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의 마지막 순간

명색이 국제전문기자이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현장이 너무 많다. 현장의 공기를 마시지 못하고 쓰는 글은 생명력이 없다. 지극히 사적인 여행일지언정 한번이라도 밟았던 땅의 이야기에는 숨결이 들어간다. 대안은 ‘서울로 찾아온 현장’을 만나는 것. 남산 자락의 어느 호텔이었던가. 내외신 기자회견을 자청한 40대 이스라엘 총리를 만난 건 1997년 8월 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70세를 넘어 권좌에 더 있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두는 노회한 정치인이 될지는 몰랐다. 방한 한 달 전 예루살렘에서 폭탄테러가 발생, 그 수습에 경황이 없었을 그는 외교 일정을 늦추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분노의 돌멩이와 이스라엘 병사들의 총탄이 오가는, 지극히 비대칭적인 대치 속에서 막 빠져나온 그는 생뚱맞게 세일즈맨을 자처했다. 베냐민 네타냐후(71, 별명 비비).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이 총리 관저 인근에서 열린 '반 네타냐후' 시위에 정의의 여신 복장으로 참가한 한 여성이 6월12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포스터 앞에서 저울모형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은 한국이 확보하려는 모든 분야의 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구매하고 싶은 첨단 기술의 쇼핑리스트를 받아가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세계가 1980년대 한국 하면 격렬한 시위현장만 떠올렸던 것처럼, 이스라엘 하면 분쟁부터 연상됐던 상식이 깨진 순간이었다. 그가 후일 ‘Mr. 시큐리티(안보)’로 불리며 아랍국가들과 이란의 위협을 확성기로 떠들기 전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국민총생산(GNP)이 지금은 아랍권 22개국 GNP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10년 내 그 70%가 될 것”이라며 아랍권과의 관계를 숫자로 치환했다.

회견에서 그가 한반도와 관련해 내놓았던 또 다른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북한 미사일 문제였다. 중동의 화약냄새가 한반도와 결코 무관치 않음을 새삼 깨우치는 계기였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3월4일 이스라엘 남부의 한 군 장교 훈련소를 방문, M16소총으로 조준 자세를 취해보이고 있다. 그는 이날 수행기자단에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 신규 건설을 강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자료사진 연합뉴스

 

일요일인 내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71)의 운명이 갈린다. 크네세트(의회)에서 지난 3월 총선 결과로 구성된 제36대 연립정부에 대한 신임 표결이 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이데올로기와 민족적 구성, 정치적 지향점을 가진 8개 정당이 구성한 ‘무지개 내각’에 네타냐후의 리쿠드당(단합-민족해방운동)은 없다. 

현직을 벗자마자 그를 기다리는 것은 수사와 단죄다. 그가 직접 책임자를 임명한 이스라엘 사법당국은 이미 2019년 뇌물수수와 불법거래를 비롯한 3가지 부패 혐의로 기소 방침을 공표한 바 있다. 표결 결과에 따라 햇수로 15년 총리직에 머문 그의 시대가 끝난다. 물론 오뚝이 같은 그의 이력으로 보아 크네세트 신임투표가 끝나기 전까지 단언할 수는 없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과 미국을 오가면서 성장기를 보냈다. 텔아비브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뼈가 굵고 필라델피아에서 귀향한 것은 18세 때였던 1967년이다. 5년 동안 군복무를 하면서 두 번의 중동전에 참전했다. 특전사 대위로 제대한 그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MIT공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졸업 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취업했다. 1978년 다시 모국에 돌아간 까닭은 ‘반테러 연구원’을 설립하기 위해서였다. ‘Mr. 안보’의 경력은 공직으로 가는 티켓이었다. 1984년 미국에 건너갔지만 이번엔 이스라엘의 유엔 대표부 대표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4년을 뉴욕에서 보냈다. 1993년 현재의 리쿠드당 의장으로 선출된 지 3년 만에 총선에서 승리, 최연소 총리(47세)가 됐다. 독립 뒤 이스라엘 태생의 첫 총리이기도 했다.

마스크를 쓴 네타냐후 총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지난 6월6일 예루살렘에서 코로나19 방역에 힘쓴 보건의료 종사자들을 위한 축하 모임에서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네타냐후는 1999년 총선에서 참패하자 미련 없이 정치판을 떠났다. 통신장비 업체 자문역으로 2년 동안 봉급을 받았다. 비즈니스와 정치는 밥벌이의 양대 축이었다. 종종 그 두 가지가 섞였다. 1997년 부패 혐의로 고발됐고, 1999년에는 다른 뇌물수수 혐의를 받았지만 기소를 모면했다. 2002년 아리엘 샤론 정부의 외교부 장관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2009년과 2013년, 2015년 총선에서 연립정부 구성에 성공, 총리직을 유지했다. 리쿠드당의 30% 안팎 득표율에도 네타냐후가 총리 자리를 지켜온 비결은 두 가지다. 탁월한 정치력과 유대교 원리주의 소수정파들과의 연합으로 가능했다. 2000년 3월 총선에선 중도 청백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면서 총리직을 올해 11월까지만 하는 조건으로 살아남았다. 이번 총선은 그 연정이 깨지면서 최근 2년 새 4번째 치러진 선거다.

