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 장관이 올해 분쟁이 발생할 세 곳에 한반도를 포함한 건 지난달 28일이었다. 라브로프 장관은 타스 통신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과 한국, 대만을 차례로 분쟁우려 지역으로 꼽았다.
대만 관련해서는 "미국이 공개적으로 대만 내 분리주의 흐름을 격려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아프가니스탄과 한반도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았다. 라브로프의 언급이 국내외 언론에서 단순한 뉴스로 소비된 이유인지 모른다.
러시아뿐 아니다. 한반도 안보상황은 특히 윤석열 정부와 조 바이든 행정부 등장 이후 각국의 우려를 사고 있다. 북은 핵, 미사일 개발로 계속 긴장을 키우고, 남은 '힘에 의한 평화'를 운운하며 미국 전략핵무기의 한반도 전개를 정례화했다. 한미, 한미일 연합군사훈련도 양과 질에서 모두 증가했다. 러시아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 우선 경고 내용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 발 한반도 위기설은 지난해 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과 한미가 서로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도모하라고 촉구해 왔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한미 연합훈련이 모두 군사적 긴장을 높인다는 게 러중 공동입장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러시아의 말이 달라졌다. 한반도 긴장의 양 축 가운데 북핵을 빼고, 미국의 군사주의 행동을 집중적으로 부각한다.
12일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이 밝힌 입장이 이를 요약해 보여준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주례 브리핑에서 "러시아는 미국과 그 하위 동맹이 역내에서 연합 군사 활동을 강화하는 게 위험하다고 되풀이 경고해 왔다"면서 "우리는 지금 그 결과를 보고 있으며, 향후 더 많은 갈등이 촉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한민국 족속들은 우리의 주적"이라면서 조선반도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근 발언에 대한 질문 끝에 나온 답변이다.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러시아의 주유엔 차석대사는 지난달 19일 "한반도 양쪽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속도는 상황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면서 "미국의 군사기계는 공격적 작전 준비하듯 이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문제를 다룬 안보리 회의에서다. 브릭스(BRICS)의 일원인 브라질의 세르지오 프랑카 다네세 주유엔 대사도 "우리는 긴장이 용인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인정하고, 새해를 시작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러시아의 경고는 큰 틀에서 미국의 일방적 헤게모니 체제에서 유엔 헌장이 명시한 다극화된 체제로 복귀해야 한다는 대외정책 개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유독 한반도에서 긴장이 높다고 계속 경고하는 것은 나름대로 판단 근거가 있을 터. 한반도 분쟁은 우크라 전쟁 정도와는 차원이 다른, 글로벌 차원의 잠재적 재앙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의심한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모종의 지정학적 실험을 하고 있고, 한국이 그 첫 번째 희생양이 될 수 있다"라는 경고가 그 것이다.
안드레이 쿨릭 당시 주한 러시아 대사는 지난해 4월 <시민언론 민들레> 인터뷰에서 "한반도에 정치적,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어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같은해 5월 25일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는 한반도가 '전쟁 전야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리아 노보스티 통신 인터뷰 도중 북러 간 포탄 거래를 부인하는 과정에 불쑥 튀어나온 말이다. "전쟁 전야의 상황 속에서 북한이 축적해 온 무장 장비는 북한에서 사용돼야 할 것"이라며 북한이 무기를 다른 나라에 건넬 여유가 없는 상황임을 강조했다.
마체고라는 러시아 내 가장 정통한 북한 전문가의 한명으로 꼽힌다. 2015년 1월부터 평양에 주재하면서 북한의 위협 인식을 접해왔다. 작년 9월 2일 자 타스통신 인터뷰에서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한) 일부 공동대응 조치는 매우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 또는 북한과의 공동대응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러시아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북한이 깊숙한 군사적, 전략적 대화를 나누는 사실상 유일한 국가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13일 보스토치니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현재 러시아와의 관계가 우리의 최우선 순위"라고 공개적으로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도울 뜻을 공공연히 밝혔고, 김 위원장은 "당면한 협조 사항을 허심탄회하게 토의하고 만족한 합의와 견해 일치를 보였다"고 말했다. 한미는 북한과 대화가 단절된 지 오래다.
북러 관계는 지난해 몇 단계 격상됐다. 북한의 7‧27 전승절(정전협정 기념일)에 중국이 예년 수준의 당‧정 대표단을 보낸 것과 달리 러시아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이끈 군사대표단을 보냈다. 정상회담 후속 협의차 지난해 10월 19일 방북한 라브로프는 "양국 관계가 완벽하게 새로운 전략적 수준에 도달했다"고 선언했다. 양국 관계를 북한은 '한 전호(참호)'에 있다고 표현해 왔고, 라브로프는 '불굴의 전우관계'라고 했다.
북러는 미국과 대적하는 전략적 위협 인식도 공유한다. 이점, 중국과 확연히 다르다. 중국은 미국과 전략적 경쟁을 하되 상당 기간 '상호 의존' 체제를 유지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지난해 11‧15 미중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에서는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군사적 소통에 방점을 두는 한편 상호이익이 되는 분야의 협력을 강조했다. 반면에 미러는 군사 핫라인 외에 어떠한 의미 있는 대화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대중, 대러 관계도 성격이 다르다.
러시아의 한반도 위기관은 객관적인 논평에 머물지 않는다. 러시아 역시 한반도 안보의 한 축이자, 특히 동해를 중심으로 안보의 주요 행위자이기 때문이다. 작년을 기점으로 미국 전략자산뿐 아니라 러시아 전략자산이 전개되는 횟수도 늘었다. 한미, 한미일 연합훈련에 '비례 대응'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군사적 대응을 주저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경고하는 한반도 위기는 러시아가 포함된 위기인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해 8월 23일 러시아가 한미 대규모 연합훈련에 항의하면서 전략폭격기 투폴레프(TU)-95MS를 비롯한 항공기들을 동해와 서해, 동중국해의 국제수역 상공에 띄웠다. 한국과 일본 전투기들이 황급히 발진해야 했다. 작년 4월 14일부터는 2만 5000명의 병력과 167척의 군함, 12척의 잠수함, 89대의 비행기와 헬기를 동원해 태평양함대 연례훈련을 벌였다. 러시아는 태평양함대의 전략핵잠함(SSBN)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폭기 등 핵무기 3종 세트를 모두 갖고 있는 유일한 동해 연안국이다.
러시아의 관점은 올해 한반도 정세를 내다볼 유용한 창문의 하나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한반도 위기설을 계속 제기하면서, 스스로 한반도 주변에서 무력시위를 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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