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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작전 지침' 윤석열정부 과도한 홍보가 노출한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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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한미 정상이 승인한 한미 '핵 억제·핵 작전 지침'이 한반도 안보 구도 불안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정부가 공식 브리핑에서 한껏 의미를 부풀림으로써 당장 북한이 반발하고 국방부가 이를 재반박하는 갈등을 자초하고 있다. 위협을 줄이기는커녕 위협을 키우는 전형적인 악순환 양상이다.

북한은 지난 18∼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참관한 가운데 전술핵운용부대들의 '핵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2023. 3. 20. 연합뉴스

과도한 해석은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 차장이 당일 워싱턴 브리핑에서 소개한 이른 바 '일체형 확장억제 시스템의 구축' 주장에서 비롯된다. 김 차장은 "미국이 전시·평시를 막론하고 미국 핵자산에 한반도 임무를 배정할 것을 확약했다"라면서 '일체형 확장억제'의 의미를 역설했다. 대한민국에서 안보는 영어로 쓰고, 영어로 읽어야 한다. 동맹의 망토 안에서 "(미국의)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에선 더욱 그렇다.

나토 2022년 전략개념서에 CNI 포함, 미국은 공식 정의 안 해

'일체형'은 '핵·재래식 통합(CNI, Conventional-Nuclear Integration)'의 의역이다.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도 아직 정립하지 못한 개념이다. '핵이 포함된 위협'이 높아짐에 따라 종전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엄격하게 분리했던 방화벽에 신축성을 둬야 할 필요에서 나온 개념이다. 적이 미국과 동맹을 상대로 전술핵을 사용할 위험에 맞설 대응 방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CNI의 구성요소와 능력, 한계, 확장억제의 유효성 또는 부작용에 대한 정의가 온통 모호한 상태다. 그야말로 개념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한미가 CNI를 언급한 건 작년 9월 18일 한미 통합국방대화(IDD) 공동성명에서다. "핵협의그룹(NCG) 안에서 CNI 계획과 실행 방안을 함께 개발함으로써 연합방위 구조를 발전시킬 것"을 합의했다. NCG에서 협의하고, 을지프리덤가디언(UFG)과 같은 한미 연합연습, 도상훈련 등을 통해 구체화하자는 '미래형 합의'다. 이후 협의 결과를 정리한 게 지난 6월 합의한 '핵 억제·핵 작전 지침'이다. '지침'은 최종 문서가 아니다. 실행을 위한 가이드 라인이다. 비유하자면 집을 짓기 위한 설계도가 아니라, 설계도 작성 작업의 기준을 정한 것이다.

미국 전략핵잠함(SSBN) 켄터키함이 18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2023.7.19. 미해군 연합뉴스

설계도(전략)가 완성 될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되레 심각한 안보 실패가 될 수도 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 백악관과 국방부가 특별한 의미 부여 없이 간략하게 지침 체결 및 승인 사실만 공개한 까닭이다. 미국 핵에 '한반도 임무'를 배정하겠다고 미국이 확약했다는 말 역시 과대 해석을 피해야 한다. 미국의 핵전략은 러시아와 중국을 가상 적국으로 작성, 수정 돼왔다. '한반도 임무'는 기실, 미국이 북핵을 실제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대응 방안을 한국과 협의, 발전시키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미 핵우산 불안해 하는 동맹 설득엔 유효

나토의 '2022 전략 개념서'는 CNI를 "통합 억제의 광범위한 접근의 일환으로 지역 분쟁에서 '전역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적들의 의도가 커지는 데 대한 잠정적 해결책"으로 규정했다. '핵동맹'을 표방하는 나토의 워싱턴 정상회의 선언문 제10항은 "나토의 억제 및 국방 태세는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 미사일 방어 능력, 우주 및 사이버 능력의 적절한 배합에 토대를 둔다"고 정의했다. 설계도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나토가 CNI이 필요한 근거로 삼은 '전역(threater) 핵무기'는 전략 핵무기와 전술 핵무기 중간급 위력의 핵무기를 말한다. 전역은 전쟁지역. 사거리 기준으로 500~5500㎞의 중거리 핵전력이 이에 해당한다. 전역 핵무기의 중요성이 커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러 중거리핵전력(INF) 협정을 파기한 뒤 미국은 INF 개발, 확대 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중 역시 INF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전역 핵무기가 전략핵-전술핵 사이의 대안이 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핵·재래식 전력의 이중 사용(dual-use)이 가능한 무기 개발에 나서고 있고, 러시아와 북한이 각각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공언하는 것은 안보 역학의 변화 요인이다. 하지만 INF 파기 이후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을 확대 배치하고 있는 미국 역시 구도 변화의 주역이다. INF 전력 확대는 중국과 러시아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22일(현지시간)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을 방문해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초음속 장거리 전략폭격기 투폴레프(Tu)-160M에 탑승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푸틴의 이번 행보는 다음달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국의 핵전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됐다. 2024.02.23.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은 핵태세검토(NPR) 보고서를 비롯한 국가안보문서에 CNI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재래식 전력과 핵전력의 교차점' 정도의 의미로 통용될 뿐이다. 미국 역시 '잠정적 해법'으로 CNI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핵 전문가 도린 호치그, 니콜라스 애다모풀로서에 따르면 미국이 이해하는 CNI는 △ 지역 분쟁의 확전을 관리하고 적의 핵 사용을 좌절시킬 필요 △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일련의 옵션을 통합할 필요성 △ 재래식 전력의 '복원력(resilience)'과 전쟁 준비로 지역 분쟁에서 적에게 핵 사용에 따른 어떠한 이익도 없음을 인식시킬 필요 등 세 가지 요소를 담고 있다. 미국과 나토가 CNI를 발전시키려는 건 억제 태세를 전반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유사시 제한적인 핵사용으로 목적을 달성하려는 적국의 의도를 단념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는 특히 재래식 전력의 복원력을 '통합 억제 전략'의 주춧돌로 평가한다. "(미국과 동맹의 연합군은 적의 제한적 핵 공격에도 생존하고, 결속력을 유지하며, 계속 작전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재래식 전력의 복원력 자체가 적의 확전 의도를 단념시킬 방책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재래식 군비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미국 방산업계에 새로운 수입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점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나토도 CNI 전략을 단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요코수카 해군기지에 정박한 미 해군 구축함 맥캠벨호 선상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발사대를 일본 해상 자위대 관계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기하라 미노루 일본 방위상은 지난 1월 18일 람 에마뉘엘 주일 미대사와 토마호크 미사일 구입 계약을 체결했다.  2024.3.28. 교도 연합뉴스

