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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과 세계1]트럼프가 세상 흔들 거라고? 바이든이 더 흔들었다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4. 4. 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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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수 없는 걸 생각하라! (Think the Unthinkable!)'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2016년 말, 회자된 말이다. 트럼프 당선뿐 아니라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는 '포퓰리즘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가 당선되면 세계가 또 어떻게 바뀔 것인가'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된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3일 뉴햄프셔주 내슈어에서 열린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4. 01. 23 [AP=연합뉴스]

미래를 내다볼 '유리구슬'은 없다. 그보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짐작하는 게 현실적이다. 세계는 트럼프의 4년을 이미 겪었고, 바이든의 4년도 끝나간다. 참고할 자료가 넘쳐난다. 세계를 더 흔든 건 트럼프 4년(2017~2020)이 아니라 바이든 4년이었다. 트럼프가 국지적인 변화를 꾀했다면, 바이든은 구조적인 변화를 시스템에 심었다.

트럼프가 고립주의 성향이 강했다면, 바이든은 국제주의자이다.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는 미국 혼자 잘 살겠다는 선언이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의 국방예산 증액 및 일부 중국 상품에 대한 관세 인상이 대표적이다.

바이든의 최종 목적지 역시 미국의 번영이었지만, 접근 방법이 달랐다. 세계가 항구적으로 미국의 번영에 복무하라는 명제를 구조화했다. 트럼프가 눈앞에서 현찰 다발을 흔드는 '거래(deal)'에 진심이었다면, 바이든은 동맹과 우방의 국고가 미국 쪽으로 흐르도록 보이지 않는 파이프라인을 깔았다. '근린궁핍화정책'이라는 말이 바이든 시대에 나온 말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투만 있었던 트럼프 1기 

국제사회가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에 기대하는 리더십이 있다면, 그 최우선 순위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과제일 것이다. 이 기준에서 트럼프가 '전투'만 했다면, 바이든은 2개의 전쟁을 돕고 있고 다른 1개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작년 10월 7일부터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민간인 학살극에 무기를 대고 있다. 트럼프의 세계와 바이든의 세계가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분기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대화하는 모습. 북한 조선중앙TV가 소개한 기록영화의 한 장면이다. 2018.6.30. [조선중앙TV] 연합뉴스

적어도 트럼프 재임 중 새로운 전쟁은 없었다. 트럼프는 2017년과 2018년 4월 각각 시리아 아사드 정부에 대해 미사일 공격을 명령했다. 칸 샤쿤과 두마에 있었던 아사드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응징이었다. 그러나 2018년 말 느닷없이 "이슬람국가(IS)를 패퇴시켰다"고 선언한 뒤 미군을 시리아에서 철수시켰다. IS와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동맹이었던 쿠르드 민병대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사임한 이유다. 2020년 1월 1일에는 공습 작전으로 이란 혁명수비대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저격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1100억 달러 상당의 무기 수출 약속을 하면서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을 지지했다. 2019년 사우디 동부의 원유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자, 이란의 소행이라면서 3000명의 미군과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시스템을 추가 배치했다. 그러나 그의 재임 중 해외 주둔 미군은 '약간' 줄었다. 취임 시점에 8500명이었던 아프가니스탄 주둔군을 임기 마지막 해인 2020년 2월 탈레반과 휴전에 합의한 뒤 2500명으로 줄였다. 넉 달 뒤에는 주독 미군 9500명 철군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유럽은 경악했고, 러시아는 환영했다. 지난 1월 10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유세 도중 "만약 유럽 큰 나라 대통령 중 한 명이 돈을 내지 않고 러시아의 공격을 받으면 우리를 보호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거래의 맥락에서 나온 말. 트럼프는 "나는 러시아인들이 원하는 걸 내키는 대로 맘껏 하라고 격려할 것"이라면서 재임 중 한 유럽 정상에게 "(유럽이)돈을 내지 않았으니, 채무불이행은 아니다"라고 말했었다고 소개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당초 한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불발되고 고작 48초 스탠딩으로 끝나 논란이 됐다. 대통령실으느 48초 동안 IRA(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통화스와프 등을 논의했다고 했다. 2022.9.22. 연합뉴스

