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참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5년 임기의 중간을 넘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그간 활동을 되짚어보면서 든 생각이다. 그가 미국 언론의 잇단 날선 비판을 받고 있다. 포린폴리시가 지난달 말 “아무곳에도 없는 사람(Nowhere Man)”이라고 혹평하더니,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14일자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Invisible Man)”이라고 했다.
지도자다운 카리스마가 없다는 게 비판의 주 내용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다지만 그렇다고 ‘연기’만 바라볼 수는 없지 않나 싶다. 미국 언론이 사무총장을 흔든 게 처음은 아니되, 그때마다 기준이 달라져서다.
보스니아 내전과 르완다의 인종청소 등에서 미국의 소극적 역할을 못마땅해 했던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전 총장은 세계의 지지를 받았지만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재선에 실패했다. ‘국제외교의 록스타’로 불렸던 코피 아난 전 총장은 되레 카리스마가 강한 게 문제가 됐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공개비난하면서 미운털이 박혔다. 반 총장 역시 지난 3월 미 의회지도부와의 비공개 면담에서 미국을 ‘빚을 떼어먹는 사람(deadbeat)’으로 표현한 게 알려지면서 곤욕을 치렀다. 미국이 연체하고 있는 유엔 분담금 8억달러의 납부를 독촉하는 과정에 나온 말이다.
물론 반 총장이 반미로 분류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친미 역시 곤란하다. 사무총장을 오죽하면 ‘가장 불가능한 직업’이라고 했겠나. 강대국을 좇으면 개도국이, 반대의 경우엔 강대국이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유럽·아프리카·중동·아시아 등 지역별 이해의 충돌은 물론 수십, 수백개의 글로벌 이슈마다 192개 회원국들의 입장이 다르다. 어느 한 쪽도 100% 만족시킬 수 없는 자리다. 아난에게는 그나마 어떤 상황에서도 지지를 거두지 않은 아프리카 53개 회원국이라는 튼실한 디딤돌이라도 있었다. 반 총장이 딛고선 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응집력이 약하다. 중국·일본·인도 등 지역 맹주들의 이해가 다른 데다 동아시아와 서남아시아가 다른 세계다.
다행히 유엔 사무총장의 업적을 평가하는 것은 미국도, 미국언론도 아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NBC방송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 응답자 81%가 반 총장에 대해 아무런 의견이 없거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월드퍼블릭오피니언이 20개국 국민을 상대로 한 세계 지도자 신뢰도 조사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61%)에 이어 2위(40%)를 차지했다.
반 총장은 최근 여러차례 인터뷰에서 스스로 ‘보이지 않는 사람’임을 시인하면서 앞으로도 솔선수범하는 아시아적 가치를 고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과로 말하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소극적으로 비치는 스타일이 유엔 사무총장의 유일한 힘인 도덕적 권위마저 무디게 하면 안된다는 지적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나온 길보다는 갈 길이 멀다. 흔히 유엔 사무총장(Secretary General)을 말할 때 직함을 풀어 행정가(Secretary)이자 지도자(General)라고 한다. 그가 좀더 ‘지도자’ 쪽으로 중심이동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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