CNI는 두 가지 위험을 안고 있다. 우선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 간의 경계가 흐려짐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된다. 미국 핵 교본인 NPR은 '핵무기의 제한적 역할'을 철칙으로 한다.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결정권을 갖고 있지만, '극단적인 상황(extreme circumstances)'에서만 고려할 수 있다. 그런데 CNI는 일선 사령부 차원에서 재래식 무기 지휘·통제 시스템과 핵무기 지휘·통제 시스템 사이에 혼선을 빚음으로써 우발적인 핵전쟁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첨단 감시, 통신 교란, 정밀 표적 설정이 가능해진 우주와 사이버 공간 분쟁에서는 더 복잡해진다.

응징-자제 메시지 동시 전달의 어려움

더 큰 위험은 기대와 반대로 적의 핵 사용 의지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기대효과를 거두려면 적에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지와 함께 적이 핵 사용을 포기한다면 자제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줘야 한다. 그러나 응징-자제 신호를 효과적으로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핵 억제·핵 작전을 협의하고 계획하는 과정에 미국과 한국의 위협 인식에 편차가 있을 수도 있다. 적에게 내보일 응징-자제의 메시지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결과 자칫 적의 대응 태세에 영향을 미치고 무기체계의 추가 구축과 더 공격적인 방어 전략 채택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 정확히 이번 지침이 발표된 뒤 북한 국방성이 예고한 대응 방향이다.

북한은 13일 국방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미의 핵 위협은 자신들의) 핵 억제 태세를 보다 상향시키고, 억제력 구성에 중요 요소들을 추가할 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 강화된 핵 태세로 맞서겠다는 말이다. 우리 국방부는 14일 "북한의 '핵 억제 태세 상향'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면서 "북한 정권이 핵무기를 사용하고도 생존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없다"고 경고했다. 미국 핵무기로 북한을 절멸시킬 것이라는 말이다. 미국의 핵무기 운영 지침을 이해한다면 쉽게 할 말이 아니다. 

2020년 2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근해에서 전략핵잠함 메인 함이 트라이던트II 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2020.2.12.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

러시아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이 우크라이나군을 공격하는 장면. 러시아 국방부가 25일 공개한 비디오 화면을 캡처한 것이다. 2023.6.25.  TASS 연합뉴스

미국 조야가 CNI에 매력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외교적인 수요에서다.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 확약에 대한 동맹국들의 불안을 다독이는 데 유효하다. 최종 해법이 될지, 안될지 알 수 없지만 일단 공동 협의, 공동 계획을 하면서 동맹을 다독일 수 있다.

나토와 대한민국은 극명하게 다른 반응을 내놓고 있다. 나토는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공동선언 제10항에 CNI를 명시하는 데 그쳤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설계도 작성의 지침 정도를 정해 놓고 마치 집이 다 완성된 것처럼 호들갑을 떤 것이다. 나토가 CNI를 채택한 2022년 이후 32개 회원국 중 핵보유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를 제외한 29개 회원국 정상 중 누구도 이리 환호작약하지 않았다. 미국은 나토 유럽 회원국 5개국에 100개의 전술핵(B61 원자탄)을 배치해 놓고 있다. 나토 회원국 중 어떤 나라도 '미국 핵에 유럽 방위 임무가 부여됐다"고 널리 알리지 않는다.

'핵전쟁의 그늘' 속에서 재래식 전쟁을 수행하는 준비. 호치그-애다모풀로서 연구원이 규정한 CNI의 본질이다. 이들은 "CNI의 성공적인 발전과 이행은 동맹국과의 계속적인 조율과 혁신, 적에 대한 메시지의 단일성이 있어야 성공한다"라면서 작년 4.26 '워싱턴 선언' 당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내보인 메시지의 불일치를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면 미국 핵무기 사용을 포함해 신속하고 압도적인 반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 체제의 종말을 시사하면서 미국의 반응에는 모든 범주의 옵션이 포함될 것"이라는 말로 여지를 남겼다. 이들이 간파했던 한·미 간 메시지의 불일치는 이번 지침 승인 뒤에도 여지없이 노출됐다. '만일에 경우'에도 대비는 해야 한다. 필요하면 미국과 계속 협의하되, 조용히 했으면 한다. 그보다는 위협을 확대재생산할 시간에 위협 감소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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