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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청년들의 CPE투쟁(3부작)

세계 읽기/인사이드 월드

by gino's 2012. 2. 2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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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청년들 투쟁] 언제든 잘리는 ‘파리목숨’ 국민적 저항

1968년 학생혁명의 본거지였던 프랑스 소르본대학이 다시 화염에 휩싸였다. 프랑스 청년·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고등학생과 거대 노동조합, 좌파정당들은 물론 학부모들까지 동참하고 있다. 내달 1일 발효되는 ‘기회균등법’의 내용 중 26세 미만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고용을 늘리되 첫 2년 동안 해고를 자유화한 ‘최초고용계약(CPE)’ 조항을 무효화하기 위해서다. 전국 총파업·동맹휴학이 예고되어 있는 28일 다시 프랑스는 격동할 것이다. 이 사태는 얼핏 실업문제에 국한된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지난 10여년간 확산되어왔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국민적 저항의 성격이 크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동의 유연화, 청년실업 문제는 이미 전세계적인 이슈이다. 학생시위의 배경과 전망을 4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프랑스의 3월을 뜨겁게 달구는 시위는 단순한 학생시위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전국적으로 1백50만명이 참가한 지난 주말 시위를 고비로 전국화, 일반화하고 있다. 프랑스 대학생과 고등학생 단체들은 물론 노동총연맹(CGT)·프랑스민주노총(CFDT)·노동자의 힘(FO) 등 3대 노조를 비롯해 12개 노·학 단체들이 연대를 과시하고 있다. 거리의 시위학생들은 지난해 11월 소요의 주역이던 방리유(교외)지역 모슬렘 청소년들이 아니다. 보통가정의 자녀들이 주류다. 여기에 은퇴를 앞둔 1968년 학생혁명 세대들까지 가담하고 있다고 관측통들은 전하고 있다.

프랑스 청년실업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26세 미만 청년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그야말로 ‘파리목숨’에 불과한 상태다. 16~25세 청년 취업자들에 대한 수습기간은 1~3개월에 불과하다. 그나마 취업한 청년의 70%가 단기 계약직 형태로 계약을 하고 있다. 우파정부가 마련한 CPE는 나름대로 개선책이 될 수도 있다. 비록 20인 이상 기업주에게 해고의 자유를 주었다고 해도 수습기간을 2년으로 늘린 것은 이후 정규직화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우파정부는 CPE를 통해 최대 30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CPE 철폐를 요구하는 것은 현재 상태로 되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CPE와 무관하게 ‘1회용 클리넥스’ 신세를 근본적으로 면키 어렵다는 절망감에서 나온 요구이기도 하다. 일견 집단이기주의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21일 일간 르 파리지앵이 발표한 설문 결과 응답자의 68%는 CPE 철회에 찬성했다. 기성세대 역시 신자유주의 고용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영·미식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이번 사태는 고비용·저효율·고용안정을 추구해온 ‘프랑스 모델’의 실패로 비친다. 프랑스 청년층(15~25세) 실업률이 영국(10.9%), 미국(12%), 독일(13%)의 2배에 가까운 22%라는 통계가 단골로 인용된다. 하지만 이는 무상교육 시스템 덕에 많은 프랑스 젊은이들이 학교에 몸담고 있는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다.(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18·19일자 보도)

국제노동기구(ILO) 자료에 따르면 청년층 프랑스 노동력은 2백68만명(영국 4백49만명)으로 이를 근거로 실업자수(60만9천명)와의 비율을 내면 22%가 나온다. 하지만 실업자 규모를 청년층 총인구(프랑스 7백84만명·영국 6백66만명)로 나누면 프랑스 청년 실업률은 7.8%로 영국(7.4%)에 비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결국 천문학적인 학비 탓에 직업전선에 먼저 뛰어드는 영국 청년들과 달리 엉뚱하게 학교에 몸담고 있는 프랑스 청년들을 간과하고 통계치만 높여놓은 셈이다.

적어도 해고의 칼날이 일자리를 늘리고, 파이의 크기를 키운다는 주장이 황금률은 아니다. 영·불 정부가 밝힌 올해 성장예상치는 2% 안팎으로 같다. 세계적 전문조사기관 프라이스워터하우스(PwC)가 예상한 2050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도 영국과 프랑스는 나란히 1.9%다. 토탈과 LVMH 등 프랑스 다국적 기업들은 기록적인 흑자에도 해고를 늘리고 있다.

