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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월드/ 서방이 쥔 '발칸의 평화'

세계 읽기/인사이드 월드

by gino's 2012. 2. 25.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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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2000-10-19|08면 |45판 |국제·외신 |컬럼,논단 |1180자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유고연방의 선거는 불법이다". 밀로 듀카노비치 몬테네그로 대통령의 말이다. 그는 지난 17일 연방참여를 제안하기 위해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를 찾은 코슈투니차와의 회담을 마치고 '불법선거'라는 믿음을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틀린 말은 아니다. 코슈투니차가 선거에서 뽑히지 않은 것은 분명한 법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맞붙은 대통령 선거에서 양측 모두 과반수를 득표하지 못했다. 따라서 2차 투표로 갔어야 했다. 하지만 밀로셰비치측이 2차 투표를 거부하면서 '피플파워'가 위력을 발휘했고 그 결과로 어부지리를 얻은 것이 코슈투니차이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오히려 '유고의 민주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민첩한 지지표명이었다. 서방의 적극적인 지지가 피플파워에 힘을 실어준 것을 감안하면 이른바 외세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방은 유고연방의 민주화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경제제재 해제와 긴급원조에 나섰으며 긍극적으로는 관계정상화까지 암시하고 있다. 이 와중에 세르비아와 함께 연방을 구성하는 몬테네그로 공화국의 향방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결과에 따라서는 한때 6개 공화국과 2개 자치주를 아우르던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공중분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슈투니차 대통령은 몬테네그로의 연방 잔류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타협안을 내놓았지만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몬테네그로 국민의 뜻에 맡기겠다는 코슈투니차의 제안도 사실상 구속력을 갖는 약속이 아니다. 그가 국내에서 행사할 수 있는 힘은 아직까지 '피플파워'밖에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민의에 따르겠다는 '수사'는 몬테네그로의 연방분리 문제를 가변적인 불특정 다수의 뜻에 맡기겠다는 무책임한 말이다.

몬테네그로 문제는 결국 외세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은 유고와의 관계정상화 전제조건의 하나로 코소보 및 몬테네그로와의 항구적 평화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는 결과에 따라서 구 유고연방의 핵분열 가능성도 내포하는 것이다.

발칸에 새 지도가 그려질 때마다 유고슬라비아는 어김없이 피를 뿌렸다. 1차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를 만든 서방은 해체과정에도 책임을 져야한다. 발칸 평화의 앞날은 이제 취약한 기반의 코슈투니차 정부가 아니라 서방의 손에 달렸다.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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