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체제 안보와 국가적 자부심을 보장하는 핵 프로그램을 협상으로 포기할 의도가 거의 없는 게 분명하다. 김정은은 어쩌면 러시아와 급증하는 국방협력을 이용해 국제적으로 핵보유국 인정을 받기를 희망하고 있다."
미국 16개 정보기관 종합평가
미국 국가정보국(DNI)이 11일 공개한 '연례위협평가(ATA)' 보고서에서 평가한 북한의 전략적 목표다. 이는 북한이 미국과 한국 및 지역에 제기하는 위협이 큰 틀에서 예년 수준을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러시아 정부와 미국 한반도 전문가 로버트 칼린,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내놓은 전쟁위기설과는 거리가 있는 평가이다. 동시에 북한이 4월 총선에 즈음해 각종 도발을 할 것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경고와도 거리가 먼 평가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작년 말 미국의 전략핵무기를 포함한 한미, 한미일의 훈련이 북한의 핵 위협 규모에 비해 훨씬 강한 대응을 함으로써 한반도를 전쟁 전야로 몰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칼린·헤커는 지난 1월 김정은이 1950년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핵무기를 동원한 전면전을 치를 결심을 한 것 같다고 평가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31일 제57차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북한은 지난 70년 동안 중요한 정치 일정이 있는 해에는 늘 사회 교란과 심리전, 그리고 도발을 감행해왔다"고 북한의 도발을 기정사실화 했다. "올해도 접경지 도발, 무인기 침투, 가짜 뉴스, 사이버 공격, 후방 교란 등 선거 개입을 위한 여러 도발이 예상된다"고 주장했었다.
보고서는 또 "북한은 약 20년 동안의 혹독한 유엔 제재와 코로나19 폐쇄로 초래된 최악의 고립에서 벗어나, 중국 및 러시아와 더 강력한 관계를 통해 재정적 이득과 외교적 지지, 국방협력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라고 짚었다.
최근 3년 동안 ATA 보고서는 "북한 지도자 김정은은 주기적, 공격적 행동으로 미국과 동맹을 위협할 수 있도록 핵 및 재래식 군사력을 계속 추구할 것이며, 이는 지역 안보환경을 북한에 유리하게 조성하려는 의도와 맞물린다"라는 같은 문장으로 시작했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 한다는 것 역시 새로운 흐름이 아니다. 작년 2월의 2023년 보고서도 "김정은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자신의 전체적인 지배를 보장할 궁극적인 보장으로 여기는 게 거의 확실하다"면서 "시간이 흐르면 핵보유국으로 국제적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핵프로그램을 포기할 어떠한 의도도 없다"고 단언했다. 북한과의 핵협상은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도가 없다면, 이를 위한 대화와 협상에 나설 이유도 없다. 그런 점에서 올해 보고서는 같은 내용의 변주에 불과한, 예년 수준의 평가였다.
북핵 능력은 "증강일로" 평가
보고서에서 매년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은 북한의 핵능력이다. 이에 대한 장·단기 대책은 올해도 제시되지 않았다. 2022년과 2023년 보고서는 북한의 '군사적 능력' 다음에 대량살상무기(WMD)를 배치했지만, 올해는 WMD를 앞세웠다. 김정은이 작년 3월 핵무기고 확대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늘릴 것을 지시했으며, 전술핵무기를 무인 수중 발사체와 순항미사일 등 최소한 8개의 운반수단에 장착할 수 있다고 주장했음을 적시했다. 7차 핵실험은 2022년 중반 이후 언제라도 실시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군사력은 외부의 개입을 격퇴하고, 재래식 전력의 지속적인 열세를 상쇄하며, 강압을 통한 정치적 목적을 강화하는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한 '틈새 능력'에 투자함으로써 미국과 동맹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은 지역 미사일방어(MD)를 무력화하고 핵탄두 전달 방법의 다양화와 핵 반격(second strike) 능력을 개발하려는 강력한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봤다.
지난해 유의미한 군사력 변화와 관련해 보고서는 북한이 재래식 군사능력 개발도 도모하고 있다고 평가한 뒤 그러나 우선순위와 자원 제한 등의 요인으로 미사일 개발에 비해 더딘 속도로 무기 시험과 야전 배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밖에 △미국 MQ-9 리퍼 무인기와 글로벌 호크와 유사한 무인비행장치(UAV) 시스템 과시 △수년에 걸쳐 탄도미사일 발사용으로 개조한 로메오급 잠수함에서 탄도미사일 발사 △올해 1월 조정 가능한 초음속 재진입 차량체를 탑재한 신형 고체 추진체 중거리 미사일 발사 △3차례 발사 실패 끝에 우주발사체(SLV·군사정찰위성)를 성공적으로 궤도 안착 △액체 추진체를 사용한 화성-15형과 화성-17형 및 고체 추진체의 화성-18형 등 모두 5차례의 ICBM 발사 등이 지난해 새롭게 확인된 북한의 군사능력이라고 나열했다.
이와 관련,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 사령관 및 한미 연합사 사령관(대장)은 11일 자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 북한 핵무기 억제의 초점이 과거 북한의 핵능력 개발을 중단시키려던 것에서 이제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예방하는 것으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늘어나는 북한의 핵능력을 방치한 채 사용을 예방하겠다는 말은 물리적인 힘, 즉 군사력을 동원해 막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북한의 핵위협은 분명하지만, 한미의 대응전략은 모호성을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강신철 연합사 부사령관(대장)은 북한의 (핵)무기는 실제적이고 명백하며 분명한 위협이라면서도 북한이 핵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게 대응전략이라는 모호한 설명을 내놓기는 마찬가지였다.
북한이 핵사용 못하게?
그는 대응전략의 목표를 체스게임에서 '교착상태'를 만드는 것에 비유하면서 "우리(한미)는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스에서 '교착상태 무승부(stalemate draw)'는 킹이 체크 메이트(장군) 위치에 있지 않지만, 킹을 그 위치에 놓지 않는 한 다른 어떤 말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포기하지 않는 한 다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교착상태를 만들겠다는 말이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빠졌다. 한·미 양국군의 연례 연합연습 '자유의 방패(FS)' 진행 중에 이례적으로 성사된 인터뷰는 서울 외곽 산악에 마련된 전시지휘사령부 탱고(Tango)에서 이뤄졌다.
올해 연례위협평가 보고서는 북한의 사이버 프로그램에 대해 정교하면서도 능란한 사이버 첩보활동과 사이버 범죄 및 공격 위협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사이버군은 완숙됐으며 미·한 양국의 광범위한 목표를 포함한 여러 과녁에 대해 다양한 전략적 목적을 달성할 능력을 완전히 갖췄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또 사이버 작전을 통해 암호화폐 강탈과 돈세탁 및 훔친 암호화폐의 현금화 등 광범위한 접근을 시도할 것이며 해외 정보통신(IT) 인력 파견으로 추가적인 재원을 마련하는 프로그램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번 보고서는 2022년과 2023년 보고서에 없던 김정은이 직면한 '도전'을 기술했다. "김씨 일가의 장기적 지배를 위해 1990년대 이후 늘어난 사적 경제활동을 과거로 되돌리는 재집중화 운동을 벌이고 있다"면서 "김정은은 장기적으로 국가의 완전한 통제라는 자신의 욕망과 경제적 웰빙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 간의 균형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DNI는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해 미 연방정부와 국방부 산하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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