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은 美·中이 추는 탱고/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냉전의 한복판에서 중국을 국제사회로 이끌어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다시 무대로 돌아오고 있다. 최근 ‘북한 고삐죄기’라는 워싱턴포스트 칼럼을 통해서다. 이번에도 그의 화두는 중국이다.
미국은 한반도에 위기가 발생하면 습관처럼 중국을 바라본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1차 핵실험 뒤 중국의 등을 떠밀어 회담 테이블을 마련한 데 만족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섰다는 게 수십년 동안 거대한 체스판의 수를 읽어온 키신저의 인식이다. 키신저의 분석대로 중국에 북핵은 여전히 협상 자체가 아닌, 협상의 결과에 대한 우려로 남아 있다. 북핵 문제가 핵포기 및 북·미 관계정상화의 종래 구도대로 해피엔딩이 되었어도 중국으로선 기뻐할 이유가 적었다. 대북 지렛대를 사실상 독점하다가 북한이 미국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도발은 북한이 했지만 결과는 아무도 예측 못하는 상황으로 간다. 일종의 도미노다. 북한의 2차 핵실험으로 도래한 ‘다자 핵보유국 시대’는 미국이나 중국 모두 처음 맞는 상황이다. 미국은 전 세계 억지전략을 새로 구상해야 한다. 당연히 북한뿐 아니라 중국을 겨냥할 미사일방어(MD)의 강화가 예상된다. 이는 곧바로 공인 핵보유 5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핵군비를 확장하고 있는 중국의 안보에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키신저는 무작정 중국의 호의를 구걸할 게 아니라 미·중의 이해를 연결할 것을 제안했다.
팔순의 키신저는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진화에 대한 개념이 절박하게 요구된다”고 호통을 쳤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그 해답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주는 듯하다. 그는 최근 홈페이지 글을 통해 자신의 재임 중 고개를 들던 미·중·일의 삼각구도가 살아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중국, 일본과 아시아 문제의 전체 틀을 협의하고,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한·미·일은 그 하부구조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미국은 근세사에서 취했던 대 아시아 정책 중 한국인들의 가슴에 맺힌 사건들을 재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게 송 전 장관의 독법이다.
한·미 두 전직 외교 수장들의 충고는 북핵문제가 이미 우리의 손아귀에서 멀어져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북한은 비핵화 약속을 버림으로써 한때 ‘문제의 근원이자 해결의 파트너’였던 지위를 함께 버렸다. 이제는 해결 대상일 뿐이다. 지난 정권 시절 북·미 사이에 끼어들려 노력했던 한국은 실종됐다.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미 정상회담은 그 사실을 확인한 계기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한·미 동맹의 틈은 없어졌다. 대통령에서 주무 장관까지 미국 측 파트너와 말이 똑같았다. 문제 해결의 한 축이었던 한국 역시 사라졌다. 한·미가 한몸이 되어 미국으로 거듭난 셈이다. 이 대통령이 제안한 5자회담의 실현가능성은 적어보인다. 하지만 ‘5자구도’는 분명히 완성된 것 같다. 한국이 빠진 5자구도로. 키신저는 미·중의 연결을 말했다. 송 전 장관의 비유를 빌리자면, 북핵은 이제 미국과 중국이 추는 ‘탱고’가 됐다. 파트너 없이 홀로 무도회장에 서 있는 것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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