‘프랑스 모델’의 실패를 운운하는 시장의 논리는 목적이 분명하다. 타산지석으로 삼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자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의 과실은 기업주와 주주들에게 돌아갔을 뿐 임금생활자들에게 돌아오지는 않았다. 결국 이번 시위는 지난해 유럽연합(EU) 헌법에 대한 부결과 함께 세계화의 허구를 보통사람들도 체득하기 시작했다는 증좌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 사례를 세계화에 대한 ‘국민적 저항’의 첫 사례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프랑스 시위에 68세대 부모들이 동참한 것을 두고 중산층의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미 칼럼니스트 윌리엄 파프의 해석이 눈길을 끈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대중적 실패와 새로운 대안모색의 계기라는 점에서 이번 시위를 ‘탄광의 카나리아새’에 비유했다. 프랑스 경제분석가 사비에르 팅보는 “지난 20여년 동안 프랑스인들은 변화에 적응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자신들의 경제사정이 나아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프랑스 모델의 실패는커녕 미래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표출됨으로써 성장과 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다면서도 고용의 희생만을 강요해온 ‘EU 경제체제’의 노선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조라는 해석이다.

〈김진호기자 jh@kyunghyang.com〉

[CPE 반대 시위] 佛청년들의 투쟁

‘우리 모두 소르본으로!(Tous a la Sorbonne!)’. 최초고용계약(CPE) 반대를 외치면서 거리고 나서는 프랑스 청년들은 낙제생이 아니다. 프랑스 최고 엘리트 배출학교인 파리정치대학(시앙스 포)은 물론 MBA코스로 유명한 HEC, Essec 등 그랑제콜 학생들 역시 시위에 앞장서고 있다. 이는 청년실업이 능력 및 학력수준과 무관한 위기임을 입증한다. 모두가 ‘벼랑끝 세대’가 된 것이다.

여느 선진국처럼 프랑스 청년실업 문제는 1970년대 초 오일쇼크 이후 세계화의 진척과 정확히 궤를 같이 한다. 75년 6백만명에 달했던 제조업 종사자는 2000년 4백만명으로 줄었다. 서비스업의 발전과 생산공장의 해외이전 탓이다. 프랑스 경제사회연구원(IRES)에 따르면 15~29세 실업률은 75년 6%에서 2005년 22.8%가 됐다.

 



한동안 고학력일수록 취업이 쉬웠지만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고용불안을 상시적으로 느껴야 하는 벼랑끝 상황은 심화됐다.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한 청년들의 64%(2001년)는 기간제계약(CDD·비정규직), 임시직, 파트타임 등의 근로계약에 만족해야 했다. 여기에 90년대 말부터 정보기술(IT)과 콜센터, 대형할인매장 등 서비스업종이 발전하면서 변형시간근로가 임시직 일자리를 더욱 늘렸다.

같은 기간 노조는 약해지고 기업주들은 강해졌다. 대량생산시대 강력한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노동조합은 이제 사실상 일부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섬’이 됐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10%를 밑돌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30위(한국 29위)로 추락했다. 노조원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권이 됐고, 프랑스 철도(SNCF), 파리 지하철·버스 등 공공부문 노조원들은 선망과 질시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기업주들은 지난 99년 리오넬 조스팽 좌파정부가 실업문제의 해법으로 주당 35시간 근로제를 법제화하려 하자 그때까지의 점잖은 태도를 버리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프랑스 경제인연합회(CNPF)를 전투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프랑스기업가운동(MEDEF)으로 개칭한 기업주 2만5천명은 같은해 10월 파리 도심 가투를 벌였다. 노사관계역학이 뒤바뀐 단면을 보여준 사례다. CPE를 둘러싼 청년들과 우파정부의 갈등을 바라보는 기업주들의 시선도 시큰둥하다. 로랑스 파리조 MEDEF 회장은 “(2년내 해고 자유화 등을)25세 이하 연령층에만 적용하는 제도가 감동을 줄 만한 내용은 아니다”라며 되레 해고 자유화 대상이 제한적인 데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기성 노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안정된 일자리와 높은 복지를 제공해온 ‘프랑스 모델’이 일정부분 세대간 소득격차를 악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루이 쇼벨 시앙스 포 교수의 지적대로 프랑스는 지난 20년간 전후 베이비붐 세대들의 이익에 기반을 둔 프랑스 모델을 고수하기 위해 청년들을 희생시켜왔다. 하지만 청년들을 벼랑끝으로 내몰고 이득을 챙긴 것은 기업주들이라는 게 한층더 균형잡힌 해석이다.

2002년 30~35세 청년의 17%가 부모세대에 비해 경제적으로 하급계층으로 전락했다는 통계·경제연(Insee)의 분석은 위기가 기성세대로 번져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프랑스 재계는 경기 또는 기업체 수익과 상관없이 해고를 일상화했다. 기업주들은 한번 맛들인 저렴한 인건비라는 ‘마약’을 끊지 못했다.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는 “이번에 CPE가 철회된다면 프랑스는 앞으로 10년 동안 개혁을 이루지 못할 것이며 이는 끔찍한 신호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는 1백50만명의 청년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고(18일), 국민의 3분의 2가 CPE에 저항하는 사태에 프랑스 지배 엘리트가 느끼는 당혹감을 반영할 뿐이다. 실상과는 거리가 있다.