트럼프의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닥치고 이편이었다면, 이란은 무조건 저편이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15년 어렵사리 타결해 놓은 이란 핵 합의(JCPOA)에서 탈퇴했다. 역대 미국 행정부가 친이스라엘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치면서도 지켜온 금기를 풀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해 미국 대사관을 옮겼고, 시리아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해 유엔 총회와 유럽연합(EU), 아랍연맹의 반발을 샀다.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이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이슬람권과 관계 정상화를 주선했다.

트럼프는 행동보다 말이 거칠었다. 솔레이마니를 저격한 뒤 "이란이 보복 공격을 한다면 이란 내 52곳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했지만,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 2곳에 미사일을 퍼부은 뒤 이를 실행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해서도 '세계가 결코 본 적이 없는 화염과 분노' '북한의 완전한 파괴'를 위협했지만, 대화 국면에 접어든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최소 27번의 우정어린 편지(CNN)를 주고받았다. 세계는 트럼프의 호전적 발언 자체보다 말의 전쟁이 우발적인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트럼프는 물 때보다 짖을 때가 더 나쁘다"는 말이 나온 배경의 하나다.

만사를 '거래'로 보는 관점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 문제에서도 이어졌다. 한국, 일본, 나토와 같이 동맹국에 '수익자 부담 원칙'을 강요했다. 더 큰 비용을 내라고 윽박질렀고, 주독 미군 감축에서처럼 '거래 조건'이 맞지 않으면 미군을 줄였다. 쿠르드족 방기에서 보였듯이 동맹과 우방 따위는 그의 안중에 없었다. 동맹, 우방과의 밑지는 거래보다 북한과 러시아 등 적대국과의 거래 가능성에서 블루오션을 찾았다. 트럼프 시대 "유럽이 미국의 신발털개(door mat)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대서양 양안에서 나온 연유다.

캐나다 퀘벡주 샤를부아에서 2018년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혼자 팔짱을 끼고 앉아있고, 앙겔라 메리켈 독일 총리(가운데)를 비롯한 각국 정상이 선채로 대화하는 장면. 트럼프 시대 미국과 유럽의 불화를 상징하는 사진이다. 2018.6.8. 로이터 연합뉴스

2개의 전쟁과 1개의 가상전쟁

바이든의 취임 일성은 '더 나은 복원(Build Back Better)'이었다. 국내의 취약한 인프라에서부터 트럼프가 '망쳐놓은' 국제질서도 복원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세계는 바이든 임기 동안 더 크게 무너졌다. 세계는 그의 임기 중 '두 번의 양치기 소년' 코스프레를 목격했다. 2021년 12월 중순 우크라의 나토 불가입 문서 보장과 동유럽 나토 회원국에 배치된 다국적군의 철군을 요구하는 러시아의 '최후통첩'을 무시한 뒤부터다. 바이든은 1월 20일, 21일, 28일 등 최소 4번에 걸쳐 러시아의 침공을 예고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과 통화(1.28)에서 "러시아가 2월 중 침공할 것이라는 분명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더니, 우크라군과 친러 반군 간에 포격전이 있었던 2월 17일엔 "러시아군이 며칠 뒤 우크라를 침공할 거라는 게 내 생각"이라고 단언했다. 전쟁이 벌어진 건 닷새 뒤였다.

양치기 소년처럼 요란하게 경고음만 내는 한편, 전쟁을 막으려는 어떠한 실질적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우크라 군이 예상과 달리 전쟁 초반에 선전하자 전쟁의 장기화를 기획했다. 2022년 3월 말, 4월 초 사실상 합의됐던 러-우 평화 협상에 재를 뿌렸다.

