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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정동탑

<정동塔> '제3세력'이 희망인 이유

by gino's 2012. 2. 25.

[경향신문]|2002-06-14|13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877자

 

권력에의 욕구가 충돌하는 선거는 애시당초 신사도와는 상관이 없는 게임인지도 모른다. 공개.비공개적으로 막강한 자금을 확보한 이른바 주류(主流)정당들이 선거판을 좌지우지한다. 간신히 존재하고 있거나, 갓 싹을 틔우려는 주변정당들의 몸짓은 허약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어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수십년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던 선거판을 흔드는 작지만, 의미 있는 꿈틀거림이 감지됐다. 진원지는 수십년간 기득권을 포식해왔거나, 어렵사리 장악한 5년 치세의 마지막 해를 추저분한 게이트로 닫고 있는 기성 정당들이 아니다. 이름조차 생소한 새내기 정당들이다.여도, 야도 아닌 '제3세력'이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게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양대 주류 정당에 대한 실망과 염증이 어느 때보다 누적된, 하수상한 시절이기에 '주변'의 목소리는 더욱 의미 깊게 들린 듯하다. 16개 광역의회로 제한됐지만 사상 처음 도입된 정당투표제에 힘입어 '아마추어 정치인'들이 현실정치의 장(場)에 진출할 교두보도 마련된 터이다.

오랜 세월 동안 '국가와 민족'을 대변해온 주류 정당에 대해 주변 정당이 도전장을 던지는 현상이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나라마다 변화의 성격과 정도가 다를 뿐이다.

지난달 프랑스 대선과 네덜란드 총선이 던진 충격은 그들만의 이야기도, 1회성 해프닝도 아니다. 타 민족, 타 계층에 대한 관용에 관한 한 선두주자로 꼽혀온 두 나라가 극우파 돌풍에 휩싸인 이유는 무엇일까. 증오와 거부의 표심(票心) 탓이었다. 자신들의 일자리,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해묵은 '증오'만 표출된 건 아니었다. 이례적으로 극우의 지분을 넓혀준 것은 주류 정당에 대한 뚜렷한 '거부'였다.

주변계층의 경제.사회적 소외와 불안이 깊어질 동안 좌.우 주류정당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다그친 르펜은 프랑스 유권자 다섯 명 중 한명의 표를 얻었다. 유세 도중 피살돼 동정표를 얻었다지만, 네덜란드 극우 지도자 핌 포르타인의 당이 창당 석달 만에 26%를 득표한 것은 재계 엘리트와 함께 현실정치를 농단해온 주류 엘리트 정계의 폐쇄성을 유권자들에게 효율적으로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유럽 극우정당들과 우리의 신생정당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치적 지향점은 물론 현실적 영향력도 판이하다. 같은 변화라도 그들에게 음산한 '광풍'이었다면, 우리에게는 신선한 '미풍'이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배제돼온 '주변'이 배제해온 '중심'을 향해 통렬하게 거부의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에서, 현실정치를 독과점해온 주류를 긴장시켰다는 점에서 반면교사의 의미가 읽힌다.

우리 경우 특히 진보적 군소정당의 등장은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국민 대부분이 마실 물을 걱정하고, 급진적인 금연운동을 벌일 만큼 환경과 건강을 중시하면서도 그럴듯한 환경정당 하나 없었고, 누구보다 혹독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통치를 받았으면서도, '일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국회는 물론 지방의회에서조차 설 땅이 없지 않았는가. 건전한 비주류의 존재는 주류 정당들이 마음놓고 탐욕을 채우지 못하도록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프랑스에선 불온한 극우 바람도 '구체제'를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기특한 역할을 했다. 기성 정치체제의 민의수렴 절차에서 치명적 결함을 뒤늦게 발견한 프랑스 사회는 요즘 대토론을 벌이고 있다. 그 주제는 '나라 다시 세우기'이다.

힘의 논리가 판치는 후진적 선거판에서 주류가 대마를 장악하는 게 현실인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번 지방선거도 주로 그들의 잔치로 전락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순도 100%에 가까운 주류만으로 이끌어지는 정치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경험칙을 우리 유권자들도 체득하기 시작했다. 여당과 야당에 모두 실망한 유권자들에게는 '그 나물에 그 밥'을 대체할 여지가 필요하다. 제3세력이 '희망의 근거'인 이유다.

김진호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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