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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온정리

떨어진 반쪽/방북기

by gino's 2012. 2. 2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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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9. 01:57------------------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마음 속에 늘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곳이 어딜까?

고교 동창으로 시께나 끄적였던 한 친구는 '금강'이라는 습작시를 보여주며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그 금강을 보았다. 2박3일 일정. 하지만 외금강 아랫마을 온정리(따뜻한 온천마을)를 다녀왔다는 게 정확한 말일듯 싶다. 고작 5~6시간 동안 산행을 했지만, 수십개 금강산 자락의 한귀퉁이를 밟고 왔으니까. 훗날 금강산에 갈 친구들을 위해 참고삼아 말하면 2박3일 코스에서 산행은 단 하루다. 이중 기암괴석과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는 망양대가 있는 만물상 코스 또는 폭포가 장관이라는 구룡연의 두개 뿐이다. 만물상+천선대 코스를 택했는데 그나마 날씨가 흐려서 조망권을 박탈당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많은 생각을 갖게 됐다. 북녘 남자 안내원들의 정치색 짙은 천편일률적인 대남비방 발언과 하나같이 곱고 아리따운 북녘 여자 안내원들의 눈웃음. 관광객 전용도로(현대아산이 건설했단다)와 구분해 놓은 주민전용 도로. 관광객 도로 양쪽에는 철조망이 설치돼 주민과 접촉을 막았다. 온정리의 현대식 온천사우나와 평양 모란봉 교예단( acrobat)의 공연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난생 처음 본 교예는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누선을 자극할만큼 감격적이었다. 높은 사다리에 올라간 교예단원이 느닷없이  '조국은 하나다'라고 쓰인 펼침막을 내리펼치는 순간 뭉클했다. 기획된 선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관람객들은 찔끔찔끔 눈물(여기에도 정서적 함정과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을 짜내며, 공연이 끝나자마자 실황 비디오 테이프를 구입했다. 정치색을 걷어내면 교예 자체는 볼만했다. 아마 남북한을 통틀어 공연예술분야에서 세계를 제패한 것은 북한 교예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금강산관광은 이제 3박4일코스도 생겼다. 현대 아산이 영업권을 부여받은 장전항 관광특구지역에는 조만간 세계최고의 골프장(9홀은 병풍처럼 둘러선 금강산의 장관을 보면서, 9홀은 seaside의 수려한 풍광을 보면서 즐길 수 있다고 한다)이 들어설 예정이고, 곱디고운 백사장의 금강산 해수욕장은 이미 개장했다. 현재 가격 50만원대+현지식사, 온천, 교예관람등 요금 100여달러면 누구나 갈 수 있다. 아마 현대드림투어가 전문여행사인듯 싶다.


2002.07.20. 15:54-------------------

"앗, 선생님 어디서 많이 뵌 얼굴입니다?!"

