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에서 발사된 스페이스X의 우주선 '드래건'에는 미국과 러시아 우주인이 각각 1명씩 탑승했다. 미·러 관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적대관계로 돌아선 뒤 보기 드문, 다정한 장면이었다.
미·러 경쟁시대, 희귀한 장면
중동의 화염이 확산되고 우크라이나 안팎의 전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유럽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선 미국 진영과 러시아-중국 진영의 역대급 연합군사훈련이 계속되고 있다. 한반도 안팎도 다르지 않다. 어디에도 대화와 외교는 보이지 않고, 군사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만 부지런하다. 드래건의 우주여행은 3년째 범세계적으로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뤄진 협력 모델이다.
미항공우주국(NASA, 나사)의 닉 헤이그와 러시아연방우주공사(ROSCOSMOS, 로스코스모스)의 알렉산드르 고르부노프가 그들. 이들의 임무는 본연의 우주탐사 외에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4개월째 머물고 있는 미국 보잉사 우주캡슐 '스타라이너'의 미국 우주인 2명을 귀환시키는 것. 정원이 4명인 드래건에 2석을 비워놓고 출발한 까닭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헤이그와 고르부노프는 ISS에서 200여 개의 실험과 기술 시연을 한 뒤 스타라이너 체류자 수니타 윌리엄스와 배리 윌모어를 데리고 내년 2월 지구에 귀환할 예정이다. 이들은 8일 동안 유인 시험비행을 하기 위해 지난 6월 5일 ISS로 향했지만 스타라이너의 기체 결함이 확인되면서 장기 체류하게 됐다.
ISS는 로스코스모스와 나사가 울력으로 1998년 첫 모듈을 발사, 조립한 합작 프로젝트의 모델. 지상 400㎞의 지구 저궤도를 하루에 15.5회 돈다. 로스코스모스 담당 부분과 나사 담당 부분의 합체다. 나사 쪽에는 유럽우주국(ESA)와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캐나다 우주국(CSA)이 참여하고 있다. 2000년부터 장기체류가 시작돼 올해 3월 기준, 22개국의 우주인 279명이 총 332일 동안 머물렀다. 나사-로스코스모스는 2030년까지 유지할 계획이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시작한 '우주협력'
우주는 냉전의 한복판에도 미러 협력의 공간이었다. 1975년 아폴로-소유즈 프로젝트로 사상 처음 양국 우주선을 합체 시험을 했다. 그러나 냉전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미국 스카이랩B와 러시아 살류트(Salyut) 우주정거장을 합체하려던 계획은 미뤄졌다.
우주정거장 분야에서 선두주자는 소련/러시아였다. 사상 첫 우주정거장 살류트(1971~1986)를 띄웠고, ISS와 같은 모듈 방식의 사상 첫 우주정거장 미르(1986~2001)를 성공적으로 운용했다. 모듈 우주정거장은 중심체를 띄우고 다른 부분을 결합, 우주인의 장기 체류를 가능케 하는 방식. 미국은 1980년대 높은 예산 부담 탓에 유럽, 일본, 캐나다 등과 공동으로 우주정거장을 추진했지만 진척이 더뎠다.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1983년 미사일방어(MD)의 원조 격인 전략방위구상(SDI)을 시작함으로써 우주의 평화적 이용보다 군사적 활용에 초점을 두었다. 탄도미사일을 방어한다는 개념은 여전히 확증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미르2 우주정거장을 계획했지만 소련 해체 뒤 경제난으로 중단했다.
1993년 앨 고어 미국 부통령과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 간 합의로 시작된 공동우주정거장 계획은 미국 자금과 러시아 기술의 결합이었다. 나사는 2011년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중단한 뒤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에 미국 탑승원들을 태우면서 대가를 내왔다. 나사는 이후 보잉과 스페이스X 등 민간기업에 우주선 개발을 맡겼다. 스페이스X는 2020년 드래건의 첫 비행에 성공했지만, 보잉의 스타라이너는 아직 우주비행에 성공하지 못한 상태.
