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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탑> 미국은 북핵위기의 '출구'를 알고 있다

칼럼/정동탑

by gino's 2012. 2. 2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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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2006-07-25|30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490자

시작은 돈문제였다. 2004년 10월2일 미 뉴워크항에 정박한 에버 유니크 호의 하역작업을 하던 인부들은 수상한 컨테이너를 한개 발견했다. 신고를 접수한 FBI와 미 재무부 비밀검찰국 요원들은 플라스틱 장난감 박스 밑에서 30만달러 상당의 슈퍼노트(정밀 위조지폐)를 찾아냈다. 북한 산 대규모 슈퍼노트의 미 본토 상륙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베이징 6자회담을 3차례 개최하고 북.미를 비롯한 관련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논의하던 시점이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당시 북한 산 슈퍼노트에 대한 국무부 차원의 조사를 지시한 것은 6자회담의 초대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제임스 켈리였다고 한다. 슈퍼노트와 북핵은 처음부터 얽혀 있었다.

미 의회조사국(CRS)의 라파엘 펄 연구원에 따르면 슈퍼노트로 북한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연간 1천5백만달러에서 2천만달러 선이다. 북한으로선 미국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붕괴시키는 수단이라고 이념적 덧칠을 하겠지만 경화가 절대 부족한 입장에서 짭짤한 수입원일 가능성이 짙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들은 슈퍼노트를 '전쟁 행위'라고 규정했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불신을 조장함으로써 결국 미국민에 대한 위협이 된다는 논리다. 워싱턴의 조폐국에서 나왔어야 할 녹색 달러화가 평양 인근 평성의 62호 인쇄소에서 나왔다는 확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대남 공작용 1달러 지폐 위조로 시작한 북한의 슈퍼노트는 이후 경제난을 겪으면서 외화벌이 산업이 됐다는 게 미국측의 분석이다.

북한 역시 지난해 베이징 4차 6자회담에서 핵포기 의사를 담은 9.19성명을 도출한 직후 미국이 조여오는 위폐공세에 당할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마카오 은행에서 동결한 2천4백만달러를 내놓기 전에는 6자회담에 안나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CRS는 범법자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기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까지 냈으니 자존심이 상할 만큼 상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속이 탄 것은 북한이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을 평양으로 초청해서 얘기나 좀 해보자고 공개 제안했지만 보기좋게 거절당했다. 그 끝에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른 게 저간의 사정이다.

평행선을 긋는 북.미 사이에서 엉뚱하게 피해를 보게 된 것은 남측의 평화번영정책이다. '북에 대해서도 얼굴 붉힐 때는 붉힌다'는 참여정부의 정신이 구현된 지난번 남북장관급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때이른 동면에 들어가고 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비난 결의 이후 돈문제는 다시 핵문제로 회귀하고 있다. 힐 차관보는 엊그제 "북한의 핵실험을 '금지선(red line)'으로 여길 것"이라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압력이 임계점에 도달할 것임을 경고한 바 있다. 미국 스스로 북한 문제의 출구가 핵문제임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북핵에서 출발해 북한인권과 슈퍼노트를 거쳐 미사일로 돌고 돌던 현란한 '외교놀음'은 이제 접고 북한 문제를 원점으로 돌려 놓을 때다.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 경제가 이 정도 규모의 위폐로 흔들린다는 말을 곧이 믿을 사람은 미국 내에서도 많지 않은 것 같다.

김진호 국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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