그들은 이런 말을 건네며 불쑥 목걸이 형식으로 달고다니던 '금강산 관광증'을 들춰 읽었다. (관광증엔 내 사진과 생년월일, 직업, 주소지가 적혀 있었고, 여행이 끝나고 장전항에서 출국수속을 밟을때 조금이라도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반납해야 하는 쯩이다. 훼손됐을 경우엔 20달러가 얼만가 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30전후의 남자+20대초반의 여자의 1조 이거나 남자 2명1조로 움직이는 북측 안내원들은 만물상 6시간 코스와 해금강 산책 코스에 4~5개조가 있었다. 신분을 확인한 한 남자 안내원은 댓바람에 "기자는 시대의 조산원"이라고 추켜올리더니 "하지만 잘못하면 시대의 쓰레기장!(이게 제대로된 댓구가 되려면, '시대의 화장터'가 돼야되지 않는가)"이라고 깎아내렸다. 남측 언론의 문제점을 집중부각하곤 "통일사업에 도움이 되는 글을 써야 하지 않겠습네까"라고 은근히 가르침을 주었다. 서른 안팎의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상대를 제압하기 좋은 지식으로 무장돼 있었다. 경수로 건설일정(월,일까지) 및 최근 파주에서 발생한 여중생 압살사건 등을 언급했다. "제 나라에서 그런일을 당했으면서 왜 꼼짝 못합니까"에서 시작해서 "남조선은 지나치게 외세의존적"이라고 단정해버리면 그만 할 말을 잊게 되곤 했다. 말로 그들을 제압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우리측에서는 가급적 정치적 화제를 담지말라는 주의와 함께 잘못하면 어떤 해악질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대꾸하는 것을 아예 포기해버렸다. 다만, '사회주의 형제국'인 쿠바와 베트남, 중국, 구 유고슬라비아 등 내가 가보았던 나라들의 나라이름만 꺼내는 것만으로 효과는 있었다. 올가미 안의 먹이를 보듯 총총 빛나던 그들의 눈이 갑자기 멍해진다. 또 한가지, "교류 하자는데 왜 조선기자동맹에서는 오지 않았습네까?"라고 하니 그만 "안내원이나 하고 있는 제가 어떻게 알겠습네까"라고 꼬리를 내렸다. 

현대아산 관계자에 따르면 안내원들은 전원 온정리를 비롯한 산아랫마을에서 당성이 좋고, 똑똑한 사람을 뽑은 것이라고 한다. 내가 화가 난 것은 그들의 말이 터무니 없어서가 아니다. 체제경쟁의 끝에서 유일하게 이니셔티브를 잡고 있는 '주체성'을 강조하는 심리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파주 여중생 사건 만해도 할말이 없었다. 문제는 그들의 화법에서 남의 약점만 바늘로 콕콕 찌르는 못된 심성, 정확히는 그들에게 교육을 시킨 북측 엘리트 집단의 의도에 화가 났을 뿐이다. 그정도라면 전라, 경상, 충청도로 나뉘어 물구 뜯구 하는 '이남것들' 보다 나을게 무어란 말인가.

한두번 이야기를 나눠보곤, 그들을 이해시킬 필요도 없고, 깊은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나는 "장가는 갔읍네까" "고저, 고 피부관리는 어떻게 합네까(여자 안내원에게)"라는 질문을 툭 던지고, 문화어(북한의 표준어로 평양말씨. 이것도 이상했다. 분명 어눌한 말투의 강원도 또는 함경도 억양이 들려야 하는데...)로 답하는 그들의 억양을 즐겼다. 그리곤 슬쩍 시선을 산하로 돌려버리곤 했다....

사실 분노는 어젯밤부터 쌓여 있던 것이었다. 도착 첫날밤 세미나장의 우울한 기억이 살아났다....

2002.07.25. 22:15-----------------
사실, 3편이 가장 쓰기 망설여졌다. 너무 직업냄새를 풍기는데다, 종이업계 내부에서나 화제가 될 사안이 아닌가 해서. 어쨋든 시리즈 숫자를 매기다 보니 마감을 해보겠다.

선상호텔 2층 세미나실에 마련된 세미나룸은 아담했다. 배 안이다보니 면적인 좁았지만 그렇기에 더 가깝게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참가인원은 30명쯤. 행정요원들을 빼면 25명 정도.

거창하게 말하면 '남북기자교류 결의문'을 채택했는데, 사실은 약간 썰렁한 자리였다. 분명 우리끼리 하는 결의이면서 동시에 언젠가 한반도 북쪽 동업자들도 공람하게 될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북측은 지난 6월 인편으로 세미나 개최사실을 알리고, 간접적으로 참여를 유도했지만 끝내 오지 않았다. 문제는 서해교전이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결의문 머릿말에 "서해교전으로 숨진 우리 장병들의 희생을 애도하며..."로 되는 구절이 문제였다. 상반된 입장을 정리하면 두가지.

