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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철조망에 갇힌 학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8. 30.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미국 캘리포니아주 툴레 레이크 1만8789명, 애리조나주 포스턴 1만7814명, 콜로라도주 그라나다 7318명…. 미 워싱턴의 연방의회 의사당 북서쪽 루이지애나 거리에는 철조망에 갇힌 학의 조형물이 서 있다. 전쟁 중 하와이와 미 서해안에 거주하던 일본인 12만명을 10개의 수용소로 강제 이주시킨 데 대한 반성의 뜻이 담겨 있다. 미 육군 442연대에 자진입대한 일본인들을 기리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어 공식 명칭은 ‘2차 세계대전 일본계 미국인의 애국 기념물’이다. 의사당 앞에서 거행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에 이 기념물이 눈에 들어온 것은 비단 이 날이 한국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8월29일’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자민당의 54년 집권이 끝나는 총선이 진행되던 날이기도 했다.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반대급부를 가장 많이 챙긴 정당을 꼽으라면 단연 일본 자민당이 아닌가 싶다. 냉전의 소산이었으며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복수의 평화가 아닌, 정의의 평화”를 운운했던 요시다 시게루의 자유당과 하토야마 이치로의 일본민주당이 자민당을 만든 것은 4년 뒤다. 당시 일본 내 영향력이 적지 않았던 좌익에 맞서기 위해 합친 보수우익 연합은 미국이라는 새로운 ‘쇼군(將軍)’의 울타리 안에서 경제발전을 도모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이 같은 해 조인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50~60년대 수백만달러를 풀어 자민당의 선거자금을 댔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이 전후 미·일관계의 외형적 틀을 제공했다면 ‘애국 기념물’은 두 나라 관계를 질적으로 한 단계 올렸다. 일본인들은 442연대의 혁혁한 전과를 내세우면서 88년 미 의회로부터 과거사에 대한 공식사과와 16억달러의 보상금을 받아냈다. 이에 만족치 않고 미 의회를 움직여 의사당 코앞에 940평 넓이의 근사한 기념시설을 만들고, 다시 ‘연방조형물’로 격상시킨 데 일본인들의 집요함이 엿보인다. ‘여기, 우리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반성과, ‘이 교훈으로 다시는 그 어떤 (인종)그룹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442연대 대위 출신 연방 상원의원 대니얼 이노우에의 다짐이 새겨져 있다.

일본인들은 아시아에서 자행한 그 많은 만행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과거사를 깔끔하게 정리했을 뿐 아니라 냉전의 소산이었던 자민당의 시대를 다시 정리하고 있다. 한국은 ‘미래를 위해서’라며 일본의 과거를 추궁하지 않은 채묻어버리고 있다. 해방 공간에서 미국에 기대 기득권을 유지한 친일세력은 대를 이어 태평을 구가하고 있다.

할아버지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로부터 ‘우애’를 좌우명으로 물려받았다는 하토야마 유키오가 자신이 약속한 ‘변화’를 한·일 과거사 정리에 구현한다면 더없이 반길 일이다. 하지만 일본 스스로 도쿄의 의사당 앞에 ‘여기, 우리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기념물을 세울 날은 요원한 것 같다. 미국에서 바라본 경술국치 99주년은 그래서 더 무겁게 느껴진다. 우리는 왜 충분히 집요하지 못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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