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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정동탑

베이징의 봄

by gino's 2012. 2. 13.

“아직도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없습니까?”. 지난달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 신문공작자협회 관계자의 질문은 의외였다.

북한 음식점 ‘평양 해당화’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거론하자 의아한듯이 되물어온 내용이다. 물론 신화통신 기자출신인 그의 주관심 대상이 한반도는 아니었다. 프랑스 유학과 아프리카 말리, 알제리 특파원사무소 근무 등 다양한 해외경력이 말해주듯 30여년간 글로벌 환경에 노출돼 있었던 그이다. 그러나 그의 폭넓은 국제적 안목에 한반도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었다.

올 6월 중국 기자대표단을 이끌고 ‘조선’을 방문하는 데 고작 5명의 기자들을 뽑는데도 서로 안가려고 해서 고충이 많았다는 그에게 한국은 경제가 앞선 나라, ‘조선’은 뒤진 나라라는 도식이 성립될 뿐이었다. 경제사정이 시원치 않으니 접대가 시시할 것이라는 게 중국 기자들의 방북 기피 이유인 듯했다.

‘한국은 중국에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선전특구에서 열린 양국 기자간 연례세미나에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세미나의 주제는 ‘중국의 WTO 가입과 향후 전망’. 한국 기자들의 관심은 무엇보다 중국의 세계경제 완전편입이 양국간 교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집중됐다. 중국 투자 외국기업들의 자본유출 문제와 기업부실, 중국의 금융기반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야기가 겉도는 듯하자 선전특구보의 한 간부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중국의 주요 무역상대국은 미국과 일본, 유럽”이라며 “중·한 교역량은 비중이 적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논의를 명쾌하게 갈무리했다.

서울을 떠나기 전 중국에는 한국바람(韓流)이, 한국에는 중국바람(漢潮)이 불고 있다는 다소 상호적인 시각을 가졌던 게 솔직한 고백이다. 문화는 늘 전반적인 경제수준이 높은 곳으로부터 흘러드는 속성을 지니지 않는가. 우리 대중문화가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열한 내부경쟁과정을 거쳤기에 더 세련됐으리라는 짐작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한류라는 약간 앞선 유행과 한국 경제의 약간 앞선 경쟁력이 주목받고 있을 뿐, ‘한국’이라는 실체는 없었다. 더욱이 우리가 하나의 거대한 노다지로서 중국을 바라보고 있다면, 중국의 시선은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중국의 ‘세계적 시각’은 일행이 방문한 언론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장정(長征) 당시 국민당군에 쫓겨간 옌안(延安)에서 문을 열어 현재 105개 해외지사를 갖고 있는 신화통신은 매체특성상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베이징의 일개 신문사인 경제일보가 21개 해외사무실을 갖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는 그만 입이 벌어졌다. 대부분 구미와 일본에 편향된 한국 해외특파원들의 활동범위와 차원이 다른 전방위 배치였다.

베이징의 봄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오기 시작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유치, 세계컵(월드컵) 본선진출 등 국가적 염원이 담긴 꽃소식(花信)이 잇따라 날아왔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흥망’을 쓴 폴 케네디 미 예일대 교수가 군사력·과학기술력·경제력과 함께 떠오르는 강대국의 주요 조건으로 내세운 국민적 사기는 최고조에 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안지방과 내륙지방의 극심한 빈부격차가 맹점으로 지적되지만 흥성의 족쇄라고는 할 수 없다. ‘서부 대개척’의 구호가 말해주듯 아직도 남아있는 미개척지는 사회의 역동성을 북돋아줄 것이 틀림없다.

중국의 WTO 가입을 전후해 한국사회에서 불고 있는 대륙풍에는 어딘가 허술한 구석이 담겨 있다. 한국사회의 중국바람은 중국시장이라는 파이의 엄청난 크기에서 비롯됐다. ‘라이터 한개를 팔아도 12억개를 판다’는 식의 산술적 낙관론이 대표적인 실례이다. 라이터를 팔 수는 있지만, 중국에 몰려든 전세계 상품과의 아귀다툼을 전제로 해야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중국의 가능성에 동승하려는 성급한 계산보다는 먼저 우리의 국가전략이 서야 한다. 그 안에 중국을 담는게 순서다. 그런 다음에야 ‘세계의 공장’은 우리 미래의 튼실한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입력 : 2002-04-03 22:45:42 /정동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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