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신과의 통화에서 모스크바 도심을 폭격하겠다고 위협했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인가?" 지난 21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기자회견장. 로씨야 TV 채널 기자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던진 돌발 질문이다.
푸틴-트럼프의 화목한 '케미'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실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대응으로 모스크바를 폭격했을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5월 28일 트럼프의 선거자금 모금행사 발언이라며 소개한 내용이다. 트럼프는 같은 자리에서 "중국이 내 눈앞에서 대만을 침공하면, 베이징을 공격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트럼프다운 장광설이다. "푸틴 대통령과 개인적 대화를 나눴다"는 트럼프의 유세 발언이 맞느냐는 미국 NBC방송 기자의 질문도 있었다.
푸틴의 대응은 노련했다. "누구나 협박할 수는 있지만 러시아를 위협하지 못한다"라면서 "Mr. 트럼프와 그런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이건 미국 선거판에서 나온 매우 강렬한 말이 틀림없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 것을 권한다"라며 상황을 정리했다. 선거판의 헛소리로 치부한 것. 이어진 푸틴의 초점 이동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우크라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라는 미스터 트럼프의 말은 들은 적이 있다"라면서 "나는 그가 진지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말은 누가 했건, 환영한다"고 말했다.
'서방 파트너들이 참가하지 않은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고립감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는 "우리는 서방 파트너들로부터 잠재적인 접촉과 관련해 다양한 신호를 받고 있다"라면서 "유럽 지도자들을 포함해 대화 제의를 거절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보고 있듯이 우리는 정상적으로 살며 일하고 있고, 경제도 성장하고 있다"면서 숫자를 나열했다. 러시아 경제가 작년 3.4~3.6% 성장한 데 이어 올해는 성장률이 4%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라면서 반면에 유로존 경제는 불경기 문턱에 처했고, 미국 경제는 성장하고 있지만 3.1~3.2% 정도라고 했다.
트럼프, 푸틴 설득 노력한 건 맞는 듯
대선 이후 미·러 관계 전망도 내놓았다. '러시아가 다시 대선에 개입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답하면서다. 푸틴은 "미스터 트럼프와의 접촉에 관한 이슈가 몇 년째 헤드라인이 되고 있고, 한때 미스터 트럼프와 러시아가 연결됐다는 비난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미국 의회 조사를 포함한 미국 내 수사 결과 난센스로 밝혀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때(2016년 대선)나 지금이나 아무런 연결이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대선 뒤 러시아-미국 관계는 주로 미국에 달려 있다"라면서 "미국이 러시아와 관계 정상화를 구축하는 데 열려 있다면, 러시아도 그럴 것이고. 아니라면, 그것도 좋다"고 내다봤다. 미래 (미)행정부에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대통령 재직 당시 "우크라를 침공하려는 러시아 대통령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라면서 푸틴과의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블라디미르, 당신이 우크라를 공격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타격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것. "바로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당신을 때려줄 거다"라고도 말했다고 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에 대해 "우리는 최고위급에서 나눈 대화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책임 있는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면서 "안타깝게도 많은 지도자가 이런 태도를 버리고, 언론매체의 위생을 유지하지 않고 있다"고 되받았다. 중요한 것은 푸틴에 대한 트럼프의 진심이다.
러시아는 '좋은 경쟁자'
트럼프는 2018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푸틴과 처음이자 마지막 정상회담 자리에서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푸틴의 말에 찬동하면서 사이버 안보와 문화, 인도적 분야에서 협력을 다짐했다. 트럼프는 국방예산 증액 약속과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놓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나 한국, 일본 지도자를 손가락질하면서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을 칭찬하는 럭비공 같은 태도를 보였다. 유럽연합(EU)을 '적(foe)'이라고 막말을 하면서도 푸틴에 대해서는 '적'이기는커녕 '좋은 경쟁자(good competitor)'라고 추켜 올렸다. 물론 트럼프의 말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2022년 2월엔 푸틴의 우크라 침공을 두고 "천재적이고 현명하다"라는 말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책임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에 돌리면서 "내가 당선되면 전쟁을 사흘 만에 끝내겠다"라는 말을 일관되게 반복해 왔다.
지난 14일 펜실베이니아주 타운홀 행사에서는 "대선에서 이기면 백악관을 인수하기도 전에 당선인 자격으로 우크라 전쟁을 끝내겠다"라고 다짐했다. 지난 7월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를 한 뒤에도 "다음 대통령이 되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고 전쟁을 끝낼 것"이라며 "우크라, 러시아 모두와 함께 폭력을 끝내고 번영의 길을 닦는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투표일이 11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대목은 트럼프가 평화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전쟁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친 언변의 사업가 출신 트럼프가 평화를 말하고 차분한 말투의 검사 출신 엘리트가 전쟁을 말하는 것. 얼핏 역할이 바뀐 것으로 보이지만, 착시다.
트럼프 경합주 7곳서 해리스 앞서
트럼프 집권 1기(2021~2024) 동안 최소한 전쟁이 없었다. 당시에도 우크라와 중동은 불안했지만,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푸틴을 설득했다"는 트럼프의 장담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막연하지만, 미국 행정부가 관리한 측면은 분명히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 유럽과 중동이 잇달아 전화에 휩싸인 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세계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가상 전쟁에 대한 요란한 준비도 계속해 왔다. "오늘의 우크라는 내일의 인도·태평양"이라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을 전제로 사상 최대 규모의 연합훈련과 무력 증강을 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의 대외 정책을 계승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24일(미국 시각) 현재 8~22일까지 실시된 13개 여론조사 집계 결과(리얼클리어 폴리틱스) 전국적 지지율에서 해리스의 우세는 '0.3%P'로 줄었다. 조사기관마다 전망이 뒤죽박죽이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아틀라스 인텔은 트럼프 3%P 우세로, CBS방송과 로이터/입소스, 모닝컨설트는 해리스 3~4%P 우세로 내다봤다. 경합 주에서는 트럼프가 앞선다. 24일 애리조나, 네바다,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모두 해리스를 제켰다. 경합주 평균 지지율 격차는 0.9%P이다. 여전히 오차범위 내에 있지만, 갈수록 트럼프 지지가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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