고 주춤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 필요한 것이 심리코칭이다.
“사적 논리의 근원이 된 열등감, 결핍감을 일깨워주는 게 코칭의 첫 단계다. 그다음 단계는 왜곡된 사적 논리의 ‘유심칩’을 공동감각으로 교체해주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사적 논리라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 전반기를 보낸다면, 인생 2막은 그 감옥에서 나와 공동체 감정으로 나아가는 것을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
한국 50대 재벌의 성장 과정, 신화가 된 김일성의 만주 항일투쟁, 주체사상의 이반, 북한 사회의 계급 갈등…. 그가 작별한 연구주제들이다. 북한 학계의 논의 내용과 구조는 그가 떠난 뒤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한발 떨어져 바라보는 북한 전문가 집단을 총평해달라’는 질문을 던지자 선문답이 됐다.
“코치는 함부로 남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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