네타냐후가 퇴임에 몰리게 된 것은 국정운영을 잘못해서가 아니다. 우파 리쿠드당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야미나당에서부터 중도좌파 노동당 및 팔레스타인 정당까지 아우른 연합정부는 ‘반네타냐후 거국내각’이다. 정치적, 사회적, 인종적 컨센서스는 없다. 국내외 언론이 지적하듯 각기 다른 이유로 네타냐후가 싫어서 뭉친 이종(異種)결합 정부다. 

네타냐후 총리의 운명이 걸린 새 연정 신임투표 이틀 전인 지난 6월12일 예루살렘 시내에서 열린 반 네타냐후 시위에 참석한 한 여성이 무언가를 외치면서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네타냐후 집권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으로 주변의 아랍권은 물론 이란을 포함한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넘보기 힘든 지역강국으로 굴기했다. 지난 세기말 40대 총리가 꿈꿨을 부강한 ‘유대인의 나라(Jewish State)’가 됐다.

미국 국제문제 전문가 파리드 자카리아가 인용한 텔아비브 바르일란대학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추산치 4만336달러의 이스라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이집트의 14배, 이란의 6배, 사우디아라비아의 2배에 가깝다. 인공지능과 컴퓨터디자인, 항공, 생물공학을 비롯해 고도로 정밀한 정보화 시대 경제를 갖췄다. GDP의 5%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며 18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다.

인구 935만명의 이스라엘 국방예산은 네타냐후가 최대 위협으로 꼽는 이란(8300만명)의 국방예산을 능가한다. 핵탄두 100개(추정치)의 핵무력을 제외하고도 질적, 양적으로 압도적인 무력을 갖췄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발사하는 로켓은 아이언돔에 막혀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은 지 오래다. 이스라엘에 대한 경제제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교역과 과학기술에서 모두 강하고, 다변화됐으며, 첨단 기술을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외교적으로 견제해온 러시아와 인도 같은 나라들이 경제협력 강화를 구애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바레인이 최근 이스라엘과 관계정상화를 선택한 것 역시 상당 부분 경제적 동기에서였다.

네타냐후 총리가 1998년 10월22일 빌 클린턴 행정부가 미국 메릴랜드주 와이강에서 연 중동평화회담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악수를 하고 있다. 비비는 이날 와이정상회담 합의를 준수할 뜻을 밝혔지만, 2018년 이스라엘이 '유대인 국가'임을 천명하는 '유대민족국가법'을 통과시켰다.  RTW/MR/HB/SB자료사진연합뉴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4년 동안 네타냐후는 오랜 숙원을 몇 가지 풀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또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미국의 공인을 받았다. 내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별다른 항의조차 못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역시 트럼프가 이스라엘에 건넨 ‘선물’을 환수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뒤 예루살렘에 대한 트럼프의 결정을 계승하겠다고 천명했고, 골란고원도 사실상 승인했다. 동예루살렘에 미국의 ‘팔레스타인 영사관’을 다시 연다는 조건이었다. 골란고원 문제는 “아사드 정권이 집권하는 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는 애매한 입장을 내놓았을 뿐이다. 다만, 바이든은 트럼프의 정책만 승계한 게 아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기조 역시 버리지 않고 있다. 최소한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유대인 정착촌 건설은 주춤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네타냐후의 팔레스타인 정책이 충분치 않았다는 이유로 지지를 철회했다. 그중에는 새 연립내각 나프탈리 베네트 전반기 총리 내정자(49)의 야미나당 지지자들도 포함된다.

작전명 오차드(과수원). 이스라엘 공군기가 2007년 9월6일 공습으로 파괴한 시리아의 원전시설의 폭격전과 폭격후 모습. 이스라엘과 미국은 공습 뒤 건물 안에 북한 기술이 활용된 원자로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후 2008년 2월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출범을 며칠 앞둔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 내정자들에게 관련 동영상을 제공했다. 미국 정부가 공개한 사진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네타냐후의 운명을 속단하기 어려운 것은 야미나당 소속 의원들의 결정에 따라 반네타냐후 연합정부 구성이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8개 정당이 확보한 의원은 크네세트 정원 120명의 정확한 과반수(61명)이다. 단 1명의 의원만 돌아서도 연정은 깨진다. 네타냐후는 “선거 사기”를 주장하며 새 정부를 테러 지지자들이 뒷받침하는 ‘위험한 좌익정부’라고 매도하고 있다. 이란 핵위협을 새삼 부각시키며 집권기간 내내 동원했던 ‘공포의 정치’를 다시 가동하고 있다. 그의 지지자들은 의원들에 대한 개인적 보복을 위협하고 있다. 

