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일 아시아 지역 5개 재외공관에 대해 테러 경보를 상향했다. 관심·주의·경계·심각 등 4단계로 구분한 테러 위험 평가를 가장 낮은 '관심'에서 두 단계 높은 '경계'로 올렸다. 대테러센터·외교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경계'는 테러 발생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에서 발령한다.
해당국 정부에 이미 경비강화 요청
해당 공관은 주캄보디아·주라오스·주베트남 대사관과 주블라디보스토크·주선양 총영사관이다. 국무조정실 산하 대테러센터의 테러대책실무회의의 결정사항이다. 대테러센터와 외교부는 이러한 경계령을 각각 발표했다. 5개 공관 주재국은 북한이 재외공관을 두고 있는 곳이다. 대테러센터는 경계 상향 근거로 "우리 정보 당국이 우리 공관원에 대한 북한의 위해 시도 첩보를 입수한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내놓는 경고는 최소한의 구체성을 확보해야 한다. 덜렁 한 장 짜리 보도자료만 보면, 북한이 테러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농후하니, 조심하라는 말로 들린다. 이점, 과거 도로변에 설치됐던 '낙석주의' 표지와 다를 게 없다. 돌이 떨어질지도 모르니 주의하라는 말인데, 정작 돌이 떨어져도 사고를 피할 도리가 없기에 무의미한 경고였다. 언론의 문의가 쇄도하자, 국정원이 알림 자료를 배포한 이유일 게다.
국정원은 북한이 제기하는 위협의 원천을 두 갈래로 적시했다. 국가 차원의 테러 기도와 해외 주재 특수기관원 차원의 테러 기도다. 우선 "북한이 최근 해당 국가에 요원들을 파견해 대한민국 공관 감시를 확대하고, 테러 목표로 삼을 우리 국민을 물색하는 등 구체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북한의 해외 공관에 파견된 간부나 보위성을 비롯한 특수기관원들 차원의 위협이다. "코로나19 종식 뒤 작년 하반기부터 장기체류 해외 파견자들의 귀국이 시작되면서 체제에 회의를 느낀 공관원·무역일꾼·유학생 등 엘리트들의 이탈이 속출하는 가운데 이들을 감시하는 간부 및 특수기관원이 '자발적 이탈 사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외부 소행으로 김정은에게 보고, 우리 공관원을 대상으로 보복을 기도하고 있다"는 경고였다.
북한에 우회적 경고 목적도
해외 공관에 대한 경비는 주재국 정부가 책임진다. 공식적으로 공관에 무장병력을 배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시민언론 민들레>에 "해당국에 이미 경비 강화 요청을 해놓은 상태"라면서 "북한 공관이나 파견기관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우리 국민 밀집 장소에 대한 경계 강화 등의 조치가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공개 경고를 통해 북한에 '테러를 하지 말라'는 경고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외교부 본부와 공관 주재원들이 얼마나 해당국 정부를 설득하느냐에 따라 조치가 강화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해당국과 북한과의 관계도 변수다. 러시아의 경우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데다 지난 3월 22일 모스크바 외곽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테러 이후 초특급 경계령이 내려진 상태이다.
대테러센터가 주의를 환기한 대상은 해외 공관과 공관원 및 재외국민이다. 북한이 해외 공관에 대해 직접적인 테러 공격을 가한 전례는 없다. 공관원에 대한 테러는 1996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생한 국정원 파견 최덕근 영사의 피살이 유일한 사례다. 괴한의 칼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사용하는 독극물 '네오스티그민 브로마이드'가 검출됐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2011년 단둥에서는 탈북자를 돕다가 의문사한 김창환 선교사의 경우 피 묻은 장갑에서 역시 독극물이 검출됐다. 익명을 요구한 정보 전문가는 <시민언론 민들레>에 "국정원이 공개할 정도라면 일회성 첩보가 아닌 상당한 첩보가 누적됐거나, 결행 신호가 포착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이 "두 국가, 두 민족으로 따로 살자"고 선언한 북한이 국가 차원의 테러를 감행할 동기는 적어 보인다. 그러나 북한 특수기관원이 테러를 기도할 정황이 포착됐다는 점은 심각하게 읽힌다.
메시지의 일관성
그러나 대테러센터·외교부·국정원의 경고는 자칫 '양치기 소년'의 경고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신원식 국방장관을 비롯해 정부 차원에서 여러 차례 확산해 온 4월 총선 시기 북한의 테러, 국지도발 경고의 연장선 상에서 읽히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은 이와 별도로 30일 '2023년 테러정세와 2024년 전망'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국정원은 우리 사회 내 특정인 또는 불특정 다수 대상 공격이나 사제 폭발물 등 고도화된 공격 수단의 등장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무인기·동력 패러글라이더 등을 이용한 후방테러를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도 적시했다. 보고서는 특히 "북한이 과거 총선 시기마다 개입을 기도한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도 다양한 형태의 도발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5쪽)"라고 명시했다. 총선 전에 작성한 것을 단순히 수정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올해 총선을 다시 한번 치른다는 말인지 원초적인 궁금증을 자아냈다.
국정원 알림 자료 역시 대테러센터 보도자료에 언급되지 않은 '중동'을 북한이 테러를 준비하는 정황이 입수된 지역으로 명시했다. 테러 정황이 의심되지만, 경고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인지, 헛갈리게 했다. 대국민 경고는 정교해야 한다. 발표 기관이 달라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메시지의 통일성'은 기본이다. 사소한 실책이 자칫 정보기관에 대한 신뢰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필 연휴를 앞둔 시점에 나온 대국민 메시지였다. 북한은 3일 오후 현재, 우리 정부의 테러 경보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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