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은 내가 본 가장 슬픈 일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제 전쟁을 끝내야 한다. 끝낼 거라고 믿는다. 가자지구의 민간인 가옥을 완전히 파괴한 것은 매우 큰 실수다. 세계에 매우 나쁜 사진들이다. 세계는 이걸 매일 밤 보고 있다.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이스라엘은 국제적 지지를 잃고 있다. 평화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와야 한다. 이스라엘과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서."
"전쟁 끝내라" 트럼프의 한마디
역시 트럼프다! 가자지구 사태에 대해 말을 아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25일 자 이스라엘 보수 언론 '이스라엘 하이욤(Hayom)'과의 인터뷰에서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쏟아내는 트럼프의 말은 가려들어야 한다. 허투루 들으면 본뜻에서 멀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트럼프는 기성 엘리트 정치인들 처럼 분명하고 똑똑한 메시지로 승부를 걸지 않기 때문이다. 대강 말해도 그의 지지층은 열광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선 이렇게 이야기했다.
"바이든은 말을 못한다. 매우 멍청한 인물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 그의 외교정책은 끔찍했다. 다른 행정부에서 바이든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허약하고 비효율적인 대통령으로 본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마스는 그런 공격을 결코 하지 못했을 거다."
얼핏 읽으면, 지난 5개월 동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민간인 학살극에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해 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와 조 바이든 행정부를 싸잡아 비난한 '사이다 발언'으로 비친다. 그러나 트럼프가 비난한 대상은 바이든일 뿐,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이 아니다.
이스라엘, 파괴사진 공개가 큰 실수다
트럼프가 이스라엘이 저지르고 있다고 말한 '큰 실수'는 가자전쟁이나 민가 파괴 자체가 아니다. 팔레스타인 민가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장면을 공개하고 있는 이스라엘 국방부의 홍보전략에 대한 우정어린 지적이다. 그는 "나는 매일 밤 건물이 사람들 쪽으로 무너지는 사진을 본다. 끔찍한 사진들이고, 세계에 매우 나쁜 사진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걸 (이스라엘)국방부가 배포했다는 데, 이스라엘이 단호함을 보이고 싶어 하는 건 알겠지만, 해선 안 될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로 인해 각국에서 반유대주의 바람이 일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NBC 뉴스에 따르면 트럼프는 하마스 기습공격 나흘 뒤인 작년 10월 11일 "미래의 트럼프 행정부는 이스라엘이 테러 그룹 하마스를 패배시키고, 해체하며, 영구히 파괴하는 걸 전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10월 말에는 공화당 유대인 연합 측에 "하마스 전사들은 영원한 지옥의 구덩이에서 불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본인이 자랑하듯 역대 어떤 미국 행정부보다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 포퓰리즘 정부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시켰고, 골란고원이 이스라엘 영토임을 확인했다.
트럼프의 중동관을 확인하려면 두 명의 인물을 함께 봐야 한다. 유대인이자 그의 사위인 제라드 쿠슈너 전 백악관 선임 고문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스라엘 정책의 사실상의 사령탑이었다. 쿠슈너는 지난주 가자전쟁에 대해 "다소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나라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고 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유대인 거액 후원자가 설립한 매체
다른 한 명은 유대인 카지노 거부 셸던 애덜슨이다. 트럼프가 인터뷰한 이스라엘 하이욤은 애덜슨이 설립한 매체다. 지금은 가족이 소유하고 있다. 셸던과 그의 부인 미리암은 공화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해 온 거물급 후원자로 2020년 대선 때만 공화당 상·하원 의원들을 지원한 슈퍼팩(PAC) 의회 리더십 펀드와 상원 리더십 펀드에 1억 2000만 달러를 쾌척했다. 트럼프는 그 보답으로 재임 중이던 2018년 애덜슨에게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다. 셸던이 2021년 1월 타계한 뒤 미리암은 공화당과 트럼프 캠프에 계속 거액을 기부하고 있다. 작년 11월 포브스에 따르면 미리암의 재산은 328억 달러로, 세계 44위 거부이자, 가장 부유한 이스라엘인이다.
트럼프의 생뚱맞은 가자지구 사태 논평이 새삼 주목받은 것은 그만큼 현 상황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본뜻과 상관없이 "전쟁을 끝내라"는 트럼프의 한마디가 먹히는 상황이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알제리가 안보리에서 제기했던 휴전 결의안에 세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하는 '외교 놀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22일 휴전을 지지하고, 인도적 구호를 요구하며, 민간인 피해를 우려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가 이번엔 러시아·중국·알제리의 반대로 무산됐다. 안팎의 비난 속에 25일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10개국(E-10)의 '라마단(이슬람 금식 聖月) 휴전안'에 기권표를 던져 첫 휴전안이 통과됐지만, 이후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트럼프 경합주 7곳서 전부 우세
11월 대선을 앞두고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유대인들의 표와 민간인 학살을 비난하는 유권자들의 표도 모두 받겠다는 꼼수가 아닐 수 없다. 상황을 간단히 요약한 트럼프의 직설이 바이든의 어중간한 스탠스보다 유권자들에게 더 다가갈 것으로 보인다. 친이스라엘·반이스라엘 진영에 모두 실망감을 주는 바이든보다 한쪽을 확실하게 챙기는 트럼프의 접근 방식이 선거판에서는 더 위력이 있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의 평균치를 소개하는 리얼클리어폴리틱스의 26일 집계에 따르면 트럼프는 46.6%의 지지율로 45%에 머문 바이든을 1.6%포인트 차로 여전히 앞섰다. 위스콘신·애리조나·조지아·미시간·펜실베이니아·노스캐롤라이나·네바다 등 7개 경합 주 전체에서 우세를 보였다. 경합 주 평균 지지율은 48.5% 대 45.3%로 바이든에 3.2%포인트 앞섰다. 바이든은 2020년 대선에서 근소한 표 차였지만, 노스캐롤라이나를 제외한 6개 주에서 승리했었다.
유권자들의 감정은 2020년 대선 후보들이 재격돌하는 이번 대선에서 지지층의 투표율을 가를 중요한 요소다. 27일 공개된 AP통신-NORC공공연구센터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바이든보다 미국민들 사이에 감정적 흡입력이 더 강한걸로 드러났다. 공화당 지지자들이 트럼프 당선에 상당한 흥분감을 느끼는 반면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바이든 재선에 별 감정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트럼프의 시간'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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