각국 언론은 네타냐후의 선거불복 및 공포정치가 지난 1월 연방의사당 폭동을 사실상 유도했던 트럼프와 닮은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순서가 뒤바뀌었다. 트럼프 이전에, 또 트럼프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포퓰리즘의 실험실’(모로코 태생의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극우파와 마찬가지로 종교와 인종을 시민정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이스라엘의 정치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유의미한 변화의 맹아는 총선에서 4명의 의석을 확보한 팔레스타인 정당(라암)의 사상 첫 연정 참여다. 팔레스타인 시민권 정립의 기나긴 여정의 출발점일 수 있어서다. 

1997년 8월 27일 김영삼 대통령(오른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청와대 국빈만찬에서 양국 간 우의증진을 다짐하며 건배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4년 전 총리 자격으로 처음 방한했던 네타냐후는 “북한 미사일은 한국과 이스라엘 양국에 직접적 위협을 가한다”면서 “양국이 공동 대처해야 할 사안”이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필요시 단독행동을 주저하지 않았다. 2004년 북한 평안북도 룡천군 룡천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사고로 시리아와 북한의 핵·미사일 커넥션 의혹이 생겼다. 열차에 타고 있던 시리아 핵과학자 12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이후 북한발 시리아행 화물수송선을 집요하게 감시한 끝에 2007년 9월6일 시리아의 알 키바르 원자로 건설단지를 기어코 폭격했다.(고든 토마스 <기드온의 스파이들)>

북한·시리아 및 북한·이란 커넥션은 미국 의회 대북 강경파가 북핵 6자회동에 제동을 걸어온 빌미였다. 멀리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임기 말 평양 방문 계획을 급거 변경했던 것 역시 이스라엘이 결정적 변수였다.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 선언에 이어 한국이 포함된 인도·태평양을 아시아 전략의 골간으로 삼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스라엘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 두고 볼 일이다.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이 변화의 기로에 선 지금, 새삼 한반도가 겹쳐 보이는 까닭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6월6일 보건의료 종사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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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kfg 2021.06.14 1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77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건국 이후 처음을 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이 정권을 내놓았다. 이전과 이후 확연하게 달라진 전환점이었다. 당시의 승자는 메나햄 베긴 총리가 중도우파 세력을 모아 창당한 리쿠드당이었다. 하지만 '베긴의 당'은 '네타냐후의 당'으로 넘어오면서 극우 유대민족주의와 결탁해 중동평화의 진전을 막아왔다.
    20세기 말에 3년, 21세기에 12년, 도합 15년 동안 총리직에 머물렀던 베나민 네타냐후가 지난 13일 마침내 권좌에서 내려왔다. 흥미로운 것은 유대인 우파 입장에서 그는 성공한 지도자였다. 부강한 국가를 만들었으며 국내외 적으로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했다. 올해 총선에서 '반 네타냐후' 전선이 형성된 것은 '능력'와 '업적' 만으론 곤란하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 5명의 1명인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내침으로써 권좌를 유지해왔다.
    그가 남긴 혼란의 씨앗으로 중동이 흔들리면 그 화약냄새가 한반도까지 날아든다. 수많은 포인트를 지닌 중동문제를 네타냐후의 빛과 그림자와 한반도와의 관련성을 떼어내 정리해보았다.
    네타냐후의 운명이 갈린 크네세트 선거 며칠전에 작성한 글이다. facebook intro

  2. dkfg 2021.06.21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his Is Still Benjamin Netanyahu’s Israel
    June 20, 2021, 11:00 a.m. ET By Anshel Pfeffer

    Mr. Pfeffer is a senior writer at Ha’aretz and the Israel correspondent for The Economist. He is the author of “Bibi: The Turbulent Life and Times of Benjamin Netanyahu.”
    The days after Israel’s longest-serving prime minister was finally forced out of office have been anticlimactic.

    Naftali Bennett has been sworn in as prime minister, ending the 12-year rule of his predecessor, Benjamin Netanyahu, but this is still very much Mr. Netanyahu’s Israel. Even physically, Mr. Netanyahu is still living in the prime minister’s official residence on Balfour Street in Jerusalem. The day after his premiership ended, he was still receiving guests from abroad, including the former U.S. ambassador to the United Nations Nikki Haley and the televangelist John Hagee.