정치권은 지난 20여년간 좌와 우를 막론하고 국가경쟁력의 주문에 걸려 국가의 진정한 미래는 청년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게 프랑스 지성계의 충고다.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는 지난 21일자 르몽드 인터뷰에서 “CPE를 통해 고용불안 상태를 제도화하는 것으로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일방통행식 시장논리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실업자들과 당국과의 새로운 계약을 통해 ▲직업교육 강화 ▲구직자들의 자질향상을 전제로 실업수당을 웃도는 수입보장 ▲질높은 고용관계로 진화를 유도할 것을 촉구했다.

〈김진호기자 jh@kyunghyang.com〉

[佛 청년들 투쟁] ‘평등가치’ 앞세워 길거리시위 주도
‘왜 프랑스인들은 걸핏하면 거리로 뛰쳐나와 격렬하게 시위를 벌이는가.’

최초고용계약(CPE)에 반대해 프랑스 청년과 노동자 3백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온 28일 총파업을 전후해 제기된 의문 가운데 하나다. 사실 세계화의 부수적인 피해로 발생한 청년실업이 프랑스만의 독특한 문제는 아니다. 인근 유럽 국가들은 물론 세계경제에 편입된 대부분의 나라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논객 필립 스티븐은 ‘프랑스는 변화를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두려움에 휩싸여 계속 살아야 할 것’이라는 제하의 칼럼(24일자)에서 “폭력시위의 전통은 프랑스적 유전자의 일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자크 마르세유 파리1대학 역사학부 교수는 “프랑스에서는 의회의 자리를 거리가 대신하고 있다”며 “프랑스인들의 절반은 ‘길거리 시위’ 형식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다”고 분석했다.


의문의 핵심에 프랑스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튜던트(학생) 파워’가 있는 것 같다. 프랑스 대혁명까지 거슬러올라가지 않더라도 프랑스 공화국이 거리에서 탄생했다는 역사적 전통 역시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는 좌파건, 우파건 정치적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고 노동조합은 강력한 추동력을 상실한 상태여서 청년들은 거리에 호소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그런데 여론의 3분의 2가 CPE 철폐를 지지하면서 청년 시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는 청년들의 시위가 프랑스 국민 대다수에게 공감되고 있는 ‘공화국의 가치’라는 중요한 동력원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층에 실업피해가 집중되는 것은 자유, 박애와 함께 공화국의 가치를 구성하는 ‘평등’의 잣대에 어긋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국의 가치에 반할 경우 학생들이 선두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에는 2002년 5월 대통령선거에서 극우파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 후보가 2차 결선투표에 진출하자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에서도 ‘공화국의 가치’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결국 1백30만명이 거리로 나서 르펜을 낙선시켰다. 이번엔 자신들의 문제인 만큼 더 절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인 동기에서 시작한 청년들의 반란은 사회적인 운동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급속히 정치화하고 있다. 지난 주말 악상프로방스에서 열린 전국대학생협의회에서 처음으로 우파의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 퇴진 요구가 불거진 것은 이번 시위가 1968년 학생시위와 달리 정치적 지향점이 없다는 기성세대의 분석을 여지없이 빗나가게 했다. 68학생혁명 당시 소르본대학에 적기(사회주의)와 흑기(무정부주의)를 내걸었다면 이번엔 반 세계화와 반 우파정부라는 두개의 깃발을 내건 셈이다.

청년들의 좌절이 깊다는 것을 반영하듯 과격화 조짐도 보인다. 이는 28일 시위 도중 파리 이탈리 광장 등지에서 벌어진 모슬렘 이민자 청년들의 폭력소요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각에서 잘 드러난다. ‘파괴자들(casseurs)’이라는 기사 표현에 항의하기 위해 파리 AFP통신 본사를 방문한 파리10대학 학생들은 “불필요한 폭력이 아니다”라면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라고 두둔했다. 학생 카미유(21)는 “솔직히 말해 우리 역시 조만간 그들과 같은 수준의 절망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시위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반역의 성격을 띠게 된 데는 세계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작용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설문결과에 따르면 20~25세 프랑스 청년들은 ‘세계화가 당신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48%가 ‘두려움’이라고 답했고, 27%만이 ‘희망’이라고 답했다. 이는 프랑스 사회가 세계화로 인해 생겨난 소외계층에 대해서는 아직 적응 모델을 만들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르몽드는 28일 시위의 규모가 ‘역사적인 기록’이라면서 “최근 20여년간 일어난 시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위의 하나였다”고 평가했다. 최대 학생단체 뤼네프(l’UNEF)의 브루노 줄리야르 회장은 ‘해일’이라고 표현했다. 공무원을 포함, 공공부문 종사자의 30%가 동참했다. 프랑스에도 ‘혁명의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심각한 ‘혼돈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CPE를 법제화하면서 아무런 대화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드빌팽 총리는 시위가 확산되자 뒤늦게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우파정부는 설득력을 잃고 있어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불투명하다.

그러나 총파업이 좌파와 우파, 사용자와 노동자를 포함해 프랑스 사회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인 것만은 분명하다.

〈김진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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