'양치기 소년'은 동아시아에도 등장했다. 전쟁은 유럽에서 났건만, 뜬금없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는 경고음을 잇달아 날렸다. 2022년 10월 중공당 당대회를 전후한 시점부터다.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10월 3일 CBS 인터뷰에서 "시진핑 주석이 인민 해방군에 2027년까지 대만 침공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면서 2027년 전쟁 가능성을 경고했다. 마이클 길데이 미 해군 참모총장은 10월 16일 "2027년의 창뿐 아니라, 2022년이나 2023년의 창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전쟁이 언제든지 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장미의 월요일' 카니발 행사용으로 장식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본뜬 인형이 우크라이나 병사 인형을 뒤에서 찌르고 있다. 미국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사우스캐롤라이나 유세에서 방위비를 부담하지 않는 나토 회원국을 공격하도록 러시아를 부추기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2024.02.13. EPA 연합뉴스

펜타곤은 11월 29일 '중국 군사-안보 연례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면서 중국의 핵탄두와 해군함정의 증가세에 경각심을 높였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2023년 1월 9일 '다음 전쟁의 첫 전투' 제목으로 24개 시나리오별 대만 전쟁의 시뮬레이션 결과 보고서를 냈다. 미국은 실제적인 대만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지난해 대만 남쪽 필리핀 루손섬에 군사기지 4곳을 추가로 임차, 필리핀군과 군사훈련을 하는 한편, 대만 북쪽 오키나와에서도 훈련을 벌였다. 최소한 2023 회계연도 국방예산 증가율은 중국(7.2%)에 비해 일본(26%)과 미국(11.7%)이 더 높았다.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이 촉발한 가자전쟁은 바이든이 겉으로나마 유지했던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사고 있다.

트럼프의 현찰거래, 바이든의 1석 4조

바이든이 1개 전쟁을 방조하고, 1개 전쟁을 준비하면서 내보낸 잇딴 경고음은 미국으로 동맹과 우방의 돈이 유입되는 것으로 귀결됐다. 엉뚱한 귀결이다. 바이든은 우크라 전쟁으로 1석 4조, 1석 5조의 횡재를 했다. 트럼프의 협박에도 움직이지 않던 나토의 유럽 동맹국들이 자진해서 국방예산을 늘리기 시작했고, 미국 방산업체들은 무기 수출액을 늘렸다. 이미 완공된 러-독 간 노르트스트림2를 무용지물로 돌린 뒤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유럽에 공급했다. 전쟁 발발로 달러화 가치도 올라갔다. 동아시아에선 반도체와 희귀자원 공급망의 위기로 연결되더니 동맹과 우방국 기업들의 공장을 미국에 짓도록 유도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 등 미 국내법에 따라 대만 TSMC와 삼성 반도체, 현대 자동차 등의 미국 내 공장 증설로 이어진 것이다. 바이든이 미국민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다짐한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의 핵심 성과가 됐다. 바이든이 재선하면 심화할 흐름이다.

다음 제47대 미국 대통령 임기 중 바이든 행정부가 대만전쟁의 예상연도로 지목한 2027년이 온다. 중국이 침공할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미국이 지속 가능하게 중산층 일자리를 늘릴 수 있게 된 건 확실하다. 미국 입장에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지 않더라도 동맹과 우방 기업의 돈줄을 확보해놓았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주독미군 감군 결정을 백지화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대중국 무역전쟁은 계승했다. '트럼프 2.0'도 미국에 유리한 거래는 그게 바이든 정책이라고 해도 승계할 게 분명하다. 좋은 바이든도, 나쁜 트럼프도 없다. 두 사람 모두 미국의 절반 정도를 대변하는 미국 대통령일 뿐이다. 각각의 경우에 대비 또는 적응하는 게 우리에게 허용된 유일한 선택지다. 생각 가능한 것을 생각(Think the Thinkable)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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