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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코 앞인데 찾잔 속 '북풍', 스텝 꼬이는 정부 소통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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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총선 앞두고 북한이 군사 도발을 한다거나 대남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혹시 내부적으로 모니터링 같은 걸 하는지 궁금하다." (기자)

"북한의 여러 도발 동향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와 함께 면밀하게 지켜보는 중이다. 총선 전 도발 여부에 대해서는 확답, 이 자리에서 말할 내용이 아닌 것 같다." (통일부 대변인)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국무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24.4.2. 대통령실 누리집

하룻밤 새 돌변한 통일부 입장

1일 통일부 정례브리핑의 첫 질문은 4·10 총선 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었다. 기자의 질문은 결코 창의적인 내용 또는 새로운 해석이 아니었다. 윤석열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일찌감치 북한의 총선 전 도발 가능성을 거론해 왔기 때문이다. 준비된 답변이 없었던 구병삼 대변인은 즉답을 피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통일부는 2일 생뚱맞게 '우리 총선 개입 시도 관련 통일부 입장'을 발표했다. 문건은 "북한은 우리 선거 일정을 앞두고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매체를 통해 대통령을 모략·폄훼하며 국내 일각의 반정부 시위를 과장 보도하고 우리 사회 내 분열을 조장하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고 지탄했다. 통일부가 1월 4일 자 입장문에서 "우리 총선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던 사실도 상기시켰다.

보도 참고자료로 노동신문에 실린 대남 비방 기사가 1월 7건, 2월 12건이었다가 3월 22건으로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증가했다는 숫자를 제시했다.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관영매체를 총동원해 선거 개입 책동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그런데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사이트는 한국 내에서 접속이 차단돼 있다. 북한은 어떤 방식으로 이를 한국 사회에 유포시켜 분열을 획책할까? 이에 대한 통일부 당국자의 답변이 군색하기 짝이 없다. "여러 경로를 통해 국민이 노동신문 보도 내용도 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통일부가 배포한 '올해 이슈별 북한 관영매체의 선전·선동 동향'에 예시된 기사들 가운데 국내 언론이 그대로 전한 것은 없어 보인다. 대통령 이름을 굳이 '윤석열'이 아닌, '윤OO'로 표시한 데서 통일부 자료 작성자의 각별한 정성이 감지될 뿐이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길 포시즌스 호텔서 4대 연구원장과의 좌담회에 앞서 연설을 하고 잇다. 2024.2.5. 통일부 UNITV 캡처

틀에 박힌 단정

제목을 훑어보면 촛불시위 등에서 '윤OO 검찰 독재'를 비난하고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주로 소개했다. '집권 1년 만에 역대 최악의 청년 실업률을 기록해, 일자리 문제가 더욱 암담해졌다.' (노동신문 2월 15일 자), '민주 세력 총단결로 탄핵 국회 건설'(3월 19일 자 중통), '재벌기업에 합법적인 노동자 해고권 제공, 집단적 해고사태 만연(3월 21일 자), '4·10을 윤OO 심판의 날·응징의 날·탄핵의 날로 만들기 위해 투쟁' (노동신문 3월 22일 자) 등이다. 이미 우리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내용들이다. 한국민이 굳이 차단망을 우회해서까지 이러한 팩트를 북한 관영매체 기사로 읽을 이유가 있을까.

또 우리 국민 중 북한의 틀에 박힌 선전·선동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국민이 북한 매체의 보도를 보고 분열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는 통일부의 사고구조가 틀에 박힌 건 아닐까. 브리핑 자리에 있던 기자들마저 의아해한 통일부의 '결기'였다. 연합뉴스는 "우리 언론이 대남 비난 기사를 그대로 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지적했고, 세계일보는 '통일부, 북한이 총선 개입 시도…그런데 노동신문으로?'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2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는 이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총선과 관련된 도발인지 묻는 질문이 잇따라 제기됐다. "총선이 8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오늘 미사일 발사를 안보 위기 조성을 통한 총선 개입 시도라고 보는가?"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 관련부처에서 필요한 입장이 나올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고 답했다. 잠시후 다른 기자가 다시 "합참 차원에서 북한이 총선을 8일 앞두고 왜 하필 이때 중거리급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지 의도를 분석한게 있느냐"고 물었다.

