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안보 위협’ 인식차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남극의 줄어드는 빙산이 국제 안보의 위협이 될 수 있을까. 토건사업만이 경제위기 탈출의 비상구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동아시아의 한 분단국 위정자들에게는 이 말이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2007년 11월 내놓은 ‘결과의 시대, 기후변화가 대외정책 및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이에 대해 “그렇다”고 답했다.
이렇게 답한 사람들은 환경운동가들이 아니다. 제임스 울시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존 포데스타 버락 오바마 정권인수위 공동의장,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내정자 등 저명 안보전문가들이 이 작업에 참여했다. 이들은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쓰나미 등으로 피해지역 주민들이 다른 지역 또는 국가로 어떻게 도피해 갔는지를 예로 들면서, 온난화가 세계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가까운 장래의 음울한 전망을 그려냈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환경과 안보를 한 묶음으로 보는 것은 상식이 되고 있다. 리언 파네타 CIA 국장 내정자와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데니스 블레어 미 국가정보국장의 상원 인준청문회 등에서는 환경이 안보의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등장했다. 월가발 경제위기 역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변수다. 경제살리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에서 보면 “한가한 소리”라는 핀잔이 나오기 십상인 발상이다. 하지만 블레어 국장은 최근 공개한 연례안보위협평가 보고서에서 이에 대해 “그렇다”고 지적했다. 자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경제정보를 수집하자는 얄팍한 제안이 아니다. 우방국의 방위 및 인도주의적 의무 이행에 차질이 빚어져 자칫 글로벌 안보의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블레어는 특히 북한의 경제위기에 주목했다. 보고서가 지적하듯 북한도 핵무기를 외국 또는 테러집단에 넘길 경우 패망을 각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기왕의 식량·비료·에너지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경제가 극도로 악화될 경우 그 대가를 알면서도 핵무기를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주민들의 ‘세 끼’ 걱정이 그들의 밥상머리에서 끝나지 않고 남한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최근 방한했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또한 경제위기가 대량해고와 정치불안정 과정을 거쳐 정권과 세계 안보를 위협한다고 강조했다. 첩보기관들이 정확히 언제부터 기후변화의 안보 위험성에 주목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대한 CIA의 보고서가 유용했다”는 다이안 페인스타인 상원 정보위 위원장의 청문회 발언으로 미루어 CIA가 진작 온난화의 안보 영향 분석에 착수했음을 말해준다. 비슷한 시기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온 원세훈 제30대 국가정보원 원장이 느닷없이 ‘정치정보’ 수집의 중요성을 강조한 게 새삼 의아해지는 이유다. 미국 기준으로 보면 시계바늘을 50년쯤 되돌려 에드거 후버 국장 시절의 미 연방수사국(FBI)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경제가 기업살리기만으로 해결될 수 없듯이 안보가 체제 단속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한·미 정보기관 수장의 인식의 격차가 좁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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