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해협 인근 해상과 공중에서 미·중 양국군의 충돌 위기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양측 모두 상대방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만, 양국 군 당국 간 대화가 중단된 가운데 군사적 충돌 위기의 발생 횟수가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중은 군사적 긴장을 줄이기는커녕 방치하고 있다.
지난 3일 미국과 중국 구축함이 위험한 항행을 한 곳은 대만해협의 국제해역이었다.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는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정훈함이 캐나다 해군 호위함 HMCS몬트리올과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동안 인민해방군 이지스 구축함 루양III이 정훈함 부근에서 두 번이나 '안전하지 않은 기동'을 했다고 밝혔다. 사령부는 중국 군함이 150야드(137.16m)까지 접근했다가 선수를 돌렸다면서 이는 공해에서의 안전 항행에 관한 해상충돌예방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중국 측의 주장은 달랐다.
인민해방군 동부전역 사령부는 대만해협에서 도발적인 기동을 하는 미국과 캐나다 군함을 감시하던 중 미 구축함이 항로를 변경하도록 압박했다고 밝혔다. 동부전구 시이 대변인은 관영 글로벌 타임스에 인민해방군 해군과 공군이 합동으로 미·캐 군함의 운항궤적을 계속 지켜보다가 법과 규정에 따라 상황을 정리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동영상에 따르면 루양III은 정훈함의 좌현과 우현에서 각각 한 차례씩 항로를 가로질러 항로를 변경케 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말 미·중 공군기가 충돌 위기를 겪은 뒤에 다시 발생한 것이다. 인민해방군 공군 J-16 전투기가 지난 26일 남중국해 국제 공역에서 미 RC-135 정찰기의 운항을 가로막았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 3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안보 대화 연설에서 "중국은 국제 공역에서 합법적으로 비행하는 미국과 동맹국 항공기를 가로막는 위험한 행위를 자주 벌이고 있다"라면서 "우리가 분쟁이나 대치를 추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협박과 위협에 움츠리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 부근에서 군사 활동을 계속할 것을 다짐했다.
익명의 중국 군사전문가는 그러나 글로벌 타임스에 미 공군 정찰기가 항행 중이던 중국 항공모함 산둥함을 상대로 첩보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두 번의 사건은 모두 중국 문 앞의 민감한 지역에서 자행된 미국의 도발이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리샹푸 중국 국방 장관은 오스틴 장관의 경고에 대해 4일 샹그릴라 대화 연설에서 "(외부) 군함과 항공기가 중국 영해나 영공에 근접하지 않는 게 충돌을 예방할 최고의 방법"이라고 되받았다.
미·중 해군함정의 충돌 위험이 커진 것은 미 해군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FON)' 작전을 시작한 2015년 이후다. 2018년 9월에는 중국 구축함 란저우가 미국 구축함 디케이터 앞 40m까지 접근하는 위협 기동을 했었다. 치킨 게임처럼 서로 항로를 고집하다가 디케이터함이 선수를 돌리면서 종료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뒤에는 대만해협으로 FON 작전이 확대됐다. 그만큼 충돌 위험이 더 커진 것이다. 리 장관은 "그들(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구실로 항행의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노래 가사를 인용해 "친구가 찾아오면 좋은 술을 꺼내지만, 자칼과 늑대가 찾아오면 엽총을 꺼낸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캐나다 전함이 벌이던 작전명 '노블 울버린(Noble Wolverine)'을 빗댄 비유였다. 울버린은 작은 곰처럼 생긴 야생동물이다.
올해 샹그릴라 대화는 리샹푸가 지난 3월 취임한 뒤 처음 참석하는 자리로 당초 미·중 국방장관 간 유화적인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 측은 그러나 오스틴 장관이 오해와 오인에 의한 충돌을 막자면서 제안한 대화를 거절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중국의 러시아 전투기 구매를 빌미로 대러 제재를 위반했다면서 당시 중공당 중앙군사위 장비발전부장이던 리 장관에게 부과한 제재를 풀지 않고 있다. 중국은 "대화의 기본은 상호 존중"이라면서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제재 문제와 상관없이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양측 모두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채 앞으로도 계속 군사적으로 대치하겠다는 의지를 샹그릴라 대화에서 새삼 내보인 셈이다.
미·중 전함과 항공기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충돌 직전의 위기를 연출하는 모습은 앞으로도 계속 나오게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달리 말하면 미·중 모두에 우발적인 충돌의 위험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필요한 셈이다. 미국은 2027년 중국의 대만 침공을 기정사실로 두고 일본과 필리핀 등 동아시아 동맹국들과 연합훈련을 하고 있고, 중국은 외세의 대만 개입을 반대하며 역시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 싱크탱크 저먼마셜펀드의 보니 글레이저 인도·태평양 프로그램 국장은 뉴욕 타임스에 "중국은 특히 미국이 대만에 군사적 지원을 확대하는 것에 분개하고 있기에 군사당국 간 대화의 재개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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