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안보' 안보이는 안보인사

본문

"국내외 안보 정세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안보가 곧 경제다. 통수권자이신 대통령님의 뜻을 받들어 강력한 힘을 기초로 한 확고한 안보태세를 구축할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경제 발전은 물론 민생의 안정에도 기여토록 하겠다." (12일, 김용현 국방장관 지명자 소감)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대한민국 헌법 5조 2항)

국가안보실장과 국방장관을 전격 교체한 12일 대통령실 인사브리핑에서 밝힌 김용현 경호처장의 소감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국방장관이 아닌, 국가안보실장에 지명된 게 아닌가 해서 다시 확인해야 했다. '안보=경제'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명제이다. 이 명제의 원조국에서도 펜타곤 수장은 국방에 전념한다. 안보와 경제를 도맡은 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전략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발표한 이유다. 대한민국 국방장관의 임무는 경제 발전이나 민생 안정과 거리가 멀다. 그런데 국방장관 지명자는 국방과 경제, 민생을 챙기겠다며 스스로 오지랖을 넓혔다.

신임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인사브리핑에 참석해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2024.8.12. 연합뉴스

"국방부 장관은 국군에 대한 군령 및 군정, 그 밖에 군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정부조직법 제33조 1항)" 대한민국이 국방장관에게 봉급을 주는 근거다. 군통수권자의 위임을 받은 실질적인 국군의 수장이다. 그런데 왜 경제 발전과 민생 안정에 기여하는 게 제2, 제3의 소임이라고 우길까. 해답의 실마리는 "통수권자이신 대통령님의 뜻을 받들어"라는 말머리에 있다. 그가 소개한 '대통령님의 뜻'은 우선 강력한 힘에 기초한 안보태세의 구축과 경제 발전 및 민생 안정 등 세 가지다.

짧은 소감조차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내외 안보 정세가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는 말은 맞다. 한반도 안팎은 물론 글로벌 안보 환경이 갈수록 첨예한 대립 구도로 악화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안보태세 구축에만 전념해도 여유가 없을 텐데 경제와 민생을 챙기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삼정검 수치를 수여하고 있다. 2023.11.6. 연합뉴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밝힌 그가 적임자인 이유 또한 가관이다. "군 요직을 거친 전문가이고, 군 안팎의 신망을 받아 왔다"고 주장했다. 곧이어 "초대 경호처장으로 군통수권자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에 적임자"라고 말했다. 정부조직법 어디에도 군통수권자의 의중에 대한 이해도를 국방장관의 자격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이번 인사가 대통령의 개인적 신뢰에 토대한 '사적 인사'임을 실토한 격이다.

국방장관은 1년 선배에게 할양하는 고등학교 동창회장 자리가 아니다. 국가를 방위하는 본연의 임무로 국민과 군통수권자의 신뢰를 득해야 한다. 그런데 민간인에서 정무직 공무원으로 변신한 지난 2년여 동안 그가 한 일은 대통령 경호였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책임도 맡았다. 사무실 이전과 경호에서 아무리 공을 쌓았다고 해도 이게 국방장관 자리에 적임인 이유라는 설명은 억지에 가깝다. 경호 역시 공적 경호에 그치지 않았다. 채해병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사적 경호'가 포함됐다.

신원식 국방장관의 이임이 아쉽다는 말은 아니다. 안보 불안 요소를 줄이기는커녕 되레 늘려 온 장본인이다. 선제적으로 남북 군사합의서를 폐기하고 군사분계선 5㎞ 이내에서 육상·해상 포사격 훈련으로 북한을 자극하고, 대북 확성기 심리전을 지휘했다. 그럼에도 부임 10개월 만에 국방부를 떠나게 하려면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토록 엄중하다는 난세에 '장수'를 바꾼 격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안보라인 교체 구상이 "지난 7월 중순 워싱턴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급변하는 외교안보 환경을 보고 결심한 것 같다"는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의 설명도 생뚱맞다. "남북관계, 한반도, 동북아, 중국과 동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가 안보적으로 크게 변하고 있고, 다가오는 여러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숙고가 있었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바로 그러한 고민 속에서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라고 만든 조직은 이미 있다. 국가안보실이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4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9.19 남북군사합의 전면 효력정지를 결정한 회의다. 2024.6.4. 연합뉴스

