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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닮은 ‘리·만 형제’

칼럼/워싱턴리포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9. 2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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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처음에는 개인의 집 문제였지만 금융권의 돈 문제로 이어졌고 결국 나라가 흔들리게 됐다. 전세계를 패닉상태로 몰고 갔던 지난 주 월스트리트 발 금융위기의 전개과정이다. 미국인들이 집을 소유하는 방식은 답답할 정도로 느리다. 구입 당시 집값의 일부분을 선금(다운 페이먼트)으로 내고 나머지 잔액은 20년, 30년 모기지(주택담보대출)로 상환한다. 매달 꼬박꼬박 모기지를 붓고 나머지로 생활을 꾸려간다. 빚을 모두 갚으면 파티를 열어 친지들이 보는 앞에서 모기지 서류들을 찢어버리는 게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행복이었다. 그런 미국인들이 특히 2000년 이후 겁 없이 주택구입에 나섰던 이유는 뭘까.

물론 미국의 부동산 투기는 모두가 ‘부자아빠’의 꿈을 키워온 세계화의 단면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에 취했던 월스트리트 금융공학자들의 선동도 있었다. 하지만 배후에는 보다 굵직한 손이 작용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 역시 주택경기 부양을 통해 단번에 정책적 실적을 내려는 유혹에 빠졌던 것 같다. 부시는 2002년 10월 주택 컨퍼런스에 참석해 “모든 미국인이 집을 갖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앨런 그린스펀은 이듬해 연방기금 금리를 1%로 내렸다. 2004년 6월 백악관이 공식적으로 밝힌 ‘소유자 사회(Ownership society)’ 구상은 보통사람들의 주택매입을 부추겼다.

호재를 만난 건설업자들은 환호성을 올렸고, 월가는 복잡한 숫자를 집어넣어 재빨리 컴퓨터를 가동시켰다. 재정상태가 빈약한 사람들에게도 모기지를 남발했다. 불량모기지와 우량모기지를 뒤섞고, 이를 다시 업체들끼리 되팔면서 파생금융상품의 이득을 챙겼다. 그런데 집값 거품이 꺼져가면서 지난 해 8월 먼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상품이 탈이 나기 시작했고, 월가는 급기야 대공황 이후 최악의 빅뱅을 경험하고 있다. 모두가 잃었다. 집값 하락과 이자율 인상 탓에 많은 모기지 소비자들은 쪽박을 찼고, 지난 8월 미국의 신규주택건설 착공실적은 17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선거 구호로 재미를 봤던 클린턴이 다시 대선에 나온다면 구호를 바꿀지도 모른다.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고.

부시 행정부와 월가의 시장근본주의자들이 ‘케인즈주의자’로 돌변해 국민이 낸 세금을 금융구제에 쏟아부었던 지난 주, 이명박 정부는 역주행을 선언했다. “임기 중 무주택자를 없애겠다”면서 10년 간 500만 가구를 새로 짓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잘하면 부시 행정부가 이루지 못한 ‘소유자 사회’가 대한민국에 건설될 수 있을 것 같다. 다운 페이먼트를 집값의 30%로 고정했다는 게 다를 뿐 금융지원 방식도 닮은 꼴이다. 집값 거품이 빠지면 임기 후에도 국고에 부담을 주게 된다는 점에서도 같다.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쪽박으로 돌아오는 데는 4년이 걸렸다. 몰락한 리만 브라더스를 빗대 ‘리(이명박)·만(강만수)형제’라고 표현한 인터넷 상의 패러디가 농담으로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궜던 정신력 만으로 극복하기에는 세계화의 폐해와 전염성이 너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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