북한이 해안포 사격을 한 5일 신원식 국방장관(가운데)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서북도서부대의 해상사격 훈련을 점검을 하고 있다. 2024.1.5. [국방부 제공] 연합뉴스

장관 '소신'과 어긋난 대응

이성준 함참 공보실장은 북한의 무기 개발을 꾸준히 추적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총선을 앞두고 그런 발사를 한 것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얼버무렸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의 잇단 질문 역시 1일 통일부 출입기자의 질문과 마찬가지로 전혀 창의적이지 않았다. 신년 벽두부터 누구보다 앞장서 북한의 총선 전 테러나 도발 가능성을 공개 경고해 온 장본인이 바로 김영호 통일장관과 신원식 국방장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도발이나 테러가 없으니 궁금했을 터.

김 장관은 2월 5일 4대 국책연구원장과의 특별좌담회에서 북한 내부에 혼란이 발생할 경우 외부 도발로 만회하려고 할 것"이라면서 "북한이 작년 말부터 계속 위협하는 건 우리 국민에 안보 불안을 조성하고 4월 총선을 노린 것"이라고 단언했다. 인사말에서는 "북한이 정치 심리적 측면에서 (우리의) 국론 분열을 꾀하고 있다"고도 진단했다. 이 자리에서 "자유의 북진"을 강조하며 오히려 북한에 위협을 제기한 건 김 장관 본인이었다. 신 장관은 1월 3일 BBC코리아 인터뷰에서 "북한이 오는 4월 우리 총선에 개입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겨냥해 지대공 미사일 발사 등의 직접적인 군사행동에 나서거나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군사행동 징후를 군 당국이 포착했는가?'라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이번 선거에도 북풍몰이가 시작됐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 배경이다.

외교안보부처 장관 두 명이 잇달아 경고를 내놓았다면 국가적으로 심각한 사안이다. 1일 통일부 대변인과 2일 국방부 대변인, 합참 공보실장은 각각 장관의 '소신'에 어긋난 답변을 내놓은 꼴이다. 통일부의 경우 2일 뒤늦게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를 위협의 원천으로 지목했지만, 장관의 깊은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통일부와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벌어진 해프닝은 대통령의 안보관에도 어긋난 것이었다.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2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무기 개발 동향을 꾸준히 추적해오고 있다"라면서도 4월 총선과는 관련시키지 않았다. 2024.4.2. 연합뉴스

대통령도 입장 선회?

윤석열 대통령은 2일 굳이 세종시까지 달려가 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북한 정권이 미사일을 비롯한 군사 도발을 계속하면서 총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를 흔들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장관과 통일부의 '분열 책동' 주장과 사뭇 다른 말을 덧붙였다. "이러한 도발은 우리 국민의 마음을 더 단단히 하나로 묶을 뿐"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만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올해 들어 내놓았던 입장과 사뭇 결이 달랐다.

대통령은 1월 31일 제57차 중앙통합방위회의 모두 발언에서 올해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북한 정권은 지난 70년 동안 중요한 정치 일정이 있는 해에는 늘 사회 교란과 심리전, 도발을 감행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접경지 도발, 무인기 침투, 가짜 뉴스, 사이버 공격, 후방 교란 등 선거 개입을 위한 여러 도발이 예상된다"면서 구체적인 도발 행태까지 나열했다. 기실 통일장관과 국방장관의 잇따른 경고는 대통령의 발언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이 중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선거는 8일 앞으로 다가왔다. '천리안'을 장착하지 않는 한 4·10 투표일까지 남북 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2일 현재 정부의 선제적 경고와 달리 '북풍'은 찻잔 속에 머물고 있다. 통일부, 국방부 실무자들의 혼선은 그래서 빚어진 게 아닌가 싶다. 북한은 작년 말 당 중앙위 제9차 전원회의 결정과 1월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을 통해 두 국가, 두 민족으로 따로 살자는 메시지를 내놓은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2024.3.1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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