-"아직 교전의 진상은 물론, 북측 사상자의 유무 또는 규모도 밝혀지지 상황에서 우리측 희생자만 위로하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나. 교류하자면서 우리측 입장 만 강하게 내비치면 저쪽이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 1개방송과 2개중앙지, 서너개 지방지 기자들이 동의했다.

-"(북쪽의 계획적인 도발이라는 전제하에)아무리 교류를 하더라도 짚을 건 짚고 넘어가야하지 않은가. 명백하게 우리측에서 사상자가 발생했으니 이를 먼저 추도해야하지 않은가. 또 조중동이 안보상업주의를 자행하고 있다는데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이 좋지 않은가"

결론은 그 구절을 들어내자는 것으로 났다. 이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황당하게 비칠수도 있겠지만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고 판을 깨지는 말자는 합의에 도달하기 까지의 과정은 참으로 진지했다. 이로써 까치발로라도 한발자국을 내디딘 것이 아니냐는 자위도 있었다. 10여년간 대북 협상을 담당해본 발제자가 "과거 남북관계가 깨진 것은 대부분 잣구에 서로 매달리다가 결국 판 자체를 깼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도 주효했다. 밤새 협상하면서, 잣구때문에 자존심 상하고, 결국 돌아섰던 것이 지난 수십년간 몇차례 있었던 남북관계의 요체라고 한다. 인간관계가 간혹 사소한 말싸움에서 시작돼 결국 인간 자체를 증오하게 되는 것과 같은 구조라고나 할까. 물론, 2시간여에 걸친 치열한 토론이 끝나고 나오는 모두의 마음이 개운치는 않았다. 우리 내부에서도 의견통일을 못하는데, 어찌 저쪽과 대화를 나눌수 있을까 하는 찜찜함. 시원한 생맥주 한잔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산행을 걱정하면서...

토론과정에서 나의 포지션은 노 코멘트다. 한가지, DJ의 햇볕정책이 남긴 가장 큰 결실중의 하나는 남도, 북도 이제는 서로 의견이 달라도 결코 대화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란다. 밤새 싸우고, 또 다른 밤을 새워도, 결국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정신. 새로운 화해와 협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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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은 오전 11시~12시사이 속초항출발-4시간 30분 뒤 북한 장전항 도착-부두앞 해상호텔 해금강 투숙-온정리 온천<1일>
호텔-산행-하산 및 온정리 점심-교예공연(오후 4시부터 1시간 30분정도, 이시간은 꿈결처럼 금방간다)-온정리 온천<2일>

호텔-해금강(관동팔경 중 하나인 삼일포등) 육로산책-온정각 점심-출국-저녁 7시30분쯤 속초 도착<3일>

**주의:소수의 훈련된 안내원들 외에는 현지 주민+현지 음식과 어떠한 접촉도 허용되지 않는 박제된 여행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동행한 동료 한사람은 버스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주민풍경을 보면서 용인 자연농원의 사파리 코스가 생각난다고 했다.


P.S.1 약간 시니컬하게 썼지만, 비록 한귀퉁이라도 금강은 여전히 설렘이다. 발목만 슬쩍 훔쳐본 기분이었지만, 언젠가 치마폭에 안겨 이곳 저곳을 둘러볼 날을 기다리게 한다. 금강을 봤지만, 금강은 아직 우리 곁에 없었다.

지난날 금강산 유람기에서 본대로, 육로로 철원인가, 인젠가 어디서 출발해서 내금강에 도착한뒤 길게쉬는 절(장안사)에서 두다리 쭉뻗고 쉰 다음에 차분히 치마폭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몸도 마음도 서서히 선경에 젖어들다가, 마침내 동해와 만나는 그 장엄한 과정을 언젠가 경험해볼날을 기다리며... (장안사는 6.25 때 소실됐다지만, 자연친화적인 아늑한 휴게소 한채 새로지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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