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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소멸, 손 놓고 바라 본 한국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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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활동이 30일로 공식 종료됐다. 패널 임기연장 안에 대한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예견됐던 일이다. 2009년 설립된 뒤 15년 동안 북한의 제재 위반을 감시해 온 전문가 패널이 종료된 것은 유엔 차원에서 북한 핵 프로그램에 제동을 걸 어떠한 수단도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린다 토마스-그림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 1일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위 전문가 패널 종료와 관련한 49개국+유럽연합(EU)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토마스-그린필드 대사 왼쪽에서 황준국 대사가 원고를 바라보고 있다. 2024.5.1. 유엔 누리집 동영상 캡처

피해 당사국의 직무유기

우리로선 여느 글로벌 이슈처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과 러시아 간 강대국 정치의 '부수적 피해'로 돌릴 사안이 아니다. 핵무기와 각종 미사일 등 북한 대량살상무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당사국이기 때문이다.

우크라 전쟁 뒤 안보리가 기능을 상실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로 자기들 주장을 일방적으로 내놓고, 상대국 주장을 깡그리 무시하는 프로파간다의 장으로 전락했다. 외교의 무대는커녕 외교 실종의 중심이 된 것이다. 그러나 당사국 대한민국의 외교 역량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외교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다.

안보리 대북제재위와 그 산하의 전문가 패널은 각각 북한의 1, 2차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응답이었다. 2006년 1차 핵실험 뒤 결의 1718호로 대북제재위를 구성했고, 2009년 2차 핵실험 뒤 결의 1874호로 전문가 패널을 설치, 제재위 산하에 두었다. 대북 제재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잠정적인 억제 효과로 작용했다. 

제재가 제대로 가동되는 한 북한은 핵 무력과 경제발전이라는 양대 화두 중에서 택일을 해야 한다. 2018년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 대사는 대북 제재로 북한의 모든 수출과 교역의 90%를 봉쇄하고, 근로자 해외 취업을 막았다고 밝혔다. 북한이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해체의 대가로 민생 관련 제재의 철회를 요구, 제재의 위력을 역설적으로 입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8일 서부지구 포병부대 초대형방사포 사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2024.03. 19.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미중, 미러 갈등의 '부수적 피해'

안보리는 2006년부터 2017년까지 모든 대북 제재 결의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북한이 여섯 차례 핵실험을 감행했던 시기다. 러시아와 중국은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제재를 위한 제재'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2019년 12월 북한 주민의 피해를 줄이자면서 △수산물 수출 금지와 △정제유 수입 제한 △근로자 해외 파견 및 국내 송금 금지 등에 대한 제재 해제를 골자로 결의안 초안을 회람시켰지만, 미국의 반대로 표결도 못 했다.

미·중 전략적 경쟁이 악화하면서 안보리 차원의 대북 공조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2022년 2월 24일 발발한 우크라 전쟁은 쐐기가 됐다. 같은 해 5월 27일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뒤 미국이 제출한 더욱 강화된 제재안에 사상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서 안보리 차원에서 어떠한 집단 대응도 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뻔히 내다볼 수 있었던 대북 제재 감시 메커니즘의 소멸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외교를 외면해 왔다는 점이다. 지난 3월 28일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안에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고, 중국이 기권하기 전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 황준국 주유엔 대사는 "마치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서 CCTV를 파손한 것과 비슷하다"라면서 러시아를 비난했다. 11일 유엔 총회 공개토의에서는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는) 감시탑 역할을 하는 패널이 러시아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이를 두고 외교라고 하기엔 머쓱할 정도다. 상황 악화를 망연히 지켜보다가 뒤늦게 발끈하고 나선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예상했으면서 대처하지 않았다면 무책임했고, 예상하지 못했다면 스스로 무능했음을 입증할 뿐이다.

미국 행정부가 10월 13일 공개한 이미지. 북한 나진항에서 러시아로 전달된 컨테이너 1000개가 우크라이나 접경의 병기창으로 옮겨지는 경로를 표시했다. 한국 정부는 3주쯤 지나 비슷한 내용을 연일 다시 강조하고 있다. 2023.10.13. AFP 연합뉴스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다자간 공개 석상에서 해결이 어려우면 양자 간 막후교섭으로 출구를 찾는 게 외교가 존재하는 이유다. 미·러, 미·중 간 갈등 속에서 한국의 활동 공간이 제한될지언정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설득 노력을 기울였어야 마땅했다. 윤석열 정부는 '미·일의 말뚝'에 자신을 스스로 묶음으로써 대중, 대러 외교로 가는 길을 스스로 막았다. 정상 외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됐다고 홍보하지만, 정작 일선에서 유엔 외교를 어떻게 하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미·러 간 거친 말싸움 와중에 미국 대사의 들러리 역할에 몰입하는 모습만 보인다.

전문가 패널이 소멸한 또 다른 이유는 우크라 전쟁 뒤 사실상 교전국인 미-러 간 상호비난의 소재가 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무기 수출을 금한 안보리 제재의 이행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은 작년 9월 북러 정상회담 뒤 북한에서 러시아로 컨테이너가 이동한 사진을 들이밀며 북한의 무기 수출을 단정했고, 러시아는 "증거를 내놓으라"며 부인해 왔다. 미국은 러시아의 전문가 패널 임기연장 거부는 북한 무기 수출의 또 다른 증거라고 주장했다. 드미트로 쿠엘바 우크라 외교장관은 러시아의 '유죄 시인'이라고 거들었다.

이와 관련 로이터 통신은 29일 전문가 패널이 최근 우크라 출장 뒤 비공개 보고서를 통해 지난 1월 우크라 하르키우에 떨어진 미사일 잔해가 북한산 화성-11형 계열 미사일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지난 2월 우크라 보안국이 러시아가 1월 발사한 미사일 20여 발이 북한산 화성-11형이라고 밝힌 것을 뒷받침하는 조사 결과다. 일명 '독사'라고 불리는 화성-11형은 사거리 120~220㎞의 단거리 미사일이다. 북한이 수출한 미사일이 맞으면 제재 위반이다. 북한과 러시아는 2일(한국시각) 저녁 현재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6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지방에서 발견된 미사일 잔해. 우크라 보안국은 북한제 화성-11형 미사일이라고 주장했다. 2024.1.6. 로이터 연합뉴스

겉도는 '새 감시 메커니즘' 

미국은 전문가 패널을 대체할 제재 모니터링 메커니즘을, 러시아는 대북 제재 체계를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각각 마련하겠다고 밝히지만, 어느 쪽도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토마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는 1일 유엔 기자회견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새로운 제재 모니터링 메커니즘을 이른 시일 내 설립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공동성명 서명국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49개국과 유럽연합(EU)이다. 공교롭게 미국이 주도하는 대러시아 제재 참여국 수와 같다.

토마스-그린필드는 그러나 '3달 내로 새 모니터링 메커니즘이 구체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긴급하게 추진하겠다"라면서도 시기도, 방식도 내놓지 못했다. 러·중이 참가하지 않는 메커니즘이 가동될 지도 의문이다. 바실리 네벤자 러시아 대사가 주장하는 제재 체계 개선이야말로 상당 기간 토론과 협의가 필요한 만큼 작금의 미러 대치구도에서는 불가능한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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