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2002-12-12|07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900자 |
"나는 사회적으로 좌파이고, 경제적으로 우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프랑스 국가주의자이다". 지난 4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선전한 극우파 정객 장 마리 르펜이 한 말이다. 새삼 그의 이름을 꺼내는 것은 습관처럼 좌.우, 보.혁구도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국민을 가르는 우리 사회의 '이른바 보수'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나 보수우파는 민족을 더욱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른바 보수'는 미국을 먼저 내세운다. 그래서 보수 앞에 '이른바'라는 수식어구를 붙일 수밖에 없다.르펜은 일부 계층의 증오에 기대어 정치생명을 유지하는 극우파 정객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그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 보수우파를 자칭하는 이 땅의 한 언론인은 지난 주말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혹독하게 비난했다. 이후보가 지난 주말 여중생 사망과 관련해 부시 미 대통령의 사과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을 요구하며 광화문 촛불집회에 동참하려고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개인자격으로 공개한 글이기에 굳이 그의 실명을 밝힐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한국에서 우파 세력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이던 이후보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말로 시작되는 그의 논지는 이렇다. 우파를 딛고 서야 할 이후보가 한발을 빼내어 좌파쪽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헛디뎌 자세가 위험해졌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한국민을 두번 분할하라는 말로 요약된다. 한반도에서는 이념이 가장 큰 전략이라고 전제한 그는 이념에 따라 김정일 세력과 대한민국 세력으로 크게 나눈 다음 대한민국 세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써야 정치나 선거에서 성공한다는 도움말도 잊지 않았다. 분할해야 이긴다는 말이다.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긋고, 그 남쪽을 다시 좌파와 우파로 갈라야만 선거에서 이긴다는 '분할의 논리'는 그래서 정당화된다. 유럽과 한국은 다르다. 하지만 이념적으로 좌.우를 이야기할라치면 어느정도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의 좌파는 반미이고, 우파는 그 반대이다. 좌파 표를 향해 추파를 던진 이후보는 우파를 배신했다. 그리하여 명문대 법대를 나온 이후보는 그에게 있어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 됐다. 특명전권대사(주한 미 대사)를 통해 전한 부시 대통령의 사과가 직접 사과와 똑같은 효력이 있음을 간과하고 이를 다시 요구했기 때문이다. SOFA 개정을 운운한 것은 더 큰 실수다. 우파의 노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다양한 주장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를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는 말한다. 여중생 사건을 계기로 한.미 동맹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어떻게 강화해야 할 수 있는지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우파 후보로서 본분을 잃지 말고 대선에서 필승해야 한다는 절대 명제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후보에게 이번 선거에서 '정치적 생명'뿐 아니라, '물리적 생명'까지 걸라고 주문하는 대목에선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쯤되면 상식을 벗어난다. 서두에 르펜의 구호를 인용한 이유는 비록 '분할의 정치' '증오의 정치'를 살포하는 극우 정치인이지만 나름대로 좌와 우를 아우르려는 고민이 그 속에 엿보이기 때문이다. 소외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사회적으로 좌파를 표방했지만, 세계화의 흐름을 무시하지 않기 위해 경제적으로 우파임을 강조했다. 더구나 자국인의 입장을 먼저 대변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읽힌다. 미군 궤도차량에 깔려 숨진 여중생을 추모하고 미국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광화문 촛불집회의 본령은 좌와 우도, 친미와 반미도 아니다. 상처받은 한국민의 자존심이 터뜨리는 함성이다. 물론 그 해원(解寃)작업은 정치인들이 맡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정치의 셈법에 의해 분할되고, '보이지 않는 손'에 휘둘린다는 식으로 매도할 대상은 아니다. 또 얼마나 평화적인 모임인가. 김진호 / 국제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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