ISS는 우주정거장을 플랫폼으로 각국 연구원들이 장기간 체류하면서 과학적 연구와 시험을 수행할 수 있게 한 프로젝트다. 드래건의 경우처럼 미국 우주선에 러시아인이 타고, 러시아 우주선에 미국인이 타는 승무원 교환 협정이 유지되고 있다. ISS는 인류 공동의 과학 협력의 플랫폼이기도 하다. 각국 과학자들이 참여, 우주공항, 천문학, 생물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가 진행됐다. 혈액 응고와 우주공간에서의 식물 성장, 우주비행사의 시력 변화 연구도 있었다. 특히 미세 중력 상태에서 상처 치유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피부조직의 재생 및 뼈의 결함을 규명하는 실험은 획기적인 성과의 하나로 꼽힌다. 작년 말까지 3700건의 연구가 시행돼 4000여 편의 과학저널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탄생도, 지속도 미·러 간 외교에 달려
ISS가 현재 모습을 갖추는 데는 10여 년이 걸렸다. 1998년 11월 러시아 모듈 자르야가, 12월 미국 모듈 유니트가 결합한 뒤 다양한 모듈과 구성요소들이 추가됐다. 2011년 완성된 뒤에도 모듈과 성능개선 작업이 계속돼 왔다. ISS는 무한 계속되는 정거장이 아니다. 나사-로스코스모스 간 협력은 2025년 종료된다.
양측은 2025년 이후에도 공동프로젝트를 계속하기 위해 논의를 하고 있다. 하지만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 뒤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하면서 겉돌고 있다.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ISS 프로젝트는 점차 고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탈 궤도(deorbit) 시켜 남태평양 상공에서 불태우는 방식으로 2030년 소멸한다.
미·러 간 지정학적 갈등은 ISS의 앞날에 그늘을 드리운다. 여기에 우주공간에서 각국의 군사적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전망이 더 어두워졌다. 드미트리 로고진 로스코스모스 국장은 2022년 7월 미국 주도 러시아 제재 탓에 ISS 협력을 중단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가 2024년 이후 ISS프로그램에서 철수, 독자적인 우주정거장을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철수 시점을 독자 우주정거장이 건설되는 2028년으로 미뤘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12월 2030년까지 러시아와의 ISS 협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미·러는 한편으로 위성 공격 무기와 우주 기반 감시 체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2019년 8월 우주군 사령부를 재설립고, 러시아는 2021년 궤도상의 폐위성을 과녁으로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중국이 참여하면서 우주공간의 개발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중국 항천과기집단(CASC)은 지난 9월 27일 스페이스X처럼 재사용이 가능한 테스트 위성을 처음 발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5월 베이징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을 다짐했다. 그러나 미·러 간 핵무기 통제 체제마저 붕괴한 상황에서 ISS 협력을 낙관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다.
해리스, 중국과의 우주경쟁 승리 다짐
럼프 행정부가 2018년 중거리핵전력(INF)을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러시아가 작년 2월 미·러 신전략무기감축협정(START2)을 효력 중단을 선언한 뒤 미·러는 핵 통제를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올 11월 대선에서 새로 출범할 미국 행정부와 러시아 간 아무런 합의도 도출되지 않는다면, START2는 2026년 2월 5일 종료된다. 인류가 냉전 이후 처음으로 아무런 핵무기 통제 시스템이 없는 세계를 살아야 하는 시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가 패배할 때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다짐하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8월 22일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우주공간 개발과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SS는 시작부터 미·러 간 기술의 결합이었기에 어느 한쪽이 철수한다면 심각한 난관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미·러는 우크라 전쟁 이후에도 ISS의 일상적인 운영과 과학연구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28일 발사된 드래건 호에 미국과 러시아 탑승원이 나란히 탑승한 것은 그 실례이다. 그러나 여전히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갈수록 적대적으로 변하는 미·러가 언제까지 과학 분야 협력을 지속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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