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관참시(剖棺斬屍)'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영조 32년(1756년). 까마득한 과거의 행형제도가 올해 들어 유독 생뚱맞게 튀어나왔다. 3.1절을 하루 앞둔 2월28일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 모임'과 광복회가 공동으로 반민족행위자의 명단을 발표하자 곧 바로 "부관참시하자는 거냐"는 반론이 나왔다. 광복절 전날 친일문인 42명의 면모가 공개되고 나서도 비슷한 딴지걸기가 은밀하게 진행중이다.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고, 저마다 장황하게 사정을 늘어놓았다. 서슬퍼런 일제의 총칼 앞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론과, 그 당시 친일파 아닌 사람이 어디 있었냐는 배짱론, 이후 조국 또는 순수문학 발전에 혁혁하게 기여했다는 정상참작론까지 다채로운 변론이 난무했다. "언론인은 도덕의 상징이기에 첫 심판대에 올려 가차없이 처단해야 한다"며 불과 4년여의 독일 점령 시기 히틀러에게 지조를 내준 '매춘 언론인'들을 가혹하게 처벌했던 드골의 프랑스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주체적' 도덕론까지 나왔다. 시정잡배들의 대거리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시대의 양심'으로 과분한 대우를 받던 언론과 문화예술인들이 전위에 나서 벌인 선전전이었다. 유일하게 반민족행위자의 아들을 현역 국회의원으로 둔 정당은 "친일행위 여부는 객관적인 자료와 공과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는 선문답을 던졌다. 특히 보수신문 두 곳의 논조는 눈물겹게 당당했다. 역사 청산의 '기본'이 안됐다며 절차상 문제를 뒤적였고 '누가 친일파인가?'라는 사설을 통해 본질을 비켜나갔다. 이쯤해서 빨리 잊는 것이 미덕인 사회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어째서 다시 친일 타령이냐는 책망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오늘이 어떤 날인가. 일제에 주권을 헌납한 국치일(國恥日)이 아니던가. 이날 우리 현대사의 BC와 AD가 갈라졌으며, 그 시점에 태어난 검은 악령은 여전히 왕성하게 우리 사회의 주류 기득권층을 이루면서 '증오'와 '왜곡'의 독가스를 살포하고 있다. 말이 쉽지, 부관참시는 가능하지도 않다. 반민족행위자일수록 호화분묘의 견고한 돌장식 아래 누워 있는 데다 그 후예들의 힘이 워낙 세기 때문이다. 광기의 참형이 가능한 절대왕정 시대도 아니다. 그러나 망자의 허명에 대한 상징적 부관참시와, 산자의 권세에 대한 도덕적 단죄는 진정한 국민통합을 위해서 덮어둘 수 없는 사안이다. 일본은 올해 8.15 종전기념일에도 야스쿠니 신사에서 그들만의 연례의식을 치렀다. '살아남은 게 죄송스럽다'는 일제 노병들은 현역으로 돌아가 '받들어 총'을 외치고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를 올렸다. 지난 광복절엔 남북한 민간 대표들이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모여 민족통일대회를 치렀다. 의미깊은 마당이었지만 절로 어깨가 들썩여지는 잔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 북측 인사의 말대로 '산속에서 치러진' 제한된 행사였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 신명나는 광복절 축제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국치일에 숙연한 굿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박제된 기념일일 뿐이다. 일본 우익은 터무니없는 행사나마 숙연하게 치르고 있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광복이 그다지 기쁘지 않았고, 한일합방이 그다지 치욕스럽지 않았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여전히 기득권의 숟가락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잔치없는 광복절과 굿판없는 국치일을 보낸다. 김진호 / 국제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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