    Mr. Netanyahu’s political camp of far-right and ultrareligious parties may be in the opposition now, but they’re still his coalition, rallying around his promise to topple “this evil and dangerous leftist government,” and to do so much sooner than anyone expects.

    Meanwhile, there is the intractable conflict with the Palestinians and the same divisions within Israeli society. For the new government to have any realistic chance of survival, it can’t completely dismantle Mr. Netanyahu’s legacy, lest it unravel its fragile coalition. The clock cannot be turned back on the 12 years of his long rule. And though Mr. Bennett and his colleagues will not admit so openly, in some aspects they don’t want it to be.

    Three of the eight party leaders of the new coalition, including Mr. Bennett, are, if anything, even more nationalist than Mr. Netanyahu, and they ideologically oppose any territorial compromise with the Palestinians. The leaders of the five other parties that, in principle, favor various forms of “separation” or a two-state solution are content to put any such notions on hold for the time being. Any attempt in that direction will rip the new government apart and open the door to Mr. Netanyahu’s return.

    Mr. Netanyahu proved that Israel does not need to make any meaningful concessions to the Palestinians and can abandon any semblance of making progress in a nonexistent “diplomatic process” with them and still prosper. The so-called Palestinian problem, once such a cause célèbre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has been relegated to the bottom of the global diplomatic agenda. The eyes of the world may have been on Gaza last month during the 11 days of warfare, but once a cease-fire was reached, they were soon averted. After 12 years of Mr. Netanyahu, there is no real pressure on Israel to end the blockade of Gaza or the military occupation of the West Bank.

    For some supporters of Mr. Netanyahu’s ouster, the idea that this government will remain stable by maintaining Mr. Netanyahu’s legacy of a never-ending occupation and inequality for millions of Palestinians will be unbearable. For another segment of society that championed this change, the dismantling of other Netanyahu legacies is progress enough. For both, the only answer is to begin healing divisions and strengthening democratic institutions.

    That the new government was sworn in on June 13 on the back of a 60-59 confidence vote is testament to just how divided Mr. Netanyahu’s Israel is. It was these divisions between Jews and Arabs, religious and secular, Ashkenazim and Mizrahim, that Mr. Netanyahu long exploited to win elections and build coalitions of resentment. He branded all his political rivals, even those to his right, with the dreaded label of “left-wing.” Now, in defeat, Mr. Netanyahu and his remaining allies are trying to portray the new government, headed by a religious nationalist prime minister, as a bunch of Judaism-hating, secular Ashkenazi elitists, a “leftist government.”

    In fact, the new government is the most diverse coalition Israel has ever known, ranging from the nationalist right to the Zionist left, along with a conservative Islamist party, a first in any Israeli government. As such, it has an opportunity to go some way toward reversing Mr. Netanyahu’s toxic endowment, just by proving to Israeli citizens that its members can work together for a decent length of time. A notable number of women and non-Jewish ministers are also in this government. It is, of course, no more Ashkenazi or secular in its makeup than Mr. Netanyahu’s previous governments were.

    Simply having a cabinet that can work together collegially, each member taking care of his own ministry’s policies and basic functions, will make a huge impression on Israelis who have been used to their politics being dominated by the battle for survival of just one man. But for the new government to survive, each of its disparate elements will have to be invested in the success of the rest. In other words, the nationalist leaders of the government will now have to rethink their rhetoric and detoxify their tone about the left. They must convince their supporters that everyone benefits from partnership and equality with Israel’s Arab citizens. If they do so, they will begin the long process of reversing decades of Mr. Netanyahu’s work. It won’t be easy.

    A government made up of small parties — none of which can dominate but all of which can bring the government down — will also be much more reliant for stability on the Knesset overall and on the judiciary, both of which Mr. Netanyahu tried to weaken and marginalize.

    But the very precarity of the government means the ongoing conflict with the Palestinians will be sidelined by necessity. A lack of meaningful progress on peace may likely be Mr. Netanyahu’s most lasting legacy. Even the historic inclusion of Raam, a party representing Arab Israeli citizens, in the coalition will not contribute to solving the Palestinian conflict. The agreement specifically bypasses any nationalistic or identity issues and focuses wholly on material concerns of the Arab Israeli community.

    The Netanyahu era is not yet over, though it may be in its twilight. Don’t expect this government to start tackling the core questions of Israel’s future. It has a hard enough task as it is.

    Anshel Pfeffer is a senior writer at Ha’aretz and the Israel correspondent for The Economist. He is the author of “Bibi: The Turbulent Life and Times of Benjamin Netanyah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