"우리나라는 굉장히 큰 나라고, (기존 부처 장관들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외교안보특보 자리를 신설했다"라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로 위인설관을 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는 자리도 이미 있다. 바로 국가안보실장이다. 첫 단추를 무리하게 끼면서 인사가 뒤엉키다 보니 고위 당국자들의 설명이 참으로 군색하다. 그냥 경호처에 박아둔 '돌'을 하나 빼서 옮기다 보니 뒤죽박죽이 됐다고 고백하는 게 나았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을 내보낸 뒤 안보 진영은 김용현 처장과 신원식 장관,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의 3인 체제가 정립됐다. 공히 '통수권자의 뜻'에 충실한 인물들이다. 국방장관이 국방-경제-민생을 어떻게 챙길지도 걱정이지만, 더 큰 걱정은 신원식의 국가안보실이다.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을 강조해 온 '야전 지휘관'에서 안보 3축의 조정자로 순간 변신, 최적의 선택지를 찾아낼지 의문이다. 김용현-신원식-김태효 라인의 특성은 동쪽만 바라보는 외눈박이들이라는 점이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에 시선이 고정돼 있다. 대한민국의 '안보=경제'는 북쪽과 서쪽을 한목에 봐야 완성된다.

정부가 온몸으로 외면하는 북한을 직시하는 한편, 한중 관계를 복원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도 도모해야 한다.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우리 안보 진영과 정책도 조정해야 한다. '외눈박이 3총사'가 어떻게 복잡한 안보 환경을 헤쳐 나갈지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그나마 작동해 온 국가안보실의 '조정기능'을 제거한 인사였다.

수미 테리 미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지난 5월 29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5.29. 연합뉴스

고위관계자는 "이번 인사가 문책성 인사가 아니다"라고 거듭 해명했지만, 문제는 문책성 인사를 안 했다는 점이다. 수미 테리 기소로 국가정보원이 미연방수사국(FBI)에 뒤통수를 맞고, 정보사의 중국 내 블랙 요원의 명단이 누출됐으며, 이를 막지 못한 국군 방첩사의 명백한 방첩 실패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사상 초유의 위기다. 그런데 국정원장은 물론, 정보사, 방첩사를 아우르는 국방장관, 특히 방첩 사령관에게 어떠한 책임도 지우지 않았다. 군통수권자의 '사적 신뢰'가 정점을 구가하면서 '공적 신뢰'가 바닥이다. 김용현 국방장관 지명자와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대통령과 고등학교 선후배 인연으로 묶였으니 하는 말이다.

'공적 신뢰'를 열쇳말로 이번 인사를 풀이하면, 김용현 지명자의 국회 인사청문회 전망은 뿌옇다. 생때같은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의 신뢰를 연거푸 뒤흔든 의혹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병사 한 명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사건을 덮으려다 발생한 게 채해병 사건이다. 김 지명자가 육군 17사단장이던 2011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단순 익사를 부하를 구하려다 사망한 영웅담으로 조작한 것. 

지난 18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대통령실 경호처 직원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가는 모습. 김용현 경호처장이 강 의원을 향해 손으로 내려친다. 경호처는 경호원의 어깨를 쳤다는 입장으로 전해진다. 2024.1.19. [대통령실 영상 갈무리] 편집 뉴탐사 김시몬 기자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항명 혐의를 뒤집어쓴 것처럼, "영웅담 조작 지시는 사단장이 했다"고 주장한 연대장(대령)이 무고죄로 1년 6월의 실형을 살았다. 두 사건 모두 '상부'가 움직였을 군검찰이 개입한 사건이다. 부하에게 죄를 씌우는 시나리오가 비슷하지 않은가. 시민단체 군인권센터가 2017년 고발한 김 지명자는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중장)이었다. 해서, 김용현 장관 지명자 인사청문회에는 두 명의 전현직 대령이 증인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부가 직면한 가장 큰 안보 위기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도, 오물풍선도 아니다. 국민적 신뢰의 위기다. 그 의혹의 핵심 인물이 사적 인연의 낙하산을 타고 국방장관에 지명됐다. 정보의 축은 국정원-정보사-방첩사가 일거에 위기를 맞고 있다. 외교의 축은 광복절을 앞두고 맹목적 친일외교로 지탄을 받고 있다. 안보 3축이 모두 흔들리는 와중에 대통령의 사적 신뢰만 돋보인 인사였다. 안보 인사에 '안보'